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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화두

생명의 화두


생명의 화두
 

 1. 근대과학과 환원론
 2. DNA와 환원론의 성공
 3. 전체와 부분의 순환성
 4. 자기조직화
 5. 인다라망,태극,연결망


1. 근대과학과 환원론


근대과학을 이끌어 온 기본전략은 환원론(reductionism)이다.아무리 복잡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잘게 분해함으로써 기본적인 단순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통찰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의 가장 극명한 방법이 수학의 해석적(analytic) 방법이다. 직선은 단순하고 곡선은 복잡하다.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곡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잘게 분해해서 확대해 보면 직선에 근사해 간다. 그래서 이 분할의 과정을 무한히 진행하면 곡률 0의 온전한 직선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복잡한 곡선은 단순한 직선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울통불통한 곡선으로 둘러쌓인 도형의 면적도 잘게 부수면 사각형들의 집합으로 환원될 것이고 이 사각형들의 면적을 합한다면 복잡한 도형의 면적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복잡한 것은 결국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이 대담한 형이상학은 적어도 서구의 사상 속에서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그것은 피타고라스에 까지 소급해 가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그는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우주의 구성단위(building block)를 찾아낼 수 있다면 모든 사물은 그 구성단위로 나뉘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이것이 "만물은 수다" 즉 만물은 이 구성단위의 정수배라는 선언으로 나타난다.이것이 데모크리투스로 이어지면서 원자론의 전통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 환원주의는 그 출발에서 부터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그것이 바로 무리수(irrational number)의 존재이다.무리수란 정수의 꼴로 표현되지 않는 수로서 이것은 만물에 공약가능한 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이 불온한 조짐은 서둘러 은폐되었고 그 이후의 원자론은 마치 그러한 수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 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다.(전설에 의햐먼 이것을 폭로한 한 젊은이가 뮤즈 여신의 노여움을 사서 항해중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 무리수의 존재는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분할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 단순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며 다른 차원의 또 다른 복잡성에 닿을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환원주의의 전략을 무색하게 하는 악명높은 곡선 가운데 코흐곡선(koch curve)이라는 것이 있다.이 코흐곡선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일단 임의의 길이를 취해서 그것을 3등분한다.그 중간부분을 밑변으로 하는 새로운 삼각형을 그린다.그리고 이것을 다시 3등분해서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삼각형을 그린다. 이 과정을 되풀이 함으로써 코흐곡선을 얻을 수 있다.

<그림1> 코흐곡선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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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고전적 의미의 곡선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전적 곡선의 경우 작은 부분을 취하면 직선과 구분되지 않는다.그러나 코흐곡선의 경우 아무리 잘게 잘라나가도 이 꾸불꾸불한 부분을 제거할 수 없다.분할의 과정속에서 계속 전체의 복잡성이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이러한 종류의 곡선은 깔끔한 방정식의 꼴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병리적 곡선"(pathological curve)이라고 불리어 졌는데 어째 그 이름에서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의미인 "무리수"의 곤혹을 연상시킨다.






