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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유토피아,디스토피아

나쁜 유전자가 있는가?(2000.6)

 

"나쁜" 유전자가 있는가?

 

 

기술의 유토피아

 

게놈은 30억쌍의 염기의 형태로 부호화되어 있는 인간의 설계도이다.인간게놈프로젝트는 바로 이 염기서열을 해독하기 위한 사업이었으며 NIH(미국립보건원)의 주도아래 전세계의 350여 연구기관이 참여하여 10년간 30억달러를 쏟아부은 인류과학사상 최대규모의 프로젝트이다.이 대망의 사업이 이제 종착점에 도달해 이번달에 그 초안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시작일 뿐 이것의 완성이 인체의 비밀의 해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그 부호의 의미를 해독하는데는 수십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막 보물지도를 입수한 것이다.그러나 그 지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키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보물을 손에 넣기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적 질병과 연관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이나마 알려져 있으므로 게놈지도가 완성되면 질병과 장애의 치료,그리고 예방에는 바로 이용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내린 인류에의 복음인가?서정선교수(서울의대)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미래의학의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우리의 관심은 이 혁명이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에 있다.쓰기에 따라서는 길몽이 될 수도 있고 흉몽이 되기도 할 생명에 관한 완벽한 지식정보는 과연 어떻게 이용될 것인가?

 

①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같은 정보가 이미 질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오랜 염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사실이다.태어나서 한번도 생명의 즐거움을 누려보지 못한 유전병 환자들이나 암,고혈압,당뇨병에 걸린 환자들은 이 기술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다.

 

②미래 의학에 엄청난 재원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정리하면서 허무와 싸우는 노인들에게 의학은 가능한 한 수명연장의 꿈을 실현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나아가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유전자를 임의로 선택하는 맞춤인간을 시도하는 것도 거부할만한 일은 아니다.이제 생명복제기술에 의한 자가줄기세포치료법으로 120세까지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③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명의 비밀이 완전히 풀리게 되면 인간과 靈性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21세기 영성시대를 맞아 생명의 완벽한 이해가 가능해져 질병해방과 수면연장의 꿈을 실현하고 끝으로 인간들의 영성회복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면 이것이 선인들이 말하는 '물질개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중앙일보,00년5월22일자)

 

 

①은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갖는 반자연적,반생태적 측면도 우리가 분명히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②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며(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의 일반적 관점이라는 것은 사실이다.),③은 사실 어이가 없는 생각이며 서정선교수(또는 많은 과학자들)의 '철학의 빈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필자는 오히려 생명의 실상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면 오히려 질병을 보는 눈이 바뀌고 더불어 수면연장 자체를 반생명적 행태로 보리라 생각한다.

 

정복을 해방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그것은 오히려 자신을 더 옥죄이게 하는 질곡일 뿐이다.그것은 질병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서정선교수가 말하고자 한 것은 질병의 정복이지 질병의 해방이 아니며 이 정복은 새로운 질병의 질곡으로 이끌어갈 뿐이다.해방은 욕망을 놓음으로써 온다는 것이 오히려 우리 선인들의 가르침이며 그것이 말하자면 '물질개벽'이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욕망의 끝에서 영성의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보는 것 같다.

 

 

혼돈의 일곱구멍(七竅)

 

 

인간은 수많은 유전적 질병들에 시달리고 있다.그러한 유전적 질병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로 헌팅턴병(Huntington disease)이 있다.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대개 40대까지는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희미해지며 근육의 경련을 일으킨다.신경세포들이 서서히 파괴되면서 걷지도 못하고,자기 이름도 잊어버리고 급기야는 모든 기억을 잃어 버리게 되는 무서운 유전적 질병이다.더욱 무서운 것은 보통의 유전적 질병이 열성이어서 정상적 대립유전자를 갖고 있을 경우 발현되지 않지만 이 경우는 우성이어서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의 자식의 절반이 이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그외에 겸상적혈구 빈혈증,낭포성 섬유증,페닐케톤뇨증 등 수많은 유전적 질병들이 있으며 의사에게 물어보면 쉬지 않고 줄줄이 외워나갈 것이다.그외 직접적 유전적 질병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전자에 의해서 유도되는 많은 질병들이 있다.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관상동맥질환은 상당부분 유전자에 달려 있다고 한다.그래서 아버지가 55세 이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장마비로 급사할 확률이 5배나 높다고 한다.암의 경우도 그 발병은 상당한 부분 선천적 소질에 의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유전자지도가 작성되어 각 개인의 유전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 잘못된 유전자를 사전에 제거 또는 교체함으로써 유전적 발병율을 상당한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유전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로 보아서는 이것은 꿈의 기술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생명의 개조라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莊子』의 應帝王편에 나오는 한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남해의 신을 숙(숙)이라 하고,북해의 신을 홀(忽)이라 하며,중앙의 신을 混沌이라고 한다.숙과 홀이 어느 때에 혼돈의 땅에서 서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위해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그래서 두 신은 혼돈의 은혜를 갚으려고 의논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구멍이 있어서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홀로 이 분만이 없으니,우리 시험삼아 구멍을 뚫어줍시다. "이렇게 하여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더니,이레째가 되자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1)

