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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장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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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
이다.  본래무일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니까.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동화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
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
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간단명료한 것을 즐기는 성미
니까.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좋아하게 된 양
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
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같은 걸 남기어 이웃을  귀찮
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40년전의 그 원대로 대자유인으로 돌아가셨다..


"무소유"란 제목의 스님의 글을 다시 읽어 본다.

  

무소유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케이.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려져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 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바다 건너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레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 같이 좋아라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가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 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작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뒤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 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모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현대문학, 197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