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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철학

도킨스의 누적선택과 오류파국에 대해서 (2003.1)

 

 

 도킨스의  누적선택과 오류파국에 대해서

 

 

WEASEL 누적선택에 의한 문자열의 진화       

www.answersingenesis.org        다운받기

 

Genetic Algorithm Viewer 누적선택에 의한 Biomorph의 진화    

http://www.rennard.org/alife/english/gavgb.html       다운받기

 

 

 

1. 아미노산, 당, 염기, 유기산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유기물이다. 오늘날 이 유기물들은 유기물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아직 생명이 시작되지 않은 최초의 지구에서 이것들은 전생물적인 무기적 방법으로 생성되어야 한다. 1953년 밀러는 메탄, 암모니아, 시안화 수소 및 물의 혼합물에 전기방전을 가했다. 그 결과 생명의 기본물질인 글리신, 알라닌, 아스파르트산, 및 글루탐산 등 몇종의 아미노산이 검출되었다. 밀러의 논문이 발표된 후 자연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아미노산들을 무기적 방법을 통해서 합성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단백질, 핵산, 다당류 등이 합성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실험실에서 합성되었다. 그렇다면 생명의 기원의 기본은 풀린 것인가?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 보면 여기에 미심쩍은 점이 많다. 1차산물인 아미노산, 당, 염기 등은 탄소, 수소, 질소, 및 산소를 포함하는 환원성 기체 혼합물에 전기방전을 가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얻어진다. 환원성 대기를 가정하고 초기지구의 번개에 의한 격렬한 전기방전 만을 가정하고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결합물인 2차 산물은 실험실에서 솜씨좋은 과학자의 주의깊은 조작을 통해서 겨우 얻어낼 수 있을 뿐이다. 단백질, 핵산 등이 출현하는데는 아미노산이나 염기의 출현과는 달리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초기 지구에서 어떻게 이 특별한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2. 여기서 우리는 생화학의 전문적인 문제로 들어가지 않겠다. (화학적 진화와 생명의 기원  ←상세한 논의는 여기를 클릭 )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생명의 기원 더 보편적으로 질서의 기원의 논리이다. 질서의 기원에 관한 "장난감 모형"으로서 도킨스가 제시한 <METHINKS IT IS LIKE A WEASEL>이라는 문장을 보자. 원숭이가 타자기 앞에 앉아 이 짧은 문장 하나를 찍어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문제를 간단히 하기 위해서 그 타자기는 알파벳 26개의 글자와 스페이스 바 등 27개의 자판으로 되어 있다고 하자. 그리고 한번 시행시 키보드를 28번씩 두드린다고 하자. 원숭이를 구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눈을 감고 자판을 두드려 보자.

 

WDIDMNLT DTJBKWRAEaMQC0 P

YYVMQKZPGDWVHGLAMHQYOPY

MWRSWTNUXTDLEUBXROMMFFU

HZQZDSFZHHV0HZPETPW0VPbEGF

GEWRGZRPBCPG0MCKfFDBGW ZCCF

 

아무렇게나 타이핑 하여 METHINKS IT IS LIKE A WEASEL 이라고 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를 계산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무렇게나 쳐서 만들 수 있는 문구들의 전체 숫자를 생각해 보자. 첫번째 자리에 올 수 있는 글자는 (띄어쓰기도 글자 하나로 쳐야하므로) 27개다. 따라서 원숭이가 첫번째 글자로 M을 옳게 칠 확률은 27분의 1이다. 그래서 첫번째 글자를 M으로 치고 두번째 글자를 E로쳐서 처음 두 글자 ME를 옳게 칠 확률은 1/27×1/27, 즉 1/729이다. 첫번째 단어를 옳게 칠 확률은 8개의 글자가 각각 1/27, 말하자면 (1/27)×(1/27)×……, 즉 (1/27)의 8제곱이다. 전체 문장 스물여덟 글자를 옳게 칠 확률은 (1/27)의 28제곱이다. 이것은 매우 작은 확률이다. 대략 10^40분의 1에 가까운 수다. 한번 치는 데 1초가 걸리고 100억년전 태초부터 원숭이가 치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직 이 문장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시간의 3.618×10^22분의 1 밖에 지나지 않았다. 100억년이라 해봐야 이 문장을 완성하기 위한 워밍업의 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의 질서는 METHINKS IT IS LIKE A WEASEL 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복잡하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무작위적 과정을 통해 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엄청나게 좋은 운인가?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닌가?  진화론자는 여기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

 

3. 정통 다윈주의자인 도킨스는 이것은 METHINKS IT IS LIKE A WEASEL을 단번에 쳐야한다는 조건(일단계 선택)에서의 확률이며 선행결과를 저장할 수 있다(누적 선택 cumulative selection)면 결과는 달라진다고 한다. 누적선택을 허용한다면 원숭이도 짧은 시간 -차마실 시간 정도-안에 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도대체 누적진화가 어떤 요술을 부리기에 이것이 가능한가? 도킨스를 따라 가보자.

 

눈먼 시계공Blind Watchmaker, 76-80면, 민음사

 

【무작위적인 변화를 일단계 자연선택으로 걸러내는 데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누적적인 자연선택의 경우는 어떨까? 그것이 얼마나 더 효과적일까?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다. 천천히 되새겨보면 확실해지겠지만, 아마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다시 컴퓨터 원숭이를 사용하겠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은 앞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이번에는 첫 단계로 28글자로 된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을 하나 선택한다. 앞에서 나온 다음 문장을 를 예로 들어보자.