2. DNA와 환원론의 성공

수학이나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약간의 교정을 통해 전형으로 근사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예외적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다.그러나 생물을 다룰 경우는 이러한 현상들은 드문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흔한 경우들이다.그래서 생명의 현상은 환원주의 전략의 최후의 미개척지인 셈이고 그 완성을 확인하는 영역인 셈이다. 17세기 훅(R.Hooke)의 세포의 발견에서 시작된 환원주의적 전략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왓슨과 크릭에 의한 DNA의 구조의 해명에 의해서 그 절정에 도달했다.생명의 복잡성은 A,T,G,C라는 넷 염기의 조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이 중 셋 염기의 조합으로 아미노산이 만들어지고 (가능한 조합의 수는 4×4×4=64종이지만 중복되는 것이 있어 자연계에는 20종이 있다) 다시 이 아미노산들의 조합으로 단백질이 만들어 진다.(아미노산에서 처럼 염기수의 제한이 없으므로 원리적으로 무한수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 단백질들이 모여 세포를 구성하고 이 세포들이 모여 생명체의 몸을 구성한다.
이것은 생명일반이 보여주는 보편적 현상이면서 환원주의 전략을 무력하게 해 온 그래서 생기론의 강력한 논거가 되어온 생명의 자기재생산 현상을 설명해 주었다.
생명체가 생명체를 복사하는 것은 복사기가 서류를 복사하는 것과는 다르다.그것은 자기자신을 복사하는 것이며 구태여 비교하자면 복사기가 복사기를 복사하는 것과 같다.이것은 복사기가 자기 내부에 복사기 제조공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이것은 아직 해결책이 아닌데 그렇게 해서 생산된 2세대 복사기는 다음세대의 복사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의 복사기일 것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생명체의 복사와는 다르다.생명체는 복사된 것이지만 자신도 복사를 수행할 수 있다.그러므로 복사기가 생명체와 닮기 위해서는 복사기가 복사기와 함께 복사기 제조공장도 함께 복사해야 한다.그러나 복사기를 복사하기 위해서는 복사기 제조공장이 필요하듯이 복사기 제조공장을 복사하기 위해서는 복사기 제조공장을 복사하는 복사기 제조공장의 공장이 필요할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다음 3세대에서 불임이 될 것이다.복사기의 복사의 연속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복사기 제조공장의 공장의 공장의....무한한 공장이 복사기 속에 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이것은 알속에 성체가 들어 있고,알속의 성체속에 다시 알이 들어 있고,다시 알속의 성체속의 알속에 성체가 들어 있는 등 무한히 축소되어가는 알과 성체의 계열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이것이 소위 "정자미인"(精子微人,homunclus)의 역설이다.
 이것은 환원주의(기계론)에 대한 생기론자들의 강력한 반대논거였지만 왓슨과 크릭의 DNA의 구조의 해명은 이 신비에 대한 환원주의적 설명을 가능하게 했다.우선 생명체의 복사는 이중과정을 통해서 일어난다.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DNA → RNA → 단백질
                  (2)

(1)은 DNA가 DNA를 복사하는 것으로 복제(replication)라고 불리우는 과정이다.이것은 말하자면 복사기공장의 설계도를 복사하는 과정이다.(2)는 DNA에 제시된 설계도에 따라 복사기를 복사하는 과정으로 전사(transcription),번역(translation)이라고 불리는 과정이다.생명의 복사는 말하자면 복사기를 복사한다음 그 복사기의 설계도를 함께 복사해서 넘겨주는 과정이라고 하겠다.이렇게 해서 정자미인의 역설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은 생명의 자기재생산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고 있는가? (1)과 (2)의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효소인데 이 효소자체가 (1)과 (2)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역설이 여전히 남아있다.이러한 자기순환성은 생명현상이 가진 중요한 특징들중의 하나인데 이것은 발생의 문제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수정란은 단세포에서 시작하여 2.4.8.16...으로 세포수가 급격히 증대되면서 분화가 시작된다.그런데 여기서 생겨나는 의문은 똑같은 세포인데 어떻게 어떤 것은 근육세포가 되고 또 어떤 것은 혈세포가 되고,골세포가 되고,신경세포가 되는가 하는 것이다.몸을 전체적으로 설계하는 프로그램세포가 따로 있는가?환원주의 전략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할 것 같다.그러나 이러한 착상은 가망이 없다.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세포와 일반세포를 구분시켜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프로그램의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고 다시 프로그램의 프로그램의 프로그램이 요구되는 등 무한한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실제의 생명체가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다.
어떤 세포가 특정의 어떤 세포가 되는 것은 그 세포의 유전자의 어느 부분이 읽혀지는가에 의존한다.유전자의 읽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세포질인데 그 세포질은 세포의 경계조건에 따라서 결정된다.즉 그 세포가 그 인근에 어떤 세포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경계조건이 그 세포의 분화를 결정한다.
 이것은 순환적이다.왜냐하면 a와 b가 인근해 있을 때 a는 b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b는 다시 a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3. 전체와 부분의 순환성

