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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철학

카우프만의 신의 마음(1999.12)

 

 :    카우프만의 "신의 마음"1)

                  Stuart Kauffman, At Home in the Universe:Oxford Univ.Press,1996  

                                           

 

 물질적 우주에서 생명이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이 의식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도대체 적어도 무엇이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요즈음 철학은 더 이상 이러한 질문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고대 자연철학이후 철학적 정신을 사로잡아왔던 이러한 주제들은 오늘날에 와서 이미 빛바랜 유물처럼 되어 버렸고 영화와 같은 "일상적 잡담에서의 의미찾기"가 이제 철학의 본령인양 되어 가고 있다.이 조류에서 처음부터 멀찍이 물러서 있었던 필자가 우연찮게 만난 것이 "복잡성의 과학"(science of complexity)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철학의 전통적 거대 담론들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운데 소개하고자 하는 책이 스튜어트 카우프만(S.Kauffman)의 『우주는 우리의 집』(at home in the universe)라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연을 넘어서는 어떤 질서-그의 용어로 賦存秩序(order for free)2)-가 있음을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생명의 기원에서 시작해서 수정난의 형태형성에 이르기 까지,캄브리아기의 대번성에서 기술혁명에 이르기 까지 여러 다양한 주제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질서를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반기계론적 대안으로서의 생기론을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졌다. 필자는 생기론의 생명에 대한 직관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문제는 그 설명방식,즉 "生氣"(elan vital)라는 개념의 그 공허한 동어반복에 있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나의 이론은 철저한 전체론(holism)에 입각하고 있다.그러나 이 이론은 신비적인데서 나온 것이 아니고 수학적 필연성에서 도출된 것이다...생명은 조금씩,조금씩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전체로서 출현했으며 또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69면)

 

 

생기론자도 아니고 더더구나 창조론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가? 바로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

 

 

유전자 연결망

 

 

카우프만은 특이한 경력을 가진 생물학자이다.그는 다터마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해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그는 다시 의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샌프란시스코 의대로 진학했다.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진로를 바꾸면서 다음과 같은 엉터리 삼단논법을 전개했다고 한다."위대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임마누엘 칸트 만큼 똑똑해야한다. 나는 칸트만큼 똑똑하지 못하다.그러므로 나는 의사가 되겠다."


그는 의과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수정난에서의 형태발생(morphogenesis)의 문제에 깊이 매료되게 된다. 어떻게 무규정적인 동질적 胚세포에서 근육세포,신경세포,혈액세포 등이 분화되어 나올수 있는가? 인간을 구성하는 10만종의 유전자가 어떻게 254개의 상이한 세포들을 발현하는가?


사실 이 문제는 19세기 바이스만(A.Weisman)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문제이며 기계론과 생기론의 전투의 현장이기도 했다.모든 세포는 수정난에서 시작한다.그것은 분화를 시작하면서 특정세포로 형성되어 가지만 특정세포가 다시 분화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는 없다.그는 발생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이유는 유전정보가 세포분화에 따라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정난에는 완전한 개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지만 분열할 때 마다 정보가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이것은 아주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바이스만의 추론이 맞다면 수정난을 2세포 단계에서 한쪽을 파괴시키면 나머지 반쪽에서 반쪽자리 개체가 생겨나야 할 것이다.한스 드리쉬(Hans Dreisch)가 성게의 알(카우프만은 개구리의 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착각인 것 같다.)을 가지고 이 실험을 해본 결과 바이스만의 예측과는 달리 온전한 성게의 배로 발달했다. 어떻게 반쪽이 전체의 정보를 가질 수 있는가?이것은 기계라면 절대로 보일 수 없는 현상인데 부분속에 전체가 구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드리쉬는 발생을 유도하는 비물질적인 일종의 힘이 있다고 보고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빌려 "엔텔레키"(entelechy)라고 불렀다.


1960년대 들어와서 쟈콥(F.Jacob)과 모노(J.Monod)가 전개한 오페론(operon) 가설은 엔텔레키와 같은 신비한 개념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그들은 유전자에는 구조유전자 뿐 아니라 그것의 발현을 조절하는 제어유전자(operator)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제어유전자와 그것에 의해 제어되는 한묶음의 구조유전자를 합쳐서 오페론이라고 부른다.) 이 제어유전자에는 통상 구조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리프레서(repressor)가 붙어있다.그러나 분해해야할 물질이 들어오면 이것이 리프레서의 형태를 변형시켜 버리는데 이 때문에 리프레서가 오프레이터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그러면 구조유전자의 전사(transcription)가 시작되고 그 물질을 분해하는 분해효소가 만들어진다. 카우프만은 이 아이디어를 형태형성의 유전자발현의 문제로 확장했다.