 

WDLDMNLT DTBKWRZREZLMQC0 P

 

 이제 이 무의미한 문장이 〈자손을 퍼뜨린다〉. 그것은 반복해서 복제된다. 그러나 그 복제 과정에서 무작위적인 실수-〈돌연변이〉-가 생기는데 그 확률은 정해져 있다. 컴퓨터는 원문장의 자손, 즉 무의미한 돌연변이 문장을 조사한다. 그래서 목적하는 문장 METHINKS IT IS LKE A WEASEL에 가장 가까운, 하지만 〈아주조금밖에는 닮지 않은〉 문장을 고른다. 그 결과 선택된 그 다음 〈세대〉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되었다.

 

WDLTMNLT DTJBSWIRZRELMQCO P

 

이렇다 할 개선점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다시 돌연변이 〈자손〉이 그 문장으로부터 〈새끼쳐 나오고〉, 새로운〈승자〉가 선택된다. 이 작업이 여러 세대를 거쳐 계속된다. 열 세대가지난 후 〈새끼를 치도록〉 선택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MDLDMNLS ITJISWHRZREZ MECS P

 

20세대가 지난 후 그것은 아래와 같이 되었다.

 

MELDINLS IT ISWPRKEZ WECSEL

 

이제부터는 그 문장이 우리가 원하는 문장과 닮아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30세대가 지나면 의심할 여지가 없어진다.

 

MEHUNGS IT ISWLIKE B WECSEL

 

40세대가 지나면 우리가 원하는 문장과 한 글자가 틀린 문장을 얻게된다.

 

METHNKS IT IS LIKE A WEASEL

 

결국 원하는 문장은 최종적으로 43세대 만에 얻게 된다.

컴퓨터가 원하는 문장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정확한 시간은 중요하지 않지만, 원한다면 이야기하겠다.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 사이에 컴퓨터는 첫번째 시행을 완료했다. 약 반 시간이 걸린 것이다(컴퓨터광들은 매우 느리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이 컴퓨터의 유아어에 해당하는 BASIC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PASCAL로 다시 작성했을 때 11초가 걸렸다). 이런 종류의 일에서 컴퓨터는 원숭이보다 약간은 빠르다. 그러나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적적인 선택에 의해 걸린 시간과 같은 컴퓨터를 같은 속도로 작동하여 일단계 선택이라는 다른 과정을 통해 원하는 문장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의 차이다. 일단계 선택의 과정을 통하면 대략 10^40초가 걸린다. 이것은 우주의 나이의 10^22배이다. 사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원승이 또는 아무렇게나 타이핑하도록 프로그램된 컴퓨터가 원하는 문장을 타이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우주의 나이와 비교해 볼 때 우주의 나이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수이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 봉투 뒷면에 계산하는 것과 같은 이런 종류의 계산에서 생길 수 있는 오차의 범위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양이다. 그 반면에 컴퓨터가 무작위적으로, 그러나 누적적인 선택으로 같은 일을 수행할때 걸리는 시간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 즉 짧으면 11초, 길면 점심 먹는 데 걸리는 시간 정도이다.

그렇다면 비록 작기는 하지만 매번의 개선이 미래를 건설하는 기초가되는 누적적인 선택과 매번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일단계 선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만약 진화가 일단계 선택에 의존해야 했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적적인 선택〉에 필요한 조건이 자연의 맹목적인 힘에 의해 성립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었다면, 그과정은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은 그러한 과정 중에 가장 최근에 일어난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존재이다. 】    

 

4. 도킨스는 이 누적선택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가지 소프트웨어를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바로 METHNKS IT IS LIKE A WEASEL을 컴퓨터 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오모프Biomorph라는 인공생명체의 도입이다. 그는 특히 후자를 통해서 간단한 규칙에서 얼마나 복잡한 형태들이 만들어져 나올 수 있는가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 바이오모프의 의미를 두가지 맥락에서 다루고자 한다. 하나는 지금 다루고 있는 누적진화를 보여주는 예증으로서이다. 도킨스도 이것을 위해서 이 바이오모프를 개발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그것은 형태형성의 보편문법에 대한 한 예증으로서 바이오모프를 보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눈먼 시계공』후에 출간된 『난공불락의 산에 오르기Climbing Mount Improbable』(1996)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내가 톰슨과 연관해서 잡기장의 다른 곳에서 다룬 바가 있다. 이 바이오모프와 형태형성의 보편문법에 관한 논의는 새로운 글에서 따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바이오모프를 누적선택과의 연관속에서만 다루기로 한다.

먼저 METHNKS IT IS LIKE A WEASEL을 실행해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 하나를 소개한다. 이것은 Les Ey가 만든 WEASEL이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이다. 이것을 다운받아 실행시키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뜬다.(이하 도킨스의 것은 오리지날 WEASEL이라 부르기로 한다.)

