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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디자인과 자연의 미학

소설 속의 피보나치 수열....『다빈치 코드』






[8] 랭던은 마룻바닥에 휘갈겨 쓴 자줏빛의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크 소니에르의 마지막 메시지는 랭던의 상상에서 벗어난, 있을 법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메시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랭던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별 모양이 악마 숭배와 관련되었을 거라는 파슈의 직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소니에르는 악마라는 표현을 그대로 남긴 것이다.

파슈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암호해독 요원이 벌써 작업을 마쳤을 겁니다. 우리는 이 숫자들이 소니에르를 죽인 자를 밝혀줄 열쇠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전화 교환국이나 무슨 신분증에 나와 있는 번호일지도 모르죠. 이 숫자들이 뭔가를 상징하고 있습니까?” 랭던은 숫자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어떤 상징을 도출하려면 몇 시간은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니에르가 의도한 바가 있다 해도 랭던에게는 숫자들 모두 무작위로 뽑힌 것 같았다. 감각을 이리저리 꿰맞추어 상징의 해석 절차를 밟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여기 있는 별 모양과 글자, 숫자들은 모두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도 전혀 다른 별개의 것들로 보였다.

“랭던 씨가 앞서 단언한 대로, 소니에르의 행위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여신숭배라든가, 뭐 그런 연장선에 있는 뭔가를 말이죠. 그런데 이 메시지가 어떻게 들어맞는 겁니까?” 랭던은 파슈의 얘기가 입에 발린 칭찬임을 알고 있었다. 이 기괴한 메시지는 여신숭배라는 랭던의 시나리오와는 조금도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저 구절은 무슨 규탄처럼 보이는데요, 안 그런가요” 파슈가 말했다.

[11] 숫자로 된 농담? 소니에르 씨의 기호에 대한 자네의 해석이라는 것이, 일종의 숫자 장난일 뿐이란 말인가?” 브쥐 파슈는 불신으로 가득 차서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소피 느뵈를 노려보았다.

파슈는 이 여자의 설명을 전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허락 없이 주제넘게 참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소니에르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기호가 그저 숫자로 된 장난질일 뿐이라고 파슈를 설득하려는 것이다.

소피는 빠른 프랑스어로 설명했다.

“이 기호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간단한 거예요. 자크 소니에르는 우리가 즉시 꿰뚫어볼 것을 알았을 거에요. 여기 해독한 내용이예요.” 그녀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파슈에게 건넸다.

파슈는 종이를 보았다.

1-1-2-3-5-8-13-21 “이게 다인가? 자네가 한 것이라곤 숫자를 커지는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 뿐이잖은가?” 소피는 이 상황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일 줄 아는 배짱이 있었다.

“정확해요.” 파슈의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끓는 것처럼 낮아졌다.

[20] 소피를 따라 서둘러 내려가던 랭던은 입을 열었다.

“당신 할아버님 말입니다. 당신에게 별표에 대해서 얘기할 때, 여신숭배라든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분개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나요?” 소피는 고개를 저었다.

“난 수학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황금비율이라든가, PHI, 피보나치 수열, 그런 것들요.” 랭던은 놀랐다.

“할아버지가 당신에게 PHI 숫자를 가르쳤다는 겁니까?” 소피의 표정이 수줍게 변했다.

“물론이죠. 황금비율도요. 사실 할아버지는 내가 반은 황금이나 다름없다는 농담을 했어요 ...... 있잖아요. 내 이름에 들어간 글자들 때문에.” 랭던은 잠시 생각하다가 신음했다.

‘소피...... s-o-PHI-e'

계단을 내려가며, 랭던은 PHI에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소니에르의 단서들이 훨씬 일관성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빈치 ...... 피보나치 수열...... 별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한 가지 개념에 연결되어 있었다. 예술사에서 가장 기본 개념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랭던은 종종 몇 주에 걸쳐 강의를 했다.

‘PHI'

갑자가 기억이 하버드로 되돌아가, <예술의상징> 수업시간에 서있는 것 같았다. 랭던은 칠판에 자기가 좋아하는 숫자를 적고 있었다.

