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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철학

숙주,기생자,그리고 복잡성의 진화.(2000.6)

 

숙주,기생자,그리고 복잡성의 진화.

 

 

다윈의 동시대인이었던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진화는 동질적인 것에서 이질적인 것으로,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방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진화는 왜 일어나는가?그것이 보다 높은 생존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종의 차원에서 볼 때 복잡한 고등생물체 보다 오히려 박테리아와 같은 원시적 생물체가 훨씬 더 완벽한 생존기계이다.그렇다면 그 가파란 진화의 사다리로 밀어올리는 그 힘은 무엇일까? 피에르 샤르뎅이 말했듯이 어떤 목적지 -그의 용어로 오메가점- 으로 향해 가는 어떤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그러나 이러한 무리한 가정을 하지 않고도 복잡성에로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 해밀턴의 "숙주-기생자 가설"이 그것이다.

 

 

붉은 여왕 효과

 

 

런닝 머신과 같은 기계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달리기를 멈추면 넘어진다.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달릴 수 밖에 없다.그리고 적어도 앞으로 전진하려면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 진화의 런닝머신은 보통의 런닝머신과는 달리 내가 빨리 달릴수록 그 속도는 그에 비례해서 빨라진다.숙주는 기생자라는 런닝머신위를 달리고 있고,기생자는 숙주라는 런닝머신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숙주가 속도를 빨리하면 기생자는 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속도를 더 올리지 않으면 안되고 이에 기생자의 속도가 더 올라가면 숙주는 더더 속도를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루이스 캐럴의 유명한 소설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달려!달려! 더 빨리!"라고 자꾸 다그친다.앨리스는 젖먹은 힘까지 다해 뜀박질을 하는데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그는 이 이상한 런닝머신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러자 여왕은 "그렇게 느려빠진 속도로 달려서는 고작해야 그 자리에 머물수 있을 뿐이야."라고 힐난한다.진화학자들은 이 앨리스의 이야기를 빌려 이 현상에 "붉은 여왕효과"(red queen effect)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적합성 지형과 언덕오르기

 

 

시웰 라이트(C.Wright)는 진화적 적응을 "적합성 지형"(fitness landscape)에서의 "언덕오르기"(hill climbing)에 비유한다.다음 그림을 보자.

 

 

 

 

한 집단의 전체적인 유전자 풀은 이 지형의 한 영역에 위치한다.그 지대가 높을수록 적응도가 높은 것으로 한다.생명체는 전 지형을 조망할 수 없으며 국지적 시야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이것은 아주 합리적인 가정이다.) 그림에서 점선으로된 원은 그 생명체의 시야의 범위를 나타낸다.이 조건하에서 이 언덕오르기가 생명체가 더 높은 적응도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라해도 항상 높은 적응도를 향해 가리라고 예상할 수 없다.1)은 그 생명체의 시야의 범위에서 가장 높은 고도이다.거기서 변화한다는 것은 언덕을 내려오는 것으로 보인다.외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한 그 위치에서 고착되려는 경향을 가진다.그렇다면 모든 생명체가 국지적 봉우리이 고착될 것이고 더 이상의 진화는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진화의 역사속에 보다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는 뚜렷한 추세가 발견되는 것은 왜일까?

 

두 경쟁종을 가정하자.하나가 높은 국지적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종(기생자)이 골짜기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이것은 언덕오르기를 시도하겠지만 이 결과는  국지적 봉우리에 정착한 종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그래서 이 열세종(기생자)의 언덕오르기가 성공한다면 국지적 봉우리에 정착한 우세종을 골짜기로 밀어뜨릴 것이다.골짜기에 떨어진 이 종(숙주)은 살아남기 위해서 다시 언덕오르기를 시작할 것이고 운이 좋다면 또다른 어떤 국지적 봉우리에 도달할 것이다.이것이 그림4)이다.  예컨대 어떤 운좋은 개구리에게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 진뜩진뜩한 혀가 주어졌다면 파리를 더 쉽게 잡을 수 있고 이것은 파리를 봉우리에서 밀어내리게 된다.파리는 미끄러운 몸을 만들어 개구리의 전략에 대응해야 한다.파리의 새로운 언덕오르기가 시작된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성공한다면 개구리는 다시 봉우리에서 골짜기로 떨어지고 새로운 적응적 변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언덕오르기를 시작할 것이다.