METHNKS IT IS LIKE A WEASEL이 target박스에 뜬다. 실행버턴▶을 누르면 컴퓨터가 생성한 무작위적인 28글자의 문자열이 생성되고 그것이 타켓 문장인 METHNKS IT IS LIKE A WEASEL와 비교된다. 그 가운데 일치하는 것(빨간글자로 표시된 것)은 기억되어 다음 세대에 그대로 유전된다. 이러한 누적선택으로 해서 빠른 시간에 타켓 문자열과 닮아간다. 여기서는 컴퓨터가 45세대만에 타켓 문자열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도킨스는 이 누적선택의 힘을 자신이 도입한 인공생명체 바이오모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보여주는 적절한 애플릿을 하나 소개한다.

 

애플릿 실행하기

 

초기 디폴트 값으로 20개의 바이오모프가 뜨는데 여기서는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이것을 2개로 줄였다. 상단의 두 Cells가운데 우측을 누르면 수가 단계적으로 줄어든다. 좌측 메뉴에 Elitist가 체크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앞서 WEASEL과 비슷하다. 타켓 문자열 METHNKS IT IS LIKE A WEASEL에 해당하는 것이 좌측의 붉은 색으로 표시된 바이오모프이다. 실행하면 우측의 바이오모프가 무작위적으로 변하면서 타켓 바이오모프와 일치하는 형태를 선택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이것을 표현형이라 한다면 유전형에 해당하는 것이 좌측의 9개의 띠로 된 박스이다. 실행되면서 계속 새로운 유전형을 무작위적으로 만들어내고 타켓 유전형에 매칭시키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다시 3줄로 되어 있는데 상단은 타켓 유전형, 중간은 그것에 가장 잘 일치하는 유전형, 하단은 가장 불일치하는 유전형을 나타내고 있다. 바로 그 아래에 45개로 된 띠가 있다. 이것은 바이오모프의 유전자를 2진부호로 표시한 것이다. 청색은 1, 흑색은 0이다. 한 유전자는 4비트로 되어있다.(바이모프의 유전자는 9개로 4비트가 필요하다. 2^4=16. 3비트는 너무 적다. 2^3=9) 첫번째 유전자는 0111, 두번째는 1101... 이렇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노란색과 회색의 띠는 각 유전자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도 두 칸으로 되어 있다. 상단은 타켓 유전자이고 하단은 그것을 타켓으로 해서 현재 가장 잘 일치하는 유전자이다. 둘이 같은 색의 띠로 되는 순간 매칭이 완료된 것이다.

 

5. 누적선택은 얼핏 아주 그럴듯해 보인다. 누적선택이 사실이라면 생명의 복잡한 질서는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무작위적 변이와 선택에 의한 형질의 보존이라는 다윈적 방법에 의해서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는 이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누적선택을 생명의 기원에도 적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누적선택은 복제기구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기억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도 복제기구만은 누적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역설적이지만 누적선택의 기원은 누적선택이 아니고 일단계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간단한 것도 확률적으로 불가능했는데 보다 복잡한 복제를 일단계 선택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도킨스는 케언스 스미스의 점토가설을 도입하고 있다. 최초의 복제기구는 일단계 선택이 가능할 만큼 간단한 것이었다. 뒤에 이것은 보다 복잡한 새로운 복제기구로 대체되었다.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6장

 

【생명 탄생에 필수적인 그 첫번째 단계는 힘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핵심에 역설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복제과정에는 복잡한 기구들이 필요한 것 같다. 복제효소라는 기구가 있으면 RNA 조각들은 똑같은 귀결점을 향해 반복적이고 수렴적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 귀결점이 〈존재할 가능성〉은 너무 미미해서 누적적인 자연선택의 위력을 생각해 보기 전에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이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게 하려면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 즉 그 진화 과정은 앞 장에서 설명한 복제효소와 같은 〈촉매〉를 제공해 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촉매는 다른 RNA 분자의 지시없이 저절로 생겨나기는 힘든 것 같다. DNA 분자들은 세포 속에 있는 복잡한 기구들이 있어야 복제된다. 종이에 쓰여진 글씨는 복사기에 의해 복제된다. 하지만 DNA와 종이에 쓰여진 글씨, 이 두 가지 중 어느것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구 없이 저절로 복제되지는 않는다. 복사기로 복사기의 설계도를 복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복사기가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 바이오모프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적절한 환경속에서 스스로를 복제했다. 하지만 바이오모프가 그 프로그램을 스스로 작성하거나 컴퓨터를 만들 수는 없다. 어찌됐든 태초부터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었다고 전제한다면, 그래서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면 눈먼 시계공의 이론은 아주 강력한 것이 된다. 하지만 복제 과정에 복잡한 기구가 필요하고, 또한 그 복잡한 기구가 생겨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적적인 자연선택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을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유기물로 이루어진 〈원시 수프〉를 기초로 한 일련의 이론(오파린의 가설과 밀러의 실험 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생명이 탄생하기 전의 지구의 대기 상태는 아마 지금까지도 생명이 없는 다른 행성의 대기와 비슷했을 것이다. 원시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고 수소와 물과 이산화탄소가 풍부했으며 암모니아, 메탄, 그리고 그 밖의 몇 가지 간단한 유기 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화학자들은 이처럼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는 유기화합물이 자연적으로 합성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플라스크 안에서 원시 지구의 조건을 축소하여 재현했다.그런 다음 번개를 대신하는 방전 불꽃을 일으켰고, 지금처럼 오존층이 태양 복사선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전에는 훨씬 강했을 자외선을 죄었다. 실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정상적으로는 살아 있는 생명체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몇개의 유기분자를 포함해서 여러 종류의 유기분자들이 플라스크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DNA나 RNA는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거대 분자의 구성 단위인 퓨린 염기와 피리미딘 염기가 플라스크 안에 있었다. 단백질의 구성 단위인 아미노산도 있었다. 이 이론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복제자의 기원이다. 구성단위들이 서로 모여 RNA 같은 자기복제 사슬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언젠가는 만들겠지...