 

 

 자콥과 모노는 이 작은 분자가 유전자를 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프레서 자체도 유전자의 산물이기 때문에 유전자들은 유전적 환류를 이루고 있어 서로를 켜고,끌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세포분화는 이러한 유전적환류에 의해서 제어되고 있는지 모른다.이러한 계를 잠깐 고찰해 보자.유전자1이 유전자2를 억제하고,유전자2가 유전자1을 억제한다면 이러한 계는 2가지 상이한 유전자 활성패턴을 갖게 된다.첫 패턴에서는 1이 활성화되고 2가 억제된다.둘째 패턴에서는 2가 활성화되고 1이 억제된다.유전자 발현의 2가지 상이한 패턴으로 해서 이 유전적 환류가 2가지 상이한 세포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각 세포는 동일한 유전적 회로의 選言的 패턴을 이루고 있다.두 세포가 동일한 유전형을 가지면서도 상이한 조합을 통해서 상이한 형태를 발현시킨다...그들의 작업은 세포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시사하고 있다.(96면)

 

 

  인간의 수정난속의 10만여개의 유전자는 상호연결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서로 상대를 켜고,끔으로써 256가지의 상이한 세포형태를 발현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10만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한 연결의 수는

개다. 이 가운데 250여개만 발현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카우프만은 우선 100개의 전구의 간단한 연결망을 만들어서 실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각각의 전구는 다른 두 개의 전구들에 임의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두 전구들의 현재의 상태가 각 전구들의 다음 상태를 결정한다.전구가 켜질지,꺼질지를 지시하는 여러 가지 규칙들,즉 부울리안 함수 역시 임의적으로 정해져 있다. 100개의 전구들은 켜지거나,꺼지거나 2가지 상태중 하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연결망이 취할수 있는 가능한 상태의 수는
또는
이다. 이 가운데 어떤 특정한 상태들만 재현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10만개에서 그것이 일어난다면 100개에서는 당연히 일어나야 한다. 카우프만의 추측대로 형태발생이 유전자들의 연결망의 귀결이라면 말이다.

 
실험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처음에는 연결망 전체에 아무런 패턴도 찾을 수 없었다.어지러운 전구들의 명멸이 계속되었다.그러나 10번째 단계의 패턴이 11,12,13단계를 거쳐 14단계에서 다시 재현되었다.그런 다음 11,12,13단계를 재현하고 다시 10번째의 상태로 복귀하는 4가지 상태의 주기패턴을 보여주었다.

개의 상태가운데 단지 4가지 상태만이 발현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직관상을 얻기위해서 3개의 전구로 된 간단한 부울리안 모형을 살펴보자.(76면) 여기서 가능한 상태의 수는

,즉 8이다.

 

 

 

  


주어진 순간에 네트워크의 각 요소(그림에서 검은 사각형)는 다른 요소들의 상태를 입력받고 자신에 주어진 논리규칙에 따라 자신의 다음 상태를 결정한다.여기서 1은 AND,2와 3은 OR 게이트이다.각 요소의 초기상태가 (000)이라면 다음 상태도 (000)일 것이고 더 이상의 변화가 없을 것이다.(001)이라면 (010)이 되고 이것은 다시 (001)이 되어 이 두 상태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100)이라면 (011)이 되고 다시 (111)이 되어 이 상태에 영원히 고착될 것이다.이 네트워크는 어떤 초기상태에서 출발하든지간에 초기상태에 상관없이 (000) 또는 (111)로 고착되든지 아니면 (001)과 (010)을 반복하게 된다. 이것을 그 계의 끌개(attractor)라고 부른다.물론 각 요소에 다른 진리조건을 주면 다른 형태의 끌개가 만들어질 것이다.그러나 끌개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는 다름 없다.가능한 8가지 상태 가운데 4가지 상태만이 나타나며 그 가운데 4가지 상태가 (111)로 수렴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유전자 발현에서 이론적으로는

의 가능한 상태가 있지만 유전자간의 연결망이 형성되면 저절로 250여개의 상태로 정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 끄고,켜는 연결망이 만들어지면 질서는 저절로 출현한다. 카우프만은 이것을 부존질서라고 불렀다.