 

 

이런 비유를 해보면 어떨까? 숙과 홀은 혼돈이 여러 가지 유전적 질병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측은해 했다.왜 저렇게 비합리적인 몸(혼돈)으로 되어있는 것일까?몇가지만 고치면 보다 합리적 몸(질서)으로  되어 유전적 질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텐데.그들은 혼돈의 유전자를 개조해주기로 하고 그 시술을 행했다.(구멍을 뚫다.)그런데 그 결과 좋아지기는커녕 혼돈은 아예 죽고 말았다.그들은 질병 자체가 혼돈의 생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유전자 시술의 기본적 전제는 '나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그럼으로써 그것을 제거,교체함으로써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과연 나쁜 유전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그것이 원인이 되어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원인이 된 유전자가 비정상적인 '나쁜'유전자라고 단순히 가정해온 것이 아닐까?그러나 그 유전자가 다른 어떤 원인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다시말해서 유전적 질병의 발병가능성은 다른 어떤 곳에서의 긍정적 효과를 위한 타협책일 수도 있지 않은가? 진화생물학자 윌리암스(G.Wiliam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몸의 여러 가지 특성중 어느것이 불완전한 것인가를 판별해내려면 우선 많은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몸이 기능하도록 해주고 있는 완전성과의 절충을 이해해야 한다.

 

여느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진화는 쉴새 없이 타협한다.자동차를 설계하는 사람은 화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연료탱크를 더 두껍게 만들 수 있다.그러나 그렇게 하면 제작비가 많이 들고 자동차의 주행거리와 가속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어떤 선에서 절충이 필요하게 된다.그러므로 연료탱크는 심하게 충돌하면 폭발하게 되어있고,이러한 설계상의 타협 때문에 매년 몇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자연선택이 모든 특징들에 대해 동시에 완전성을 구현할 수 없는 반면 그 절충들은 마구잡이가 아니라 최대의 순이득을 얻게끔 정교하게 형성된다.2)

 

 

'혼돈'의 비합리적인 몸도 다른 어떤 긍정적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타협책일지 모른다.그것을 알지 못하는 숙과 홀이 질병의 원인을 찾아 제거해준 결과는 다른 곳에서의 치명적 지장을 야기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혼돈의 만성적 질환이 그 혼돈의 생명유지의 비밀이었다는 것을 숙과 홀은 몰랐던 것이다. 유전적 질병 가운데 잘 연구된 아주 유명한 "겸상적혈구 빈혈증"의 사례를 가지고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자.

 

 

겸상 적혈구 빈혈증(鎌狀赤血球貧血症,sickle cellanenica)

 

 

흑인에게서 큰 빈도로 나타나는 유전성 질환으로 혈색소의 구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용해성이 낮고 산소 장력의 저하에 따라 혈색소분자의 축합(縮合)이 일어나, 적혈구가 낫 모양(鎌狀)으로 변형한다. 이 겸상적혈구는 쉽게 파괴되는데 이것들이 응집해서 혈관에 혈전(血栓)을 만들기 쉽다. 이에 따라 각종 장기나 조직에 순환장애를 일으키면서 여러 가지 증세를 야기한다.

 

 

 

둥근 것이 정상헤모글로빈이며 그사이에 낫모양으로 보이는 것이 겸상헤모글로빈이다.이것이 인체의 가장 가는 관인 모세혈관을 통과할 때 적혈구들 끼리 서로 붙어서 혈관에서 혈액의 흐름을 막고 그 결과 그 근처의 조각이 산소결핍으로 손상된다.

 

 

그런데 이 병은 헤모글로빈 사슬을 조립하는 몇 백개의 염기쌍중 단지 한 개의 염기쌍이 달라지는 아주 미미한 DNA변화 때문에 생겨난다.헤모글로빈 단백질 합성때 단백질 합성의 여섯 번째 자리에 글루타민 대신 발린이 들어가게 된다.따라서 정상적인 단백질사슬이 만들어지지 않고 그와는 약간 다른 헤모글로빈-S 단백질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어떤 집단에서는 헤모글로빈-S 유전자의 빈도가 높고 어떤 집단에서는 그 유전자의 빈도가 낮다.그 이유는 무엇일까?그뒤 이것은 놀랍게도 말라리아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헤모글로빈-S 유전자를 하나 가진 사람이 그 유전자가 없는 사람보다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 말라리아에 걸리더라도 그 병세가 훨씬 약하고 사망률이 낮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왜일까?3) 헤모글로빈-S가 정상헤모글로빈과 섞여 있으면 말라리아 병원충은 정상헤모글로빈하에서 보다 증식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첫째로 말라리아 병원충이 적혈구 안에 증식할 때 적혈구 내부환경의 변화로 적혈구는 낫모양으로 된다.