하지만 유기분자의 원시 수프 이론은 우리가 기대하는 종류의 답이아니다. 내가 처음 썼던 책 『이기적인 유전자』에서는 그 이론을 택했다. 그래서 여기서는, 조금은 덜 세련된 것일지 모르지만, 다른 한 가지 이론을 소개하려고 한다(그것은 최근에 와서야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론의 대담무쌍함은 강한 호소력이 있다. 그리고 그 이론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특성들을 잘 구비하고 있다.이 이론은 글래스고 대학의 화학자 그레이엄 케언스 스미스가 주장하는〈무기 광물질〉이론이다. 처음 제안된 것은 20년 전이었고 그후 3권의 책을 통해 개선되고 정교해졌다. 가장 최근의 것인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단서』에서는 생명 탄생의 수수께끼를 명탐정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케언스 스미스는 DNA/단백질 기구가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대략 30억 년 전 정도 되는 비교적 최근에 그것들이 출현했다는 말이다. 그전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복제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룩한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있었다. 그러던 중 DNA가 출현했고 그것이 훨씬 효율적인 복제자로 판명되자 원래의 복제 시스템은 DNA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잊혀져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오늘날의 DNA 체계는 뒤늦게 출현했으며, 기본적인 복제자로서의 역할을 찬탈했고, 초기의 투박한 복제자가 했던 역할을 최근에 넘겨 받은것이다. DNA에게 기본적인 복제자의 역할을 빼앗기기는 했어도, 최초의 복제자는 내가 항상 뇌까리는 〈일단계 자연선택〉에 의해서 생겨날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야만 한다.

화학은 크게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으로 나뉜다. 유기화학이란 탄소라는 특정한 원소에 관한 화학이다. 무기화학은 그 나머지를 말한다. 탄소는 매우 중요한 원소이고 화학에서 고유한 영역으로 분류될 만한 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생물에 관련된 화학이 탄소-화학이기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탄소-화학을 생물에 적합하게 만든 바로 그성질이 플라스틱 공업과 같은 산업에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탄소-화학을 생물과 공업에 적합하도록 만든 탄소 원자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거의 무한한 종류의 거대 분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질을가진 원소로는 탄소말고도 규소가 있다. 오늘날 지구 생물의 화학이 탄소-화학이긴 하지만, 이것이 우주 전체에 해당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지구에서도 그 사실이 항상 변함이 없었다고 볼 수도 없다. 케언스 스미스는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생명체는 규산염과 같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무기 결정에 바탕을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유기물 복제자, 즉 DNA는 나중에 그 역할을 넘겨 받았거나 찬탈한 것이 된다.

 

그는 이 〈넘겨 받음〉에 대한 생각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제시했다. 가령 돌로 만든 아치가 있다고 하자. 이것은 상당히 안정된 구조물이어서 돌들을 붙여주는 시멘트 없이도 수년 동안을 그대로 서 있을 수 있다. 진화를 통해 어떤 복잡한 구조를 만드는 것은 모르타르 없이 한 번에 한 개씩 돌을 쌓아올려 아치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불가능한 작업이다. 아치는 마지막 돌까지 제위치에 끼워졌을 때에야 비로소 안정된 상태가 되는것이지 그 중간 상태는 불안정하다. 그렇지만 돌을 끼워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빼낼 수도 있다면, 아치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돌을 일단 둥글게 쌓아서 단단한 받침대를 만든다. 그런 다음 그 받침대 위에 아치를 만들 돌을 놓는다. 아치의 성패를 좌우하는 맨 꼭대기의 종석(宗石, keystone)을 포함해서 아치를 만드는 돌을 모두 제자리에 끼워맞춘 다음 조심스럽게 받침돌을 제거한다. 약간의 행운이 따라 준다면 아치는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 것이다.

 스톤헨지는 일종의 발판을 사용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불가사의로 취급되었다. 발판은 아마 흙으로 쌓은 경사면이었을 것이다. 그 발판은 지금은 거기에 없다. 우리는 단지 최종 생산물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라진 발판은 추리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DNA와 단백질은, 모든 부분이 동시에 존재할 때에만 지탱할 수 있는 안정되고 우아한 아치의 두 기둥이다. 따라서 초기에 어떤 받침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해야지, 그러지 않고 그것들이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 받침대는 초보적인 형태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며, 그것의 성질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 받침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위력을 발휘할수 있는 어떤 복제자를 기초로 한 것이어야 한다.