 

이 결과 개구리와 파리의 지형도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함께 더 높은 봉우리로 올라서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이 결과 의도하든 아니든 두 종은 그 게임의 결과 함께 더 높은 봉우리로 향해 함께 올라가고 있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지형에 따라서 앞서의 봉우리 보다 낮은 봉우리에 올라설수도 있다.그러나 낮은 봉우리는 그만큼 불안정함으로 쉽게 교란될 것이고 이것은 또 새로운 봉우리를 향한 행군을 계속하게 만들 것이다.1)

 

결국 국지적으로는 오르락내리락 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진전해가는 추세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성에로의 진화에 우리는 목적이나 의도와 같은 어떠한 시스템의 외부요인을 전제하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성에로의 진화적 진전을 설명할 수 있었다.진화에는 보다 나은 것에로의 향한 의도된 목적 같은 것은 없다.다만 살아남을려는 국지적 적응이 있을 뿐이다.그런데 진전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든다.이것은 바로 런닝머신위의 앨리스가 경험한 그 곤혹이다.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달리는 수 밖에 없다.

 

 

신천지

 

 

5억년전 캄브리아기 대번성은 생물의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그리고 이후에도 되풀이 되지 않았던 전무후무한 진화적 분출이었다.오늘날 다세포 생물을 이루는 구조의 기본형태는 모두 이 짧은 '진화의 혁신기'에 마련된 것이다.오늘날 생명체의 기본설계안인 30개의 門(인간은 그 가운데 하나인 척색동물문에 속한다.)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그후 근본적인 새로운 창조는 없었다.그러므로 캄브리아기는 혁신의 강도에서 뿐만 아니라 그 풍부한 창조력의 측면에서 아주 특별한 시기이다.도대체 이 창조의 분출을 일으키게 한 그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린마굴리스에 의하면 이 캄브리아기 대번성을 가능하게 한 특별한 사건은 숙주 단세포 생명체에 기생형 단세포 생명체의 침입이었다.처음에는 숙주생물체의 대량사멸이 있었겠지만 잔존한 숙주 생물체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장기전에 돌입하게 된다.이제 이것은 숙주생물체의 만성질환이 되었다.그러다가 진화의 물꼬를 바꿔놓을 만한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다.숙주와 기생생물체 간의 대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이러한 타협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 가능하다.말하자면 이 둘은 적대적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둘간에는 궁합이 맞았던 것이다.침입해온 기생박테리아는 산소를 이용해서 호흡하는 호기성박테리아였다.산소는 본래 독성의 기체이다.그것은 반응성이 강해서 주위의 어떤 것과도 결합해서 그것을 변형시켜 버리기 때문이다.그러나 반면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이것은 아주 효율좋은 에너지 발생수단이 될 수 있다.숙주박테리아에 침투해온 이 박테리아는 이 기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반면 숙주세포는 기생박테리아에게 장소와 영양을 제공할만큼 사이즈가 큰 박테리아였지만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기술은 갖고 있지 못했다. 에너지발생을 발효의 방식에 의할 수 밖에 없는 만큼 그것의 에너지효율은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 둘이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대타협에 들어감으로써 원핵세포에서 다세포생물체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진핵세포의 출현이라는 진화적 대변혁이 일어났다.이 높은 에너지 효율을 기초로 해서 캄브리아기에 진입한 새로운 생명체는 다세포에로의 진화적 모험을 시도하게 되었다.

 

진화는 일종의 표현예술이다.다세포에로의 이행은 이 생명이라는 예술가에게 표현의 수단을 넓혀 줌으로써 다양한 장르에서의 실험이 행해졌고 여기서 형성된 대표적 장르가 30개의 문이다,

 

그렇다면 좀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들어가자.왜 다세포생명체가 출현했는가?단세포생명체에 비해서 높은 생존가치를 갖기 때문인가?앞서 보았듯이 복잡성에로의 진화는 결코 생존에서의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그것은 더 가파란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곡예일 수 있다.지구상에 발생한 수많은 대량멸종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인간 예술가에게서 보이는 끝없는 표현욕구인가?끝없는 표현의 자유의 확장인가?그러나 이것은 답이라 볼 수 없다.바로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이 끝없는 표현의 자유에로의 추구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이것을 미개척지로 향해가는 미국의 서부개발시대의 역마차의 행렬과 비교하고 싶다.거기는 무한한 기회의 땅이다.왜 그런가?경쟁자가 없는 무주공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대형공룡과 같은 중생대의 파충류의 대량멸종이 있은 후 포유류의 시대인 신생대가 열렸다.포유류는 파충류와의 경쟁에서 이김으로써 그 시대를 대체한 것은 결코 아니다.파충류가 지배하던 시절에 포유류의 종은 그 종과 수에 있어서 아주 빈약한 미미한 생태계의 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았다.포유류의 시대가 열린 것은 단적으로 파충류의 지배적 강인 공룡강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이것과 함께 포유류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그것은 지배적 경쟁자가 없는 가운데서 온갖 진화적 실험을 행할 수가 있었다.포유류는 창조의 절정기를 구가했고 그 정점에 놀라운 창조의 극점,바로 호모 사피엔스가 있다.이것이 제임스 발렌타인의 "빈생태적 가설"이다.