환원주의 전략이 실패하는 곳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그것은 순환성이다.DNA는 효소를 규정하지만 DNA의 활성은 이 효소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세포a의 특성은 세포b의 특성에 의해 결정되지만 b의 특성은 다시 a에 의해서 규정된다.일반적으로 순환논법은 무한퇴행으로 이끌며 한 논증의 실패의 논거가 된다.그러나 자연의 복잡성은 하나같이 순환적 특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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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이 곤혹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과정-주체와 대상의 얽힘-은 화가 에셔(Escher)의 화두이기도 했다.화랑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어느덧 그 자신이 그림의 일부가 되고 있다.



 a와 b의 관계에서 a는 b에 의해 규정되지만 역으로 b는 a에 의해서 규정된다.이것이 전부가 아니다.a와 b가 상호관계를 맺음으로서 a-b라는 네트워크가 생겨나고 이 네트워크는 다시 a와 b를 규제한다. 환원주의 전략은 이 관계의 네트워크를 짤라 버림으로서 결국 사태의 본질을 사상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생명은 DNA나 세포의  구조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간에 맺어지는 역동적 관계속에 있다.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요소들이 보여주는 역동적 거동들은 그것을 규정하는 계밖의 어떤 특성들이 있다고 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이것은 생기론으로 이끈다.그러나 환원주의는 계밖의 어떤 특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결국 악순환이나 무한퇴행의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생기론이나 환원주의는 이 관계의 망이 만들어 놓은 그림자이다.
 이 문제를 통찰한 사람이 카우프만(S.Kauffman) 이다.그는 세포의 분화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요소 자체가 가진 어떤 생기에 의한 것도 아니라고 요소들간의 연결자체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했다.그는 세포분화를 모형화한 실험을 설계했다.그는 100개의 전구를 무작위적으로 연결시켰다.그리고 한 전구의 켜지거나 끄진 상태가 다른 전구의 켜지거나 꺼진 상태를 결정하는 규칙을 부여했다.
 각 전구는 켜지거나 끄지거나 둘 중의 한 상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연결망의 가능한 상태는 2100 또는 1030이다.여기서 특정한 한 상태가 다시 재현될 확률은 10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그러나 이런 예상을 뒤엎고 10번째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11,12,13 번째 이후 14번째에서 다시 10번째의 상태로 복귀한 것이다.그 뿐 아니라 이어서 11,12,13번째의 상태를 재현하면서 다시 10번째의 상태로 복귀하는 순환을 보여주었다. 연결방식을 달리하면 재현되는 패턴의 형태는 물론 달라진다.그러나 주기순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그는 그 뒤 강력한 컴퓨터를 사용해서 요소의 수를 늘이면서 실험한 결과 상태순환의 수는 대략 요소들의 수의 제곱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앞서의 100개는 너무 작은 수여서 이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인간의 유전자들의 수는 약 10만개이므로 이것의 제곱근은 대략 316이다.이것은 인간의 세포의 종류의 수 254개와 근사적으로 일치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요소가 아니고 그 요소들을 연결하는 연결방식이다.이 연결에 의해서 요소와 요소,요소와 전체간의 복잡한 상호되먹임 현상이 출현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자기조직화이며 생명체는 이 자기조직화의 최고의 구현체이다.