케언스 스미스는 최초의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結晶)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결정이란 원자나 분자가고체의 상태로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것을 말한다. 원자나 작은 분자들은 그것의 〈모양〉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성질에 의해서 어떤고정된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차곡차곡 쌓인다. 마치 그것들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끼워 맞춰지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런 현상은 그것들이 지닌 성질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다. 그것들이 서로 끼워맞춰질 때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가에 따라 전체 결정의 모양이 달라진다. 이 말은 또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커다란 결정에서 조차도 홈이 있는 곳을 제외한다면, 어떤 한 부분의 형태가 여타의 부분과 정확하게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원자의 규모로 줄어들 수 있다면 우리는 수평선을 향해 곧게 뻗은 끝없이 이어진 원자들의 열(列)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복제이기 때문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결정이 자체의 구조를 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결정은 원자(또는 그에 상응하는 것)의 층들이 겹겹이 쌓인 것이고 각각의 층은 바로 아래의 층 위에 만들어진다. 원자들(또는 이온. 원자와 이온의 차이는 지금으로서는 큰 문제가 안 된다)은 용액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연히 결정을 만나면 결정의 표면에 있는 적당한 위치에 끼여들어가는 자연스런 경향이 있다. 혼히 볼 수 있는 소금물에는 나트륨이온과 염소 이온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다. 소금 결정은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전후 좌우 상하 교대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물 속에 .떠다니던 이온이 결정의 딱딱한 표면에 부딪히게 되면 거기에 달라붙는다. 그것들은 제자리에 달라붙어서 새로운 층을 형성하는데, 그 층은 바로 아래층과 똑같다. 그래서 일단 결정이 자라기 시작하면 각 층은그 밑의 층과 똑같이 만들어진다.가끔 결정은 용액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씨〉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먼지일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작은 결정일 수도 있다. 케언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권유한다. 사진을 현상할 때 정착액으로 사용하는 〈하이포〉 용액은 티오황산나트륨 수용액을 말한다 티오황산나트륨을 아주 뜨거운 물에 많은 양을 녹인다. 그런 다음 용액을 식히는데, 주의할 것은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그 용액은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여차하면 결정을 만들 태세인 것이다. 하지만 결정 형성 과정을 추동할 결정의 〈씨〉가 없다. 다음 글은 케언스 스미스가 쓴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단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비커의 뚜껑을 연 후, 용액의 표면에 조그만 〈하이포〉 결정한 조각을 넣어라. 그런 다음 비커 안에서 벌어지는 경이로운 광경을 한번 지켜보라. 결정은 눈에 띄게 자라날 것이다. 결정은 가끔 부러지기도하는데, 그 부러진 조각들은 다시 자라날 것이다....금세 비커는 결정들로 가득 찰 것이고, 어떤 것은 수 센티미터의 길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몇 분 후에는 이러한 현상이 모두 중단될 것이다. 이제 마술 용액은 힘을 잃었다. 만약 그 용액이 또 한번 마술을 부리기를 바란다면 그저 다시 데웠다가 식히기만 하면 된다....과포화 상태란 녹을 수 있는 양보다 더많이 녹았다는 뜻이다....냉각된 과포화 용액은 문자 그대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이포〉 결정의 고유한 특성대로 (수십억의 수십억) 구성 단위들이 이미 한데 뭉친 작은 결정 한 조각을 넣어줌으로써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주어야〉만 그 용액은 결정을 만들기 시작한다. 즉 그 용액에는 씨가 뿌려져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화학 물질은 두가지 다른 방식으로 결정을 만들 수 있다 예를들면 혹연과 다이아몬드는 모두 순수하게 탄소로만 이루어진 결정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원자는 동일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물질은 단지 탄소 원자가 배열된 기하학적 형태가 다를 뿐이다. 다이아몬드에서는 탄소 원자가 정사면체 모양으로 배열되어 극히 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다이아몬드가 그토록 단단한 것이다. 혹연에서는 탄소 원자가 평면육각형의 형태로 배열되며, 그 평면(층)이 겹겹이 쌓인다. 층과 층 사이의 결합은 약해서 서로 미끄러질 수 있다. 그래서 혹연은 매끄럽게느껴지며, 윤활제로 사용된다. 불행하게도 다이아몬드는 〈하이포〉 용액을 가지고 했던 것처럼, 용액을 만들고 씨를 뿌리는 방법으로 결정화하지는 못한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부자가 될것이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부자가 될 수 없겠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 일을 할 것이고 그렁게 되면 다이아몬드의 희소가치는 떨어질 테니까.

하이포 용액처럼 어떤 물질이 과포화 상태로 녹아 있어서 금방이라도 결정이 만들어지려는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물질은 탄소처럼 두 가지 방식으로 결정을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방식은 혹연처럼 원자들이 얇은 한 층으로 배열되어 납작한 결정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 방식은 동글동글한 다이아몬드 모양의 결정을 만드는 것이다.그 과포화 용액에 납작한 결정과 동글동글한 결정을 동시에 집어넣는다. 케언스 스미스가 하이포 용액으로 실험했던 것처럼 그 용액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히 기록한다. 아마 놀랄 것이다. 결정의 성장속도는 매우 빨라서 두 결정이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일 것이다. 그것들은 가끔 몇 개의 조각으로 부러지고 그 조각들은 다시 또 성창한다.납작한 결정은 여러 개의 납작한 결정들을 만들어내고, 동글동글한 결정들은 여러 개의 동글동글한 결정을 만들어낸다. 만약 어떤 한 종류가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빠르게 부러진다면, 그 과정은 일종의 간단한 자연선택이 될 것이다.