 

그러나 빈생태계는 다른 경쟁종의 멸종을 통해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냄으로써 획득할 수도 있다.캄브리아기 혁신은 생명체들이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신생대의 포유류의 혁신에 비해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단세포 생명체에서 다세포 생명체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단세포 차원에서 이용할 수 없는 기회와 자원이 새로운 진화적 모험의 대가로써 그 앞에 제공되고 있다.

 

이것은 경제라는 생태계와 비교할 수 있다.경쟁상대에게 이기거나 아니면 경쟁상대가 스스로 자멸함으로써 그 시장을 독점할 수도 있지만 기존시장과 상관없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을 통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도 있다.전자는 신생대의 혁신에 비유할 수 있다면 후자는 캄브리아기의 대혁신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캄브리아기 대혁신의 유형은 -훨씬 소규모이기는 하나-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기존의 생태계가 꽉차서 전반적 진화의 정체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다 보면 새로운 생태계의 창출에의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그것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차원으로 터져 나오게 된다.

 

 

복잡성의 진화와 기생자의 역할

 

 

복잡성에로의 진화는 어떤 의도된 목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새로운 생태계를 차지할려는 시도 가운데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기존의 생태계가 차있기 때문에 기존의 조건에서 빈생태계를 찾기 어렵다. 쉬운 문제는 누구나 다 풀 수있다.득점을 올리려면 보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수 밖에 없다.당분간 그는 높은 득점을 올릴 수 있다.그러나 곧 이 문제도 그의 독점이 될 수 없다.다시 더 어려운 문제를 향해.. 이 과정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진화의 전체방향은 점점더 복잡성으로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이며 득점을 올리려는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그중 어떤 종이 숙주와 기생자간의 "붉은 여왕 게임"에 들어가게 되면 그 길항적 경쟁속에서 그 종이 운이 좋다면  의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언덕위의 신천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래의 생존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지 말라.진화의 눈은 국지적이다.당분간 그 신천지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겠지만 그만큼 추락의 위험성을 갖고 있는 만큼 그것을 깨달을 때 쯤이면 저 아득한 아래의 언덕에서 우굴거리고 있는 그 종을 부러워할지 모른다.

 

요컨대 복잡성에로의 진화는 어떤 의도된 목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숙주와 기생자간의 길항적 대립관계속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결과가 진화의 새로운 지형을 열어놓게 되는데 이것이 복잡성에로의 진화이다.

 

진화에 있어서 기생자의 역할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기생은 남의 노력을 훔치는 것이므로 사악한 짓이다.그러나 자연이 경제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기생이야말로 작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얻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톰 레이(T.Ray)는 컴퓨터속에 생명의 진화를 시뮬레이션한 "티에라"(Tierra)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그것의 실행결과 놀랍게도 기생체가 출현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티에라 생명체들은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에서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CPU가 각각의 가상의 생명체들에게 할당해준 자신의 에너지센터에 동력을 공급한다.될수 있는한 많은 자신의 복사물을 만듬으로써 CPU시간을 많이 차지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경쟁에 이길 수 있다.이 게임은 가상생명체간에 가상의 CPU를 장악하기위한 경쟁이다.

 

디지털생명체가 자신을 복제하는데 필요한 명령어는 최소 60문장이다.문장의 길이가 짧아지면 자신을 더 신속히 복사할 수 있다.그런데 이 티에라속에 45개의 문장으로 만들어진 생명체가 나타났다.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의미를 알기 위해서 식물의 번식에 비유해 보자. 생명에는 체세포가 있고 ,또 성세포가 있다.식물이 오로지 증식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꽃가루(성세포)외에는 다른것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종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몸체(체세포)를 유지하는데 에너지의 일부를 투자해야하고 수정을 위해서는 아깝지만 꿀이나 열매를 만드는데 에너지의 일부를  따로 투자하지 않으면 안된다.그러나 다른 식물이 이미 만들어놓은 장치를 훔칠수만 있다면 자신의 전 에너지를 꽃가루를 만드는데 투자할 수 있을 것이고 훨씬 능률적으로 자신을 퍼뜨릴수 있을 것이다.티에라는 자기를 복사하는 기능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은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그러나 복사할 경우에도 일부기능을 남의 것을 훔쳐쓸 수 있다.