그러나 광대한 네트워크에서 상태공간을 압축시키는 그러한 끌개가 꼭 존재하리라는 보장은 있는가?카우프만은 끌개가 출현할 수 있는 계의 조건을 연구했다.(80-83면) 일반적으로 끌개의 수는 상태수의 제곱근이다.100,000개의 전구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있다면 그것의 상태수는

이고 끌개의 수는
,즉
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는
의 상이한 끌개가 있다는 것인데 인간의 경우 고작 254종의 상이한 끌개(세포형)가 있을 뿐이다. 카우프만은 앞서 모형에서 처럼 입력이 2일 경우는 끌개의 수는 상태수의 제곱근이 아니고 요소수의 제곱근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한 유전자의 상태가 다른 두 개의 유전자의 상태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끌개의 수는
이 아니고
,즉 317이 된다.이것은 254종으로 알려진 세포의 종수와 상당히 근접해 있다.

 
이것이 타당하다면 유전자 발현의 신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의 가능한 상태 가운데 317개의 상태만을 허용하는 네트워크의 배선을 찾는 기술적 과업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이것이 입증된다면 발생을 유도해가는 그 무엇이 있다고 본 한스 드리쉬의 통찰이 옳았음이 증명될 것이다.그러나 이 "그 무엇"은 비물질적인 "생기"가 아니고 유전자들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자기촉매적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는 주의깊은 계획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요소들간의 상호작용,그리고 전체와 요소들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자생적 질서이다. 스스로 자기조직화 되어가는 이 네트워크는 범세계적으로 자기조직화 되어가고 있는 인터넷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두렵다고 해야 할까?)

 
이제 우리는 더 원리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자.왜 상호연결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상태의 수는 그것의 제곱근으로 축소되는 것일까? 다수 요소들간의 연결이 상호제약, 즉 대립적 제약(conflicting constraints)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이 문제를 적합성 지형이라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적합성 지형과 NK모델

 

 

카우프만이 확인한 이 부존질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점을 지양하면서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고 있다.그러한 의미에서 기본적 의도에서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창조론자들의 진화론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우연만으로는 복잡한 생명체가 만들어질 확률이 全無하다는 것이다.이것은 부품들이 제멋대로 흝어져 있는 격납고에 허리케인이 불어 보잉 747기가 저절로 조립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우스꽝스럽다.그러므로 생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설계가 있어야 한다.여기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질서가 나올수 있기 때문에 특수설계를 전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즉 자기복제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이가 출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환경과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아 자신의 형질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다.환경에 적합한 것이 선택되고,부적합한 것은 도태되는 과정이 바로 고도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말하자면 자연선택은 제멋대로 흝어져있는 부품들에서 보잉747기를 조립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다.

 
카우프만은 자연선택이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선행조건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그는 이것을 논증하기 위해서 1930년대 시웰 라이트(C.Wright)에 의해서 제안된 "적합성 지형"(fitness landscape)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163-169면)여기서 적응은 언덕오르기에 비유된다.높은 언덕에 오르는 것은 적응도가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경쟁이 시작되면 모든 종은 일제히 언덕오르기를 시작할 것이다.그런데 어떤 종의 언덕오르기는 다른 종의 지형을 바꾸어 놓는다.예컨대 개구리에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 진뜩진뜩한 혀가 주어지면 그것은 파리를 쉽게 잡을 수 있어 개구리의 지형이 상승하고 이것이 파리를 언덕에서 끌어내려 파리의 적합성 지형을 바꾸어 놓는다. 이제 파리가 뱀에 어떤 질병을 옮기는 매개곤충이라고 하자. 파리의 지형도의 변화는 뱀의 적합성의 지형을 위로 끌어 올린다. 이 결과 뱀이 늘어 개구리의 적합성 지형을 도로 아래로 끌어내릴 것이다.이처럼 한 종의 적합성의 정도는 다른 종의 적합성의 정도에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의존하고 있다.

 
이것을 게놈내의 유전자들간의 상호작용에 적용시킨 것이 카우프만의 NK모델이다.(170-180면)게놈내의 한 유전자의 상태는 다른 유전자의 상태에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얽혀있기 때문에 앞서 개구리의 진뜩진뜩한 혀를 만든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게놈내의 다른 유전자에 영향-긍정적,또는 부정적-을 줄지 모른다. 이처럼 유전자들간에 짝을 이루면서(coupling)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유전학자들은 "上位的 상호작용"(epistatic interaction)이라고 부른다.이제 일반적으로 n개의 유전자가 k개의 다른 유전자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 만들어지는 적합성지형을 살펴보자.