 

,결정이 한쪽 방향으로 훨씬 더 빨리 성장해서 바늘 혹은 원주모양으로 형성되어 가는 것은 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그리고 결정이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잘 부러지는 것도 꽤 보편적인 현상이다.그러한 결정들은 대개 복잡한 세로 방향의 흠이 나있어 상당량의 모양과 크기를 통한 정보가 결정의 성장과 복제를 통해서 복제된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과정에는 진화를 일으킬 생명의 요소가 빠져 있다. 그 요소는 유전적인 변이 또는 그와 동등한 어떤 것이다. 딱 두 가지 형태의 결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변종은 실처럼 길쭉한 모양을 띠기도 하고 또 가끔 새로운 형태를 갖는 〈돌연변이〉가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의 결정들이 유전적 돌연변이에 해당하는 어떤 것을 갖고 있을까?

진흙과 점토와 바위는 작은 결정들로 만들어져 있다. 그것들은 지구의 어디에나 풍부하며 아마 줄곧 그래 왔을 것이다. 점토와 암석의 표면을 주사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놀랍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꽃송이들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자라난 결정, 선인장처럼 자란 결정들, 장미꽃 가득한 정원처럼 보이는 부분, 다육질 식물의 단면처럼 생긴 작은 나선들, 쭉쭉 뻗은 파이프 오르간 모양, 벌레의 똥이나 치약을 짜놓은 것 같은 구불구불하고 비틀린 모양의 결정,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처럼 생긴 각진 결정 등 온갖 모양의 결정들을 볼 수 있다. 좀더 확대해 보면 결정들이 가진 질서정연한 형태에 더욱 놀라게된다. 원자들의 위치가 드러날 정도로 확대해 보면 결정의 표면은 마치 기계로 싼 옷감과 같은 규칙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홈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요소다. 잘 짜여진 옷감의 한가운데 짜집기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부분과 똑같지만 단지 옷감이 짜여진 방향이 다르다. 아니면 방향은 같은데 약간 밀려나서 다른 부분과 줄이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정들은 거의 대부분 흠이 있다. 그리고 일단 흠이 생기면 그 위에 새로 생기는 층에도 그 형태가 그대로 복사된다.

흠은 결정 표면 어디에나 생길 수 있다.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면 결정의 표면에 여러 가지 형태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흠들을 상상하면 된다. 신약성서를 세균 한 개가 가진 DNA 속에 저장한다고 할 때 써 먹은 방식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결정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DNA가 결정보다 우수한 점은 저장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읽어내는 문제는 일단 접어두자. 결정 속의 원자 배열 형태에 생긴 흠이 2진수를 나타내는 암호가 될 수 있다.그렇다면 핀의 머리 크기만한 결정 속에 신약성서 여러 권에 해당하는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보면 이런 방식은 레이저 디스크(콤팩트 디스크) 표면에 음향 정보를 담는 것과 똑같다. 음향 또는 음악은 컴퓨터에 의해 2진수로 바뀐다. 레이저는 유리같이 매끈한 디스크의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낸다. 레이저로 만든 각각의 흠들은 2진법의 1(또는 0이다. 이것은 정하기 나름이다)을 나타낸다. 디스크를 걸어 음악을 재생할 때는 다른 레이저 빔이 그 흠들의 패턴을 〈읽는다〉. 그러면 CD 플레이어 속에 장치된 특별한 목적을 가진 컴퓨터가 그 2진수를 음의 진동으로 변환한다. 그것은 엠프에 의해 증폭되어 우리가 들을 수있게 된다.

지금은 레이저 디스크가 주로 음악을 저장하는 데 사용되지만, 똑같은 기술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전체 내용을 저장하고 읽을 수 있다.결정 속에 원자 수준에서 생긴 흠은 레이저 디스크 표면에 만든 흠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결정은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앞에서 DNA의 정보저장 능력을 살펴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사실 DNA는 그 자체가 결정과 매우 홉사하다. 비록 점토의 결정들이 이론적으로는 DNA나 레이저 디스크만큼의 정보저장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이 실제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이론에서 점토와 다른 광물 결정들이 하는 역할은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저급한 수준〉의 복제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어느 순간에 〈고급 수준〉의 DNA에 의해대체되었다. 결정들은 지구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물 속에서 자연적으로만들어진다. DNA가 복제될 때는 복제효소와 같은 정교한 〈기구〉가 필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시에 그 결정에는 흠이 생긴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결정이 자라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층에서 복제된다. 결정이 자란 후에 몇 개의 조각으로 부러지면 그것들은 새로운 씨를 뿌리는셈이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부모〉 결정이 갖고 있는 흠의 형태를그대로 〈물려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원시 지구에서 복제, 증식, 유전, 돌연변이를보여주는 광물 결정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정들이 보여주는 현상들은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위력〉이라는 요소가 부족하다. 이것은 복제자가 자신의 복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성질을 말한다. 복제자를 추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는 〈위력〉이라는 것을 복제자가 가진 직접적인성질, 즉 〈점착성〉같은 본질적인 성질로 이해했다. 이 초보적인 수준에서는 〈위력〉이라는 용어가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진화의 나중 단계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을 뿐이다. 가령 뱀의 독니의 위력은 (뱀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독니에 대한  DNA 암호를 보존하는 것이다. 최초의 저급한 복제자가 광물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DNA 자체의 직접적인 조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이 발휘한 〈위력〉은 점착성 같은 초보적이고 직접적인 것이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뱀의 독니와 난초의 꽃 같은 고등한 수준의 위력은 훨씬 나중에 나타났다.】