‘1.618’ 랭던은 학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 숫자가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뒤에서 수학과의 다리 긴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PHI(그리스 알파벳의 21번째) 숫자입니다.” 학생은 ‘피-’라고 발음했다.

“잘했네. 스테트너. 여러분, PHI입니다.” 싱글거리면서 스테트너가 덧붙였다.

“PI(그리스 알파벳의 16번째)와 혼동해서는 안되죠. 우리 수학자들은 ‘PHI'의 하나밖에 없는 H가 PI보다 훨씬 멋있다!고 말하길 좋아하죠.” 랭던은 웃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스테트너는 풀이 죽었다.

“이 숫자 PHI는 1.618이다. 예술에서 아주 중요한 숫자지. 그 이유를 말해 줄수 있는 사람 있나?”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 아닌가요?” 스테트너가 생기를 되찾으며 물었다.

모두가 웃었다.

랭던이 말했다.

“사실, 스테트너가 맞다. 일반적으로 PHI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숫자로 간주된다.” 웃음은 즉시 가라앉았다. 스테트너 혼자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슬라이드 영사기를 설치하면서, 랭던은 이 숫자가 피보나치 수열에서 나온 것임을 설명했다. 연속된 두 숫자의 합이 다음 숫자와 같아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연속된 두 숫자를 서로 나누어 보면 그 몫이 거의 1.618, 즉 PHI 값과 항상 비슷하게 나오기 때문에 더 유명한 수열이다. PHI!

PHI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신비로운 수학적인 면모에 기원이 있는 것 같지만, PHI의 진정한 매력은 자연의 일부를 이루는 그 역할에 있었다. 식물, 동물 심지어 인체에서도 ‘PHI:1' 이라는 기이한 비율을 찾아볼 수 있다.

강의실의 불을 끄면서 랭던은 설명했다.

“PHI는 자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우연과는 거리가 멀지, 그래서 고대인들은 PHI를 신이 미리 정해 놓은 숫자라고 생각했다. 옛날 과학자들은 1:1.618을 황금비율이라고 불렀지.” 앞줄에 앉은 젊은 여학생이 말했다.

“잠깐만요. 전 생물학 전공인데요, 자연에서 이런 황금비율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요.” 랭던은 싱긋 웃었다.

“없어? 그럼 꿀벌 집단에서 수벌과 암벌의 관계를 공부했나?” “물론이죠. 암벌의 수가항상 수벌보다 많죠.” “정확해. 그럼 수벌의 수로 암벌의 수를 나누면, 항상 똑같은 숫자가 나온다는 것을 아나?” “그런가요?” “그래, 바로 PHI지” 여학생은 숨을 멈추었다.

“말도 안 돼요!” “말이 돼. 이걸 알아볼 수 있겠나?” 랭던은 웃으면서 곧바로 되받았다. 그리고 나선형의 조개 사진을 영사기 위에 올렸다.

생물학 전공 학생이 말했다.

“앵무조개네요. 조개 속 빈 공간으로 가스를 뿜어서, 바닷속에서 떠다닐 수 있게 자기를 조정하는 두족형 연체동물이예요.” “정확해. 여기 조개 껍질의 나선들이 보이는데 말이야. 한 나선과 그 다음 나선의 직경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맞힐 수 있겠나?” 앵무조개의 소용돌이 모양의 나선에 눈을 붙이고 있는 여학생의 표정은 자신이 없어보였다.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PHI. 황금비율이야. 1:1.618” 학생은 놀란 표정이었다.

랭던은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갔다. 해바라기의 씨받이를 근접 촬영한 것이었다.

“해바라기씨들은 앵무조개의 나선형과는 반대로 자라지. 각 나선의 직경은 다음 나선의 직경과 어떤 비율을 이룰까?” “PHI? "

모두가 대답했다.

“빙고.” 랭던은 다음 슬라이드로 손을 뻗었다. 나선형으로 자라는 솔방울. 식물줄기의 잎새 배열. 곤충 분할. 놀랍게도 모두가 황금비율에 들어맞았다.