4. 자기조직화

부분이 전체속에 들어있으면서 또 전체를 자신속에 가질 때 가능해지는 것이 '자기조직화이다. 이것은 자기의 조건을 자기 스스로 부과한다는 점에서 외부의 강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질서와는 다르다.
레이저이론을 탄생시킨 독일의 물리학자 하켄(H.Haken)은 자기조직 시스템의 간단한 예로서 레이저를 예로 들고 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서로 마주보는 거울이 있는 상자속에 에너지를 부여하면 상자속의 원자의 일부는 이전보다 에너지 준위(準位)가 높은 여기상태가 되어 광자를 방출한다. 광자는 여기된 다른 원자에 충돌하고 거듭 광자가 방출된다. 처음에는 광자들의 파가 서로 간섭하여 복잡한 파형을 만들어 내지만 서로 위상이 달라 상쇄되어버려 방출되는 빛은 약하다. 그러나 점차 에너지의 강도를 높혀 가면 갑자기 어느 시점에서 광자들이 동일한 위상으로 정렬되어 강력한 단일 진동수의 빛을 방출하는데 이것이 레이저 광선이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여기상태에 있는 많은 분자들의 내부운동에 동조(同調)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켄의 '예속원리'(slaving principle)인데 그는 이것이 실재의 자기조직현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두대의 바이올린을 조율하여 한대는 탁자위에 올려두고 다른 한대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한다고 생각해 보자. 연주하고 있는 바이올린선과 똑같은 선이 탁자위에 놓인 바이올린에서도 울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있다. 다시말해 G선을 연주하면 탁자위에 놓인 바이올린의 G선도 같이 울린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첫째 바이올린에서 발생한 공기의 파동은 두번째 바이올린에 가서 부딪친다. 방출된 음과 똑같이 조율된 두번째 바이올린의 선은 우선적으로 그 파동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있다. 그것은 그 파동의 진동수와 자신의 고유한 진동수가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게속에서 전달되는 에너지는 당연히 가장 최적의 조건상태에서 전달될 수있다. 이러한 동조현상을 공명(共鳴)이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된 분자속에서 일어나는 광자의 왕복운동도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주기로 변화하는 힘을 밖으로 부터 부여하면 그 힘에 동조해서 진동하도록 되는 것이다. 광자들은 서로 닮아감으로서 동조적으로 진동한다. 이것은 요소들간의 상호작용이다. 그러나 자기조직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한데 그 동조상태의 질서는 외부요인에 의해 쉽게 파괴될 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동조상태에 들어가면 그 체계는 외부요인에 저항하며 그것을 유지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왜일까?
 또다른 보기를 들어 설명해 보자. 추의 길이가 같은 구식 괘종시계가 여러개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추는 각기 제멋대로 움직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추들이 마치 함께 묶여서 움직이듯이 일제히 같은 방향,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있을 것이다. (이것은 앞서 논의한 동조현상과 같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의 추를 건드려 다르게 움직이게 해보자. 얼마 안가서 또다시 다른 시게와 리듬을 맞추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이것들은 질서의 교란에 대해 저항하고 계의 일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구성요소가 많을수록 계는 더 교란시키기 어려운데 제멋대로 움직이는 요소는  그 질서를 강요받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요소들의 운동에 의해서 전체 수준의 계가 생성되었지만 이제 역으로 그것에 작용하여 그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하켄에 의하면 자기조직적 계가 출현하는 원리이다.
 자기조직은 전체와 부분간의 상호되먹임의 결과이다. 즉 처음에는 어떤 부분이 인접해 있는 다른 부분에 자신을 동조시킴으로 계의 일정한 특성을 만들고 이것이 다시 부분들에 작용함으로써 그 계의 특성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되먹임은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촉매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촉매성'(autocatalysis)이라고 불린다.
 이 하켄의 자기조직화의 원리는 프리고진으로 대표되는 브뤼셀학파(Brusselator)에 와서 더 넓은 범위에서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프리고진(I.Prigogine)에 의하면 평형에서 먼 혼돈은 자기조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만일 열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나올 수있다면 많은 시스템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조직화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구조들은 자기조직화의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엔트로피를 산출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엔트로피를 주변으로 퍼뜨린다고 해서 산일구조(散逸構造;dissipative structure)라고 불린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명한 '벨로우소프-자보틴스키(Belousov-Zhabotinsky) 반응'이다.