 

6. 여하튼 일단계 선택을 통해 복제기구가 출현했다고 하자. 그렇게 될 때 도킨스의 누적선택은 이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좋은 형질을 누적적으로 축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매양 새로운 판에서 출발하지 않고 지금까지 축적 시켜놓은 바탕위에서 다음 진화를 시작한다. 누적선택의 가장 비근한 예로 주머니에 10개의 공이 들어있다고 하자. 그중 한 공을 고를 확률은 1/10이다. 이 공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다음 시행을 한다면 확률은 여전히 1/10이다. 그러나 이미 고른 공을 다시 주머닌에 집어넣지 않는다면 다음 번에서의 확률은 1/9로 줄어든다. 이 후자가 누적선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일어나는 변이는 전자와 같을까 후자와 같을까? 도킨스의 오리지날 WEASEL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한번 선택된 글자는 다음 시행에서 그대로 기억되고 이것은 다음 시행에서 변이를 입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후자를 닮아있다. 그러나 실제 앞서 변이를 입은 유전자도 다른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변이될 확률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누적선택의 효과가 상쇄되어버릴 수도 있다. 마치 선택한 공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으면 확률을 줄일 수 없게 되듯이 말이다. 이것을 "오류파국 error catastrophe"라 한다.  오리지날 WEASEL을 좀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서 변이를 받은 유전자의 변이도 받아들이자. 자 이경우에 오류파국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도킨스는 선택된 것은 변이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자신의 자손 즉 복사본 하나만으로도 쉽게 누적선택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변이의 대상 역시 변이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면 좋은 변이를 보존하지 못하고 흝어뜨려 버려 오류파국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류파국 보다 빨리 그 개선 효과를 보존해야 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복사본을 여러개 만듬으로써 가능하다. 오류파국냐 누적선택이냐는 변이률과 복사본의 수의 함수이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앞서 소개한 소프트웨어 WEASEL을 보자. 오리지날 WEASEL에서는 한번에 한번의 변이가 발생함으로 변이율은 1/28이다. 그리고 일단 변이를 받은 것은 변형되지 않고 보존된다고 가정했으므로 도킨스가 보여주었듯이 아주 빨리 타켓 문자열을 성취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이 WEASEL은 이것을 가정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앞서 보았듯이 아주 빨리 타켓 문자열에 도달했다. 왜 그럴까? 좌측의 대화상자 가운데 Offspring Count가 있을 것이다. 그 값이 1이 아니고 100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이것은 한번에 100개의 사본을 만들고 그 가운데 타켓 문자열에 가장 근접한 것을 고른다는 의미이다. 100개의 사본이라면 그 가운데 선택된 문자열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 변이를 받은 문자열이 적어도 하나 이상 가진 사본이 있을 확률이 높다. 이것이 선택될 것이므로 지금까지의 선택적 누적이 무효화되는 오류파국을 막을 수 있다. 실제 Offspring Count을 1로 하고 시행해 보라. 타켓 문자열을 찾지 못한채 컴퓨터는 계속 웅웅거리며 돌아갈 것이다. 상단 메뉴판의 Models→Error Catastrophe를 열어보라. Offspring Count를 8인 전형적인 오류파국을 셋팅해 놓았다.

이제 10, 15, 20 등의 값을 넣으면서 답을 찾아내는지 시도해 보라. 27이나 28을 넣으면 드디어 타켓 문자열을 찾아낼 것이고 이 보다 수치를 크게 하면 탐색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재미삼아 100, 500을 입력해보면 각 43, 29회째에 타켓에 도달한다.  이 속도는 문자열의 크기와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METHNKS IT IS LIKE A WEASEL을 복사해서 좌측의 타켓 박스에 붙여 넣자. 두 문장사이를 띄운다면 문자열의 크기는 57이다. 이것을 실행해보면 91째 타켓에 도달, 28 문자열의 43회 보다 늦어짐을 알 수 있다. 종합해보면 문자열이 길고 복사본의 수가 적으면 오류파국으로 들어가기 쉽다. 반면 문자열이 짧고 복사본수가 많으면 누적선택에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나 아직 일반화시키기에는 이르다. 그렇다면 유전의 문자열(생명으로 치면 "게놈")이 긴 고등생명체들은 오류파국으로 사라지고 말아어야 한다.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이 있는데 이것이 변이율이다. 문자열이 길더라도 변이율을 줄임으로써 오류파국을 피할 수 있다. 고등생명체는 모두 이 방법을 따르고 있다. 반면 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생명체는 오류파국을 겁낼 필요가 없다. 원핵생명체에서 진핵생명체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복사에 따른 교정기능이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좌측에 변이율을 바꿀 수 있는 대화상자 Mutation Rate가 있다. 그러나 지금 활성화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상단의 Guarantee Mutation이 yes로 되어있는 것을 no로 바꿔보라. 그와 함께 하단의 Mutation Rate가 활성화될 것이다. 이제 이 변이율을 바꿔볼 수 있다.

그런데 "Guarantee Mutation?"이 무슨 의미이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전자의 재배열에서 발생하는 세가지 경우를 이해해야 한다.