 
카우프만은 k값을 변경시킴으로써 지형의 凹凸(ruggedness)과 봉우리의 수를 변경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즉 유전자들간의 상호작용을 증가시키면 대립적 제약들이 많아져서 많은 작은 국지적 봉우리를 가진 울퉁불퉁한 지형이 된다.사실 상호간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는 대립적 제약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앞서 개구리-파리-뱀의 네트워크를 보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1로,손해가 되는 것을 0으로 표시하자.그러면 개구리가 끈적끈적한 혀를 개발했을 경우 1→0→1이 되고 이것은 다시 0→1→0,1→0→1...로 두 상태를 순환한다.이 조그마한 네트워크에도 대립적 제약이 작용해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사실 유기체 뿐만 아니라 복잡한 인공물도 설계상에 모순되는 디자인 기준에 직면한다. 전체설계 가운데 한 부분의 해결은 다른 부분에 대한 최적설계와 충돌한다.그래서 상이한 하위문제들의 대립적 제약이 봉착하는 공통문제에 대한 타협책을 찾아내어야 한다.예컨대 튼튼한 자동차는 이상적이지만 속도나 연료의 소모량과 대립된다. 이 대립되는 디자인 기준은 설계상에 아주 풀기어려운 최적화의 문제를 낳는다.) 이 모형에서 k는 1이지만 k값이 커지면 대립적 제약들이 늘어나서 k값이 적을 때 보이는 순환주기와 같은 질서는 볼 수 없고 복잡한 혼돈의 양상이 나타난다.다시말해서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로 된 울퉁불퉁한 지형으로 변한다.

 
지형구조와 적응적 진화간의 보다 선명한 상을 얻기 위해서 조종손잡이 k를 0으로 두고 시작해 보자.아무런 상위입력도,상호연결도 없기 때문에 대립적 제약도 없다. 이 지형은 하나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고 주위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일본의 후지산을 닮았다.대립형질 1,0중 1이 더 적합한 것을 나타낸다고 하자.그러면 (1111111111)은 전역적 최적값(global optimum)이다. 여기에는 국지적 봉우리들은 없다.왜냐하면 다른 유전자 예컨대 (0001111111)는 변이를 통해서 0을 1로 뒤집음으로써 쉽게 전역적 최적값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국지적 봉우리로 고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더 나아가 각 인근의   게놈들 간에도 적합성에 있어어 큰 차이가 날 수 없는데 1에서 0으로 하나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기껏해야 단지 1/n만큼 변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인근의 게놈들간의 적합성에는 근소한 차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의 봉우리에 완만한 경사를 가진 지형이 만들어진다. 무작위로 된 유전형에서 시작한다고 하자.그렇다면 유전자의 반은 1일 것이고,반은 0일 것이다.그러므로 봉우리 까지의 예상되는 탐색거리는 n/2이다.예컨대 (0101010101)의 경우 거리는 10/2 즉 5인데 5개의 0을 1로 변이시키면 최고봉에 도달할 수 있다. 한 단계 올라설 때 마다 거리는 하나씩 줄어든다. 최악의 유전형 (0000000000)에서 시작하더라도 언덕오르기에 성공할 때 마다 한 단계씩 줄어들어 적응적 탐색은 어렵지 않게 최적값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N값이 비교적 작을 때 나타나는 효과이며 이 값이 커지면 개체군 전체의 변이율이 높아져서 덜 적합한 변이와 더 적합한 변이간의 선택적 차이가 개체군을 봉우리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봉우리 밖으로 흩어지게 만든다.이것이 소위 "오류파국"(error catastrophe)인데 이 효과 때문에 이 지형상에서는 복잡한 고등유기체의 진화는 불가능하다.(184면)