 시료들중 하나의 농도가 임계점까지 증가되면 화학작용은 변환되어 화학적 농도가 마치 화학시계 처럼 규칙적으로 요동하기 시작한다.프리고진은 이 현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 잠깐 멈추고 이러한 현상이 얼마나 뜻밖이었는가를 강조하고자 한다. 가령 '빨간색'과 '파랑색'의 두 종류의 분자들이 있다고 하자. 분자들의 혼란한 운동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순간에 그릇의 왼쪽 부분에 예를 들어 빨강 분자들이 더 많을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잠시후에는 파랑색 분자들이 더 많이 나타나 보이곤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릇이 '자주색'으로 보이게 될 것이며, 때때로 빨강색이나 또는 빨강색으로 불규칙하게 번쩍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화학시계에서 생기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계가 모두 파랑색이었다가 갑자기 빨강색으로 바뀌고 다시 파랑색으로 바뀐다. 이러한 모든 변화들이 규칙적인 시간간격을 두고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은 합치적인 과정이 된다.
수십억개의 분자들의 활동으로 부터 유래되는 이러한 정도의 질서는 믿을 수없는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화학시계들이 관측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러한 과정이 가능하다고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번에 색을 바꾸기 위하여 분자들은 '교신'할 수있는 방법을 지녀야만 한다. 계는 전체로서 행동해야만 한다. 우리는 화학에서 신경생리학에 이르기 까지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명백하게 중요한 교신이라고 하는 이 중요한 단어를 계속해서 접하게 될 것이다.산일구조들은 교신을 위한 가장 간단한 물리적 기구들 중의 하나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와 같은 형태의 분자가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분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와같은 화학물질은 자기자신의 촉매가 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한쪽으로 '붉은' 분자들이 집중되는 우연한 기회가 있으면, 이 '붉은' 분자들은 더 많은 '붉은' 분자들이 생성하도록 촉매역할을 하며 이렇게 생성된 2차적 '붉은' 분자들은 또 새로운 붉은 분자들을 만들기위한 촉매가 된다. 즉 반복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요컨대 요소와 요소간,요소와 전체간의 자기되먹임의 메카니즘이 자기조직화의 비밀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조직화는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해 볼 수있다. 비근한 예로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기떼의 경우를 보자. 모기떼들은 분산도 확산도 하지 않으면서 그 형태를 아주 잘 유지한다. 개별적인 모기들의 운동의 무질서한 성격을 고찰해 볼 때 이것은 놀랄만한 점이다. 이것은 요소와 요소간의 상호작용(다른 모기떼로 부터 떨어지지 않으려는 성향)과 집단과 요소간의 상호작용(집단적 운동은 개별 모기의 무질서한 운동을 방해한다)이 결부되어 만들어 지는 질서이다.
 무작위적인 움직임이 되먹임을 통해서 복잡한 질서에 이르는 보다 고차원적 과정은 흰개미의 집짓기에서 볼 수있다. 흰개미들의 집짓기에는 아무런 설계도도,그것을 감독할 중앙관료제도도 없다. 처음에 개미들은 흙덩어리를 물어들고 이리저리 옮기면서 무질서하게 돌아다닌다. 이렇게 하면서 다른 개미들을 끌어모으는 페르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방사해서 흙더미에 스며들게 한다. 되는 대로 하다가 어느 곳에 흙이 더 많이 쌓이고,이렇게 되면 그곳이 다른 개미들과 그들이 나르는 흙덩이가 모이는 촛점이 된다. 그것은 더 많은 개미들을 끌어들이고 개미의 행동은 이제 그 구조에 구속되게 된다.
 인간사회에서 옷의 패션의 변화도 이러한 자기되먹임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패션을 만들어 내는 고차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그것을 유도하지만 그것의 성공여부는 자신도 알 수없다. 그것은 뒤에 논의하겠지만 자기되먹임이 가지는 비선형성으로 해서 고도로 불확정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임의의 소수가 그 패션에 매력을 느끼고-그 패션이 자기의 체형에 어울렸을지 모른다-입기 시작한다. 이것이 유행을 탈 경우는 자기되먹임이 성공하는 경우다. 갑자기 그 옷을 입는 사람이 증가하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자기되먹임이 시작되면서 그 유행은 발산적으로 퍼져나간다. 이제 이 패션은 개별적 사람들에게 선호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옷의 양식을 구속하는 강제성을 가진다. 이것은 전체가 요소에 가하는 되먹임이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패션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닮아간다. 요소들의 교란은 항상 있지만 그것은 신속하게 저지되고 계의 평형상태는 유지된다. 예컨대 이 유행에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럴경우 그는 '촌스럽다'는 눈총을 받게된다. 그는 촌스러움을 면하기위해 그 강제에 복종한다. 그는 자기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울며 겨자먹기로 입게된다. 또는 그것에 무관심한 사람도 기성복 시장에 그 스타일의 옷외에는 구할 수없어 그 옷을 입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그 계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부지불식중에 하고 있다.