 

 

 

 

이 낫모양의 적혈구는 비장을 통과할 때 우리의 면역계에 의하여 비정상적인 세포로 판정되어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이 낫세포의 적혈구안에 숨어있던 말라리아 병원충도 같이 죽게 된다.반면 정상 헤모글로빈 속에 숨어있는 말라리아 병원충은 면역계의 눈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헤모글로빈-S가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을 제공해준다고 해도 부와 모로부터 받은 두 대립형질이 모두 헤모글로빈-S로 되어 있으면 말라리아에 걸리기 이전에 악성빈혈로 죽고 말 것이다.그러나 두 대립형질 가운데 하나가 정상적 헤모글로빈이고 다른 하나가 헤모글로빈-S면 심각한 빈혈증세가 항상 따라 다니기는 하겠지만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도 보존하게 됨으로 특히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정상 헤모글로빈을 가진 사람보다 생존율이 높다.그 결과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서는 이 헤모글로빈-S의 분포빈도가 높은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반면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어떤 이익도 없으면서 심각한 빈혈증세만 일으킴으로 자연 그 빈도가 감소하게 된 것이다.사실 말라리아가 만연하고 있지 않은 지역임에도 이 유전자가 관찰된 집단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으로 신세계로 강제 이주해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집단 뿐이다.

 

 

 

선천적 유전적 질병을 치유하려 할 때 우리는 '나쁜'유전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무의식적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가 논의한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나쁜'유전자는 다른 맥락에서 '좋은'유전자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사실 절대로 해로운 유전자가 있다면 자연선택의 체에 의해서 이미 걸려졌을 가능성이 많다.무언가 선천적 유전적 질병을 야기하는 유전자도 알려지지 않은 어떤 긍정적 기능이 있을지 모르며 그 때문에 우리의 몸속에 잔존하고 있는지 모른다.만일 이런 유전자들을 인류의 유전자의 풀속에서 모두 제거해 버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선천적 유전적 질병을 안고 나오는 태아에게 인류의 유전자의 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고통을 참으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며 지켜질수도 없는 일이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가 이제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이상 이러한 유전자 시술은 태생단계에서 일반화될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널리 퍼지면 퍼질수록 인류의 유전자풀은 축소되고 결국 이것이 인류의 환경에의 적응도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지울수 없다.

 

더군다나 인간은 이 지식을 단순히 유전적 질병의 치료에만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모든 인간은 마를린 몬로나 챨톤 헤스톤 같은 외모에 아인시타인과 같은 머리를 가지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못났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은 출생의 단계에서 모두 제거하고 싶어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독일의 카를스 루에 대학의 철학교수 페터 슐로트치크는 슈피겔지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니체가 예언한 '초인'이 바야흐로 탄생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과연 그런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단언하건대 그런일이 일어나는 날, 인류는 하찮은 인풀레엔자 하나에도 종말을 맞을지 모르는 심각한 재앙에 직면하리라고 생각한다.운좋게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그것이 좋은 유전자가 되는 것은 평범하거나 좋지 않은 유전자의 풀에 의해 받쳐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전자풀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 자체로 '좋은' 유전자는 없다.  

 

 

다양성의 가치

 

 

유전자들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유전자와의 연관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그들은 상호간에 얽혀서 긴밀한 정보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그래서 필자는 '좋은'유전자의 인위적 선택이 생태계로서의 게놈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생태계에서의 멸종의 문제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쌍만 남은 채 멸종 직전에 있는 종이 있다고 하자.이 경우 인간이 인위적 번식을 통해서 이 종을 멸종에서 구할 수 있는가?우리는 보통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계속해서 자손을 퍼뜨릴 수 만 있다면 멸종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하나의 조상을 갖는 종은 그 개체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종의 유전자풀이 작아서 조그마한 외부요동-감염 등-에 의해서도 심각한 멸종위기를 맞을 수 있다.개체수도 중요하지만 또 하나 고려해야할 것은 그 종의 유전자풀의 크기,즉 종의 유전자의 다양성이다.그것은 그 종을 여간한 요동에서도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논의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열성 치사유전자의 이형접합체로 된 한쌍의 삽살개를 생각해 보자.이것은  암수가 각기 2개의 상동염색체 중의 하나에 치사유전자를,다른 하나에 정상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정상유전자는 치사유전자에 대해서 우성이기 때문에 이 암수는 치사유전자가 발현되지 않아 정상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그러나 다음 세대에 태어날 새끼의 상동염색체 둘다에 치사유전자가 들어가 있을 확률은 1/4이나 된다.아래 그림은 겸상적혈구 빈혈증의 경우 치사유전자의 확률을 보여주고 있다.