 
보다 그럴듯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k값이 커져야 한다. k값을 그 최대값 N-1까지 돌려서 모든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살펴보자.k가 최대값이 되면 적합성 지형은 완전히 무작위하게 된다.어떤 하나의 유전자를 다른 대립형질로 바꾸는 것,즉 0을 1로,1을 0으로 바꾸는 것은 자신과 모든 다른 유전자에게 영향을 준다.여기서는 북경에서의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에 폭우를 몰고 오는 소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일어난다.여기서는 유리한 변이를 축적할 방법이 없다.다음 단계에서 완전히 그 효과가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다.이 환경에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질서의 구축은 불가능하다.그래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40억년의 기간 동안 매일 복권에 연속해서 당첨되는 극단적으로 좋은 운수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실제 지형은 후지산 지형 처럼 단순하지도 않고,또 그 반대로 완전히 무작위적인 것도 아니다.모든 유기체는 k=0과 k=N-1사이의 어느 점에 위치한 지형속에서 진화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유전자의 무작위적  변이와  환경에 적합한 것의 선택에 기초하고 있다.이 선택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k값이 0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k값이 너무 커서도 안된다.장기간의 컴퓨터시뮬레이션의 결과 카우프만은 k=2에 조율되어 있을 때 선택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찾아내었다. 이것보다 낮으면 오류파국을 피하기 어렵고,이것보다 높으면 대립적 제약이 커져 지형이 울퉁불퉁해져 국지적 봉우리에 갇히게 됨으로 전체의 적합성이 감소해가기 때문이다.(178-179면)

 
우리는 앞서 유전자 연결망에서 입력수가 2이면 끌개의 수가 상태수의 제곱근으로 축소되는 것을 보았다.이것을 지금의 논의와 연관시켜 보면 이 적절한 수의 대립적 제약이 한편으로는 지나친 경직화를 피함으로써 오류파국을 막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친 유동성을 피함으로써 혼돈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여기서 외부조건에 덜 민감한 끌개가 만들어지며 인간의 경우

의 가능한 경로 가운데 250여개의 경로에 자신을 한정하고 있다. 지나친 경직성과 지나친 유동성의 경계선상에서 복잡계로서의 생명은 진화한다.이것은 랭턴(C.Langton)이 제시한 "카오스의 가장자리"(the edge of chaos)의 또 다른 재발견임을 알 수 있다.

 
다윈주의자들은 자연선택 자체가 질서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자연선택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작동가능하게 하는 어떤 지형이 주어져 있지 않을 경우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다.완만한 지형에서 선택의 기능은 변화를 위한 선택의 기능 보다는 변화의 저지를 위한 도태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거기서 자연선택이 할 수 있는 것은 질서를 만들기 보다 혼돈을 저지하는 것이다.요철이 극심한 지형에서는 선택은 축적되지 못하고 다음 단계에서 무효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전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자연선택에 진화가능성을 열어주는 이 특별한 지형은 그 자체 선택의 산물일 수는 없다.자연속에 내재해 있는 부존질서하에서만 자연선택은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선택 그 자체만으로 선택이 잘 작동하는 그러한 종류의 지형에 적응한 유기체들을 만들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지가 나로서는 아주 의심스럽다.선택 그 자체만으로 진화가능성을 산출하고,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분명하지 않다.세포와 유기체가 선택이 작동할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실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진화는 진화를 위한 발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놀랄만한 가능성으로 되돌아오고 있다.자기조직화가 진화적 능력의 전제조건이라는 것,그것이 자연선택을 효율적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그것이 점진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강인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왜냐하면 자생적 질서,강인성(robustness),용장성(redundancy),점진성,상호연관된 지형 간에는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용장성을 가진 계는 돌연변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사소한 변화만에 한정시키는 힘이 있다.용장성은 점진적 변화를 산출하는 힘이다.용장성의 또 다른 이름은 강인성이다.그것은 많은 세세한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힘이다.용장성의 또 다른 이름은 구조적 안정성이다.접혀진 단백질구조,조립된 바이러스의 구조,부울리안 네트워크등이 그것이다.

 
이 견해가 대략적으로 타당하다면 자기조직화된 바로 그것이 전제됨으로 자연선택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자기조직과 자연선택 간에는 어떠한 근본적 대립도 없다.질서의 이 두 원천은 자연의 파트너이다...게놈 네트워크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가까운 질서의 영역에 있다.그러한 네트워크는 쉽게 형성되는 질서,부존질서의 일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구조적으로,동력학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그래서 그것은 상호연관된 지형상에 적응할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을 때 재구성될 수도 있다...

 
만일 자연선택이 자기조직적인 강인한 특성들을 이용해서 유기체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뜯어맞춘 임시방편적 분자기계가 아니다...진화는 우연이 아니며 근저에 있는 질서의 표현이다. 우리는 예상된 존재이다.그리고 우주는 우리의 집이다.(188-189면)

 

 