“정말 놀라운데!” 누군가 외쳤다.

“정말 놀라워요. 그런데 그게 예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하! 드디어 물어보셨군.” 랭던은 다른 슬라이드를 꺼냈다. 노랗게 바랜 양피지 위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알몸의 남자가 들어있었다.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름을 딴 유명한 스케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였다. 비트루비우스는 저서 <건축학>에서 황금비율을 찬탄한 로마 시대의 뛰어난 건축가다.

“다 빈치보다 인체의 황금구조를 잘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빈치는 인간의 뼈 구조의 정확한 비율을 알아내기 위해서 실제로 시체를 파내기도 했지. 그는 말 그대로 인체가 항상 PHI를 이루는 덩어리들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이야.” 모든 학생들이 랭던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랭던은 제안했다.

“날 믿지 못하겠나 보지? 다음에 샤워할 일이 있으면 자기 몸을 재보게.” 몇몇 풋볼 선수들이 킬킬거렸다.

“운동선수들만이 아니야. 여러분 모두, 남학생 여학생 모두, 한번 재봐. 먼저 머리끝에서부터 바닥까지 재고, 그 길이를 배꼽에서 바닥까지 잰 길이로 나누는 거지. 어떤 숫자가 나올까?” “PHI는 아닐 겁니다!” 운동선수들 가운데 하나가 불신에 찬 목소리로 불쑥 내뱉었다.

랭던은 대답했다.

“아니. PHI야. 1.618이지. 다른 예를 더 원하나? 어깨에서 손가락 끝까지 잰 후에. 그 길이를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잰 길이로 나눠 봐. 다시 PHI야. 하나 더? 엉덩이에서 바닥까지 잰 뒤 무릎에서 바닥까지 잰 길이로 나눈다. PHI? 물론이지. 손가락 마디, 발가락 마디, 척추관절 마디, 모두 PHI, PHI, PHI야. 여러분, 여러분 각자의 몸은 걸어다니는 황금비율의 기념품이다.” 어둠 속에서도 랭던은 학생들이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랭던은 몸안에서 익숙한 열기를 느꼈다. 바로 이 점이 그가 가르치는 이유였다.

“여러분, 여러분도 알다시피, 혼돈의 세상에도 그 바닥에는 질서가 흐른다. 고대인들이 PHI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신이 세상을 위해 만들어 놓은 덩어리들 사이로 서툴게 돌아다닐 뿐이라고 믿었지.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숭배한 거야. 지금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지. 신의 손은 분명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말이야.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머니인 지구를 경배하는 종교들이 존재한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교들이 하는 식으로 자연을 찬미하지. 다만 그런 줄 모르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야. 메이 데이 같은 경우가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봄이 다시 찾아온 것을 축하하고, 땅이 생명을 되찾게 해준 자연의 관대함에 감사를 드리는 거지. 황금비율에 대한 신비로운 마술은 태초부터 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그저 자연의 규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거든. 왜냐하면 조물주의 손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모방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여러분은 예술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황금비율의 예를 만나게 될 거야.” 나머지 30분을, 랭던은 학생들에게 미켈란젤로, 알브레이트 뒤러, 다 빈치 그 외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모두들 작품속에서 황금비율을 고의적으로, 그리고 열성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이었다.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심지어 뉴욕에 있는 UN빌딩 같은 건축물에서도 PHI를 볼수 있다는 것을 랭던은 제시했다. PHI는 작곡에서도 나타나는데, 버르토크, 드뷔시, 슈베르트를 비롯해 모차르트의 소나타들과 베토벤의 5번 교향곡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명장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바이올린을 제작할 때, F홀의 정확한 자리를 계산해 내기 위해서 PHI 숫자를 이용했다는 얘기도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랭던은 칠판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끝으로 칠판에 다섯 개의 선을 그어 오각형의 별을 만들었다.

“이 기호는 이번 학기에 여러분이 보게 될 기호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기호다. 별표라고 불리는 이 기호는 여러 문화에서 신성하면서도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 그런지 말해 볼 사람?” 스테트너가 손을 들었다.