 

치환(substitution); 어떤 문자가  다른 문자로 대체되는 현상.

 

1: GCGTTACAATCGCGCAGTCTTACACCTCGA

2: GCGTGACAATCGCGCAGTCTTACACCTCGA

 

삽입(insertion) 문자열 사이에 문자 또는 문자열을 끼워넣는 것

 

1: GCGTTACAATCGCGCAGTCTTACACCTCGA

2: GCGTTACAATCGCGCAGTCTTACACGCTCGA

 

제거(deletion) 문자열 가운데 어떤 문자가 탈락하는 것(새 문자열에서 A가 탈락)

 

1: ATTTTAATTGAAACTAGCGCTATCAGTTAG

2: ATTTTAATTGAAACTAGCGCTTCAGTTAG

 

Guarantee Mutation에 yes가 체크되어 있으면 유전자의 변이에 치환만을 사용한다. 도킨스의 오리지날 WEASEL에서는 치환에 의한 변이만 사용된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싶어도 Insert Rate, Delete Rate, Substation Rate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 바로 위의 Allow Inserts & Deletes를 yes로 바꾼 다음, 원하는 삽입과 제거의 비율을 입력하면 된다.

정리해 보자. Guarantee Mutation이 yes가 되어 있으면 변이율은 1/28로 도킨스의 오리지날 WEASEL이 된다.  Guarantee Mutation을 no로 해서 오리지날 변이율외의 다른 변이율을 시도해볼 수 있다. 다음 Allow Inserts & Deletes을 no로 하면 Substitution만을 허용하는 도킨스의 오리지날 모델이 된다. 이것을 yes로 함으로써 오리지날 모델에 없는 배열방식으로 삽입과 제거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다시 상단 메뉴판의  Models를 클릭해 보자. 그 가운데 DNA Model을 선택하자. Target박스에 나와있는 것은 아미노산들의 결합체인 폴리펩티드이다. Ala Arg ...로 배열되어 있는데 Ala는 아미노산 알라닌Alanine, Arg는 아르기닌Arginine을 나타내는 약자이다. 활성창의 좌측에 Edit라는 단추가 있다. 그것을 눌러 새로운 아미노산의 배열을 편집해볼 수 있다.

 

7. 생명체는 단번에 완성된 것이냐 누적적으로 보완된 것이냐? 단번에 완성된 것이라면 그것은 저절로 출현할 수 없으며 그것을 가능하게한 지적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 정통 진화론자들은 이 전제를 받아들이면 창조론의 결론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수긍한다.(물로  카우프만처럼 이 전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창조론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진화론자도 있다. 필자도 도킨스 보다는 카우프만 쪽으로 상당히 경사되어 있다.) 그래서 진화론을 주장하려고 하면 생명체가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고 점진적 축적에 의해서 생성된 것이라는 전제에 서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킨스의 누적선택은 진화론의 전통에 충실한 것이라고 하겠다. 생명체처럼 복잡한 것이 일단계 선택을 통해서 출현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의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누적 선택의 결과라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METHNKS IT IS LIKE A WEASEL의 경우 일단계 선택이 만드는 경우의 수는 27×27 ×.....으로 28번 곱하기이지만 누적 선택이라면 27+27+27+....으로 28번 더하기이다. 전자는 1.1973×10^40 이지만 후자는 고작 756에 지나지 않는다. 도킨스가 맞다면 복잡한 생명의 생성을 누적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지적 설계자를 전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누적 선택은 중요한 결함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누적 선택을 통해서 복잡함이 출현했다고 하지만 정작 누적선택의 기능은 누적선택으로 설명할 없다는 것이다.  누적 선택을 만든 그것이 누적선택으로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적 선택이 복잡성의 출현의 확률을 곱셈에서 덧셈으로 변화시켜 주었지만 누적 선택 자체는 그 확률을 곱셈으로 셈할 수 밖에 없다는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도킨스는 복제기구의 성립이 일단계 선택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앞서 소개했듯이 케언스 스미스의 유기적 복제기구의 전구체로서의 점토기구라는 가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케언스 스미스의 이론은 상당한 논리적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아직 가설 단계의 학설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오류파국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오류파국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며 이것을 피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WEASEL 프로그램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오류파국은 진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변화를 바란다면 항상 좋은 변화만이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좋은 변화가 축적되는 것을 진화라고 부른다면 나쁜 변화가 축적되는 것이 오류파국이다. 비교적 간단한 생명체의 경우 변이를 가진 다량의 사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오류파국을 쉽게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복잡한 고등생명체들의 경우 사본의 양이 적기 때문에 변이로 인한 오류파국이 올 가능성이 높다. 변이는 박테리아와 같은 하등생물체들에게는 이점으로 작용하지만 인간과 같은 복잡한 고등생물체들에게는 단점이 된다. 말하자면 변이는 진화를 위한 재료가 아니라 가능하면 피해야할 함정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적선택은 박테리아에게 적용되는 논리이며 고등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기는 불충분하다. 고등생물체는 변이를 통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이를 저지함으로써 유지되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진화는 점진적인 것이 아니고 전체론적인 것이어야 한다. 지적 설계자를 가정하지 않으면서 전체론적 출현을 설명하는 길이 없을까?  카우프만의 네트워크론에 그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