 NK와 五行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카우프만의 NK모델과 오행모형간의 유사성이 자꾸 상기되었다.동양철학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는 필자의 이 비교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비교하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다.카우프만의 복잡적응계에서 k값은 2이다.이것은 두 요소의 상태를 입력받아서 자신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입력값의 하나가 긍정적 작용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부정적 작용을 하는 것이라 봄으로써 오행의 모델로 바꿀 수 있다.하나는 相生이고,다른 하나는 相克이다.이것 역시 다른 요소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므로 전체적으로는 5개의 요소가 필요하다. 즉 자기자신과 자신이 타자로부터 입력을 받을 때 좋은 것,나쁜 것 둘,그리고 자신이 타자에게 출력할 때 좋은 것,나쁜 것 둘 그래서 합은 다섯이 된다.k=2일 경우 네트워크 전체와 요소를 연결시킬 수 있는 가장 간단한 N의 수는 5이다.3)

 

 

이 오행모형에서 대립적 제약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를 간단히 보일 수 있다.목을 강화하기 위해 상극인 토를 억제하면 그것과 상극인 수가 강화되어 수와 상생인 목을 강화시킬 수 있다.이 순환만 계속 작동한다면 양의 피드백이 작동하여 목의 무한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을 보면 수의 상승으로 화가 약화되고 이것은 금을 강화시켜 그것과 상극인 목을 약화시키는 음의 피드백,말하자면 대립적 제약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N=5,k=2의 이 네트워크는 상호간의 상생과 상극작용을 통해서 서로를 부양시키기도 하고 억제시키기도 하는 복잡한 상호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유동하는 균형속에 있으며 복잡적응계에서 나타나는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심오한 모델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용현,『과학철학』2권2호,1999)

 

 

 

   (주)

1) 한 독자는 아마존에 보낸 "신을 흘낏 보기"(Fleeting Glimpse of God)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나는 이 책을 마치 靈적인 텍스트인 것 처럼 읽었다."고 말하고 있다.필자의 느낌도 바로 이러했다. 빈약한 나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장엄한 자연의 깊이를 흘낏 보았다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카우프만 자신이 찾고 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나는 항상 특수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질서를 원했습니다.나는 질서가-수학적 의미에서-일반적이고,전형적이고,불가피하고,마치 신처럼 존엄한 무엇이기를 원했습니다.바로 그겁니다.그것은 신의 마음입니다.내가 항상 보고 싶었던 것은 신이 빙빙 돌리고 있는 손가락이 아니라 신의 마음인 것입니다."(S.Levy,김동광 옮김『인공생명』,사민서각,182면) 나는 카우프만이 이 책의 제목을 왜 『신의 마음』이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카우프만의 주저로는 이 책에 앞서 출간된 『질서의 기원』(The Origin of Order(Oxford Univ.,1993))이 있다.출간된 시차가 있기 때문에 몇가지 새로운 논의들도 있지만 『질서의 기원』에서 다룬 논의들을 일반인들을 위해 풀어쓴 책이 『우주는 우리의 집』이라는 책이다.

2) "order for free"는 포착하기 어려운 개념이다.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들어있다.첫째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특별한 설계와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그것은 계내에 자기촉매적 연결망이 만들어지면 저절로 만들어진다. 둘째는 "자유로운 질서"(카우프만은 이것을 redundancy,즉 冗長性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의 의미이다.통상 자유와 질서는 반대되는 개념이다.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질서에 근거해야 하고,진정한 질서는 자유를 내포해야 한다.질서에 근거하지 않은 자유는 혼돈외에 다른 것이 아닐것이고,자유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 질서는 얼어붙은 질서이다.그래서 자유로운 질서는 질서와 혼돈(절대자유)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이 자유로운 질서에 가장 비근한 예가 글쓰기의 창조성이 아닌가 한다.문장은 문법에 제약되지만 그 제약하에서 완전한 자유도를 가진다.제약없는 절대자유의 글쓰기는 창조성을 낳는 것이 아니라 넌센스를 만들 것이다.詩가 이 위태위태한 균형 가운데 있다.詩는 새로운 창조이므로 글쓰기의 절대자유를 지향하지만 그것으로해서 자칫 넌센스의 위험성에 빠지기 쉽다.詩는 창조성이 근거하고 있는 그 질서의 파괴를 통해 창조성을 얻을려는 역설 가운데에 있다.사실 생명의 자기표현으로서의 진화도 항상 이 역설속에 있다.

둘의 의미를 종합하면 자기촉매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자유의 질서가 저절로 출현한다는 것이다."저절로 출현하는 자유의 질서", 이것을 어떻게 번역하면 전체 의미를 아우를 수 있을까? 일단 부존질서로 번역해 둔다.

3) 오행의 구조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는 소광섭,"오행의 수리물리학적 모형"(과학과 철학4집)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