“왜냐하면 별 모양을 그릴 때, 선들이 황금비율에 따라 자동적으로 분할되기 때문입니다.” 랭던은 뿌듯한 표정으로 학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래, 별에 있는 모든 선들의 비율은 정확히 PHI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기호를 황금비율의 궁극적인 상징이라고 하지. 이러한 이유로 오각형의 별 모양은 여신과 신성한 여성을 나타내는 아름다움의 완벽의 상징이 되어 왔다.” 여학생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가지만 말해두자. 오늘 우리는 그저 다 빈치를 슬쩍 건드리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 우리는 훨씬 더 자주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여신을 고대 방식으로 숭배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으니까 . 내일은 그의 유명한 프레스코화 <최후의 만찬>을 보여줄거야. 여러분이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신성한 여성에 대해 가장 놀라운 찬사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누군가 말했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최후의 만찬>은 예수에 관한 그림으로 알고 있는데요.” 랭던은 윙크했다.

“여러분이 결코 상상도 못할 상징들이 그림에 숨겨져 있지.” 소피가 속삭였다.

“이봐요. 뭐가 잘못됐어요? 거의 다 왔어요. 서둘러요.” 딴생각에 빠져든 마음을 추스르며 랭던은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 계단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랭던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몸이 굳었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소피가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어.’ 랭던은 생각했다.

하지만 랭던은 알아냈다.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큰 그릇 속에...... PHI와 다 빈치의 이미지가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면서 랭던의 마음으로 밀려 들어왔다. 랭던은 자기도 모르게 소니에르의 코드를 풀어 버린 것이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이건 가장 간단한 코드야!” 랭던보다 아래 계단에 있던 소피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랭던을 올려다보면서 멈춰 섰다.

‘코드?’ 밤새도록 숙고했지만, 어떤 기호도 찾아낼 수 없었다. 아주 간단한 것도.

랭던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이미 말했소. 피보나치의 숫자들은 올바른 순서로 있어야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장난일 뿐이라고 말이오.” 랭던이 무슨 얘길 하려는지 소피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피보나치 숫자들?’ 소피는 그 숫자들이 단지 오늘 밤 벌어진 사건에 암호 해독부서를 참여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거기에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그녀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종이를 꺼내 들고, 소니에르가 남긴 메시지를 다시 살폈다.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이 숫자들이 뭐 어떻다는 거지?’ 종이를 가져가며 랭던이 말했다.

“뒤섞어 놓은 피보나치 수열이 단서입니다. 이 숫자들이 다른 부분을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에 대한 단서인 거죠. 아무 의미 없이 숫자들을 늘어놓은 것처럼. 같은 식으로 글자들을 해석하라는 의미인 겁니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오, 불구의 성인이여? 이 말들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적어 놓은 글자들일 뿐이지요.” 소피는 랭던의 암시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무척 간단한 얘기였다. 소피는 랭던을 응시했다.

“그러니까, 당신 생각은. 이 메시지가...... 아나그램(철자 바꾸기)? 신문에서 아무 말이나 골라낸 것처럼요?” 랭던은 소피의 얼굴에 떠오른 의심을 볼 수 있었지만,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아나그램이 기호학에서 얼마나 풍부한 역사를 지녔는지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카발라(중세 유대교의 신비철학 또는 밀교)의 신비한 가르침은 아나그램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서 헤브라이어 글자들을 재배치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통해 프랑스 왕들은 아나그램에 마법의 힘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왕들은 왕립 아나그램 전문가들을 임명해, 중요한 자료를 분석할 때 돕도록 했다. 로마 사람들은 실제로 아나그램에 관한 학문을 아르스 마그나, 즉 위대한 예술이라고 불렀다.

랭던의 눈동자는 소피의 눈을 붙들고 있었다.

“당신 할아버님의 뜻은 바로 우리 코앞에 있었소. 그분은 충분한 단서를 우리에게 남긴 거요.” 아무 말 없이 랭던은 외투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고, 각 줄의 글자들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O,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

이 글자들은 완벽한 아나그램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L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