 

티에라속의 기생생명체가 한 짓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할당된 CPU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45개의 문장을 복사하는데만 자기 시간을 쓰고 나머지 15개의 문장의 복사에는 다른 유기체의 복사를 훔쳐서 사용한 것이다.그럼으로 그것은 45개의 문장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이 가상공간속에 기생자가 저절로 출현한 것이다!

 

 

"행운의 돌연변이가 성공적인 기생충을 형성한 것이다...기생충은 실행해야할 명령어의 숫자가 적고,CPU시간도 덜 차지 하기 때문에 완전한 꼴을 가진 생물체 이상의 장점을 가지며 더 빨리 증식한다."1)

 

 

그러나 톰레이가 관찰한 그 다음 과정은 더 흥미있다.이 기생충에 대해서 방어력을 갖춘 숙주의 돌연변이가 발생한 것이다.몇가지 명령어를 추가하는 돌연변이가 발생해서 이 기생충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했다.

 

 

"면역을 얻은 숙주는 컴퓨터 메모리속에서 주기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과정을 건너 뛰기 때문에 CPU 레지스터안에서 숙주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기생충들은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숙주의 크기와 위치를 잃게 된다.숙주를 발견할 수 없는 기생충들은 재생산이 불가능하게 되고 따라서 숙주는 기생충의 공격에서 해방된다."2)

 

 

그러나 숙주가 메모리속에서 자신의 크기와 위치를 알리지 않음으로써 받게 되는 불이익도 있다.숙주는 매단계마다 스스로 "자기개념"(self-concept)을 저장하기위해 자기검토과정을 수행해야 한다.이 작업은 높은 에너지라는 비용을 요구한다.따라서 유기체의 크기가 늘어나고 더 많은 CPU시간이 필요해 진다.그러나 그로 인해 얻은 적합성의 증대는 그런 비용이상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따라서 면역된 숙주들이 등장하고 45개의 명령어로 된 기생충을 박멸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기생충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최초의 침입자들이 모습을 감추었지만 그 자손들은 다시 변화를 일으킨다.이 새로운 종의 기생충들은 스스로를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전 시대의 조상 기생충들이 잊었던 숙주에 대한 정보를 기억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더 많은 CPU시간을 필요로 함으로 조상 기생충 보다 더 복잡해진다.이것은 다시 숙주의 복잡화를 유도할 것이다.이 티에라의 우주에서 붉은 여왕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다음으로 일어난 놀라운 사건은 기생자 자체를 피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초기생자(hyper-parasite)가 출현한 것이다.이것은 린마굴리스의 내공생의 진화를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다.

 

 

"초기생충은 놀라운 생물이었다.초기생충은 기생충이 존재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사할 수 있었다.기생충이 감지되면 초기생충은 역으로 그 기생충의 기생충이 되었다.그것은 오히려 기생충의 CPU시간을 뺏아서 자신의 것으로 전용했다.이들은 공생적으로 움직이며 복제를 위한 코드를 공유한다.이 새로운 변이체들은 스스로 복제할 수 없으며 재생산을 위해서 유전자의 결실된 부분을 다른 유기체에게 의존한다.'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에서처럼 각각의 유기체는 이 공생관계를 통해서 이익을 얻는다."3)

 

 

그러나 이 협동관계는 바로 새로운 기생의 물적 토대가 될 수 있다.새로운 기생자가 나타나서 이 두 초기생자사이에 자리를 잡고 서로가 교환하는 복제를 위한 유전자정보를 재빨리 가로챈다.이 초초기생자는 남의 복제코드를 자기의 것으로 제멋대로 전용하면서 불과 37개의 명령어로 구성된 몸체로도 복제를 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이것은 다세포생명체(여기서 초기생자)에의한 기생자의 제어로서의 면역계,그리고 그 면역계를 교묘히 이용해서 초기생자속에 기생하는 암세포(초초기생자)를 연상시킨다.

 

진화에 있어서 기생자의 역할에 대한 깊은 탐구는 생명과 생태계의 비밀에 대한 많은 것을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지금까지 밝힌 진화의 추동력으로서의 기능외에도 그것은 우세종이 약세종을 일방적으로 몰아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종의 다양성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리고 해밀턴이 통찰했듯이 성(sex)도 숙주의 기생자에 대한 한 대응책으로 진화했을지 모른다.(조용현,2000.6.3)

 

 

(주)

 

1) S.Kauffman,At Home in the Universe,(Oxford Univ.Press,1996), p.222

2)스티븐 레비,『인공생명』,김동광 옮김(사민서각),310-311

3) 같은책,같은곳

4) 같은책,316-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