 

 

 

 

이 치사유전자의 발현의 확률이 너무 높음으로 이 두 암수가 아무리 새끼를 많이 낳는다 하더라도 치사유전자의 농도를 희석시킬 수가 없다.그것은 쉽게 멸종해 버리고 말 것이다.멸종을 막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것이다.어느 정도의 개체수가 유지되고 있을 때 종의 보존에 개입해야만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유전적으로 건강한 개체군의 크기는 대략 50에서 500개체이다.이것이 50이하로 떨어지고 결함유전자가 존재한다면 근친교배의 억압이 개체군의 성장을 늦출 정도로 보편화된다.그 크기가 500이하일 경우에도 문제가 있는데 유전자 부동(유전자 비율의 변동가능성)이 일부 유전자를 제거하게 되어 전체적인 개체군의 변이성을 감소시킬 확률이 높다.반면 돌연변이율은 이 감소분을 다시 채워줄 만큼 크지 않다.따라서 종은 점차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50개체군은 짧은 시간의 존속을 보장해줄 정도의 크기에 지나지 않으며 장기적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500개체군 이상되어야 한다.4)

 

종의 개체군이 크지면 두 개체가 동일한 결함 유전자를 지닐 확률은 극히 적어진다.즉 설령 둘다가 염색체상의 어딘인가에 결함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 둘이 상동염색체상에 일치할 확률은 극히 적다.인간의 경우 낭포성 섬유증과 같은 유전적 질환의 발현을 막고 있는 것은 인간 유전자 풀의 크기이다.그러나 근친결혼은 이 유전자풀의 크기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 유전적 질환들이 발현될 확률은 급격히 높아진다.근친교배가 수명과 생식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이다.그래서 동물원에 갇힌 치타나 가젤의 경우 불임율이 높고 생존력이 떨어진다.우리에 갇힌 야생동물들에게서 무언가 혼이 빠져나간 느낌을 우리는 종종 받는데 이 느낌은 그렇게 틀린 것이 아니다.  

 

유전자 풀의 크기가 적다 하더라도 치사유전자를 미리 조사해서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제거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그러나 앞서 겸상적혈구 빈혈증에서 보았듯이 치사유전자에도 어떤 긍정적 기능이 있을지 모른다.그것을 보존하면서 그것의 치명적 효과를 억제하는 방법이 두쌍이 하나가 되는 상동염색체를 구성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 우성유전자만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유전형과 표현형의 구분은 이 필요의 구조적 반영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이 경우 유전자풀을 크게 하지 않으면 치사유전자의 억제의 효과가 없다.한마디로 말해서 다양성이야말로 미래의 위험에 대한 담보이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보장이다.

 

 

'나쁜'유전자는 없다.

 

 

'좋은'유전자는 '나쁜'유전자에 의해서 받쳐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유전자이다.그 관계를 떠나서는 좋은 유전자도 나쁜 유전자도 없다.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나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잘난 사람만큼 못난 사람의 존재이유도 있다는 이야기이다.영성은 자연에 대한 이기적 탐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생명의 소리-불교에서의 연기성의 원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 놓을 때 오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유전공학적 기술을 이용해서 '나쁜'유전자를 아예 인간의 유전자풀에서 제거해 버리고자 하고 있다.그래서 마를린 몬로의 몸매에 아인시타인의 머리를 구비한 초인들로  가득찬 세계를 꿈꾸고 있다.그러나 나쁜 유전자를 제거하는 순간 좋은 유전자도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기술 유토피아의 발상은 유혹적이기도 하면서 그렇기에 그만큰 더욱 위험한 생각이다.과학기술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방치해 두기에는 과학기술의 자연에의 조작능력이 지나치게 커져 버렸다.그만큼 신중해야겠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지혜는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고 베이컨 시대의 유토피아적 발상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어린이에게 권총을 맡겨 놓은 격이라고 말해도 나는 전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대신화에서 신이 인간의 손에 지식을 지어주기를 거부한 그 이유를 오늘날 곰곰이 되세겨 보아야 한다.그리고 혼돈을 위해서 뚫은 구멍이 왜 혼돈을 죽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도 되세겨 보아야 한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

 

1) 『莊子』,김달진 역해(문학동네),107면

2) G.윌리암스,『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최재천 옮김(사이언스북스),42-43면

3) 조셉 레빈,『유전자:생명의 원천』,한국유전학회 옮김,(전파과학사),2장 참조.

4) 에드워드 윌슨,『생명의 다양성』,황현숙 옮김(까치),257-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