5. 인다라망,태극,연결망

코흐곡선과 같은 프랙탈 도형들이 가지는 특징은 아무리 잘게 분할해 가도 그 속에 전체의 형태가 닮겨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부분이 전체보다 크다는 의미에서 형식논리의 차원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통찰들은 의외로 많다.
 우선 라이프니쯔의 모나드(monad)의 개념이다.라이프니쯔에 의하면 각각의 모나드의 표상속에는 일체의 다른 것과의 연관 즉 우주 자체가 함의되어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하나하나의 모나드는 극도로 압축된 우주 즉 하나의 소우주(microcosmos)라고 할 수 있다.법장은 유명한 금사자상(金獅子像)에서 이와 유사한 논의를 펴고 있다."사자의 각 갈기 마다 금사자가 들어 있다.또 그 갈기안의 사자의 갈기안에 또 사자가 들어있다.이런 식으로 계가 계를 포용하는데는 끝이 없으며 이것을 인다라 경계문(因陀羅 境界門)이라 부른다" 또 화엄경에서는 "일체의 세계가 한 터럭만한 데 들어가고 한 터럭만한 데에 일체의 세계가 들어가며 일체 중생의 몸이 한 몸에 들어가고 한 몸이 일체중생의 몸에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劫이 한 생각에 들어가고 한 생각에 말할 수 없는 겁이 들어가며 한 순간에 삼매(三昧)에 들어가 억겁이 일어나고 억겁이 들어가 한순간에 일어난다"고 하여 공간의 세계는 물론 시간의 세계 까지 전체속에 부분이 들어오는 한편 그 부분속에 전체가 들어오는 프랙탈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부분속에 전체가 들어 있다는 이러한 논의들이 역설 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은연중에 이것을 실체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만물이 관계의 망속에 얽혀 있다는 통찰의 비유적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이 세계의 어느 부분도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은 없다.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속에서만 존재한다.그러므로 어떤 부분도 자신을 포함한 우주 전체와 연관되어 있고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어떤 부분을 고립시켜 보면 그 부분속에 전체가 들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것은 관계의 양상을 실체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며 우주의 인다라망의 언어라는 거울에 비친 반영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거울이면서 동시에 상이다.그것은 만물을 반사하므로 거울이고 동시에 모든 것에 의해 반사되므로 상이다.말하자면 하나의 사물은 다른 모든 사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반영해내며 어떤 특정사물은 다른 사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 자체라기 보다도 다른 대상의 상이라고 볼 수 있다.이것이 불교의 해인삼매(海印三昧)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라이프니쯔의 모나드도 이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모나드가 창이 없다는 것은 거꾸로 뒤집어 보면 모나드 자체가 창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분과 전체의 역동적 상호관계는 주희의 이분수설에서도 볼 수 있다.태극(太極)에서 이(理)와 기(氣)가 분화되어 나온다.그런데 주희는 이 기속에 태극이 들어 있다고 한다.이것은 태극과 기가 단순한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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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에셔 판 "해인삼매"(Escherport)


  필자는 주희의 문제가 수정난에서 세포의 분화와 씨름한 카우프만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이것은 동질적인 것에서 이질적인 것의 분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주희의 경우 개별화의 원리인 기속에 태극이라는 우주가 들어오고 있다.이것을 카우프만의 표현방식으로 말하면 부분과 전체의 역동적인 관계맺음이다.반면 카우프만을 주희의 언어로 표현하면 전체의 네트워크가 태극이고 그것은 분화된 개별자 속에 함의되어 들어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다라망(불교),태극(주희),관계망(카우프만)은 바로 생명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고 전체가 부분속에 내재해 들어오는 자기조직의 역동적 관계속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하겠다.이러한 착상들은 실체를 기본개념으로 하고 상호고립적인 물질을 대상의 범형으로 파악한 서양과학의 환원론적인 전통과는 구분된다.이것은 아주 오래된 통찰이지만 최근 비평형 열역학,혼돈이론,인공생명 등을 통해서 과학의 주제로서 새삼스럽게 주목받으며 재발견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