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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디자인과 자연의 미학

만국기의 보편적 상징에 대하여/(2000.4.2)

만국기의 보편적 상징에 대하여

 

 필자는 평소 각 나라의 국기의 문양에 관심을 가져왔다.사실 국기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그 나라 그 민족의 가장 보편적 심성에 호소하는 상징성을 갖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각 나라의 국기의 문양이 민족에 따라 아주 상이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대략적으로 보아도 그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이것은 각 민족 특유의 역사,환경을 넘어서서 인류의 보편적 심성에 닿아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필자는 그  상징의 근저에 있는 뿌리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별의 마력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별문양이다.60개국 이상에 별문양이 등장하고 있다. 별은 최고(supreme)를 상징하기 때문이다.이 상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이다.군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장군이 스타이고 인기있는 연예인도 스타이다.미 국방부 건물도 오각형인 펜타곤인데 이러한 설계는 아주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별문양은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괴테의 『파우스트』파우스트가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5각형의 별을 그린다.그러나 잘못 그려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접근을 허용하고 만다.

또 이것은 상업적 로고에 가장 많이 애용되고 있는 문양이기도 하다.텍사코 정유회사의 다음 로고를 보라.별은 묘한 마력을 갖고 있어 유니폼에 이것을 달고 있으면 무의식중에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것 같다.서부의 총잡이 앞에 황금빛 별을 달고 떡 버티고 있는 보안관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아니 멀리갈 것도 없겠다.삼성이 그렇고  LG의 전신인 금성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별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별도 다섯 개의 별을 최고로 친다.말하자면 5개의 별은 별중의 별이다.군에서 5성 장군이 최고의 위치이고 호텔은 별(우리나라의 경우 무궁화) 다섯 개 짜리가 최고급 호텔이다.영화나 책에 붙은 별 5개는 최고 수준의 작품임을 의미한다.국기로는 중국,홍콩,싱가포르 그리고 온두라스의 국기가 별 다섯 개로 되어 있다.온두라스는 모르겠지만 분명 중국계 국가들의 국기에는 자신의 국가가 최고중의 최고인 중화의 국가라는 그들 특유의 자존심이 그 도안의 밑바탕에 강하게 깔려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국기에 별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영국이나 프랑스,독일의 국기는 그냥 및및한 선으로 되어 있다.또한 아름답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태극기에는 별이 없다.(북한의 국기는 중앙에 큰별이 있다.이것은 김일성을 상징한다.일성은 한별 즉 큰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역동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지나치게 추상화되므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 둘을 병용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보다 깊은 논의를 위해서 국기의 형상을 내 나름대로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보았다.

유형1

유형2

유형3

 유형1은 별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삽입한 것이고 유형2는 별의 형상 보다는 별이 갖고 있는 그 동적인 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추상화됨으로써 구체성을 상당히 상실해서 자칫 상투화된 도형으로 변질되기 쉽다.유형3은 이 둘을 융합한 형태이다.물론 모든 디자인의 딜레마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통일성을 상실하고 잡다한 형태로 변하기 쉽다.그런 것들이 제법있는데 수준이하의 디자인들(물론 나의 무지의 소치일 수 있다)이어서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유형3의 디자인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철학적으로 말해서 구체적 총체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여러분 같으면 어떤 디자인을 최고로 치겠는가?

 나는 태극문양을 최고로 친다.구체성과 총체성,정적 구조와 동적 변화가 절묘하게 어울어져 있는 최고의 도안이다.혹자는 자기것을 최고로 치는 소아병적 증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조롱할지 모르겠다.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금 보일려고 한다.

 

 

5각형과 황금분할

혹자는 별을 밤하늘의 별의 형상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육안으로 보이는 별은 밝은 중심에서 방사상으로 뻗어나오는 선들의 집합으로 보인다.그것을 도형화한다면 육각형이나 팔각형으로 그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5각형으로서의 별은 인류 공통이다.(유대인의 "다윗의 별"만이 예외이다.그것은 두 삼각형을 거꾸로 교차시킨 육각형이다.)

나는 그것의 거꾸로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것을 별에 투사시킨 것이다.다시말해서 별이 그렇게 보였다기 보다 우리가 별을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는 직관이 별을 그렇게 보도록 만든 것이다.우리는 결국 별들의 먼지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왜 별의 형상을 최고의 것으로 보는가?그것은 바로 우리를 키우고 양육해온 어머니 대지(러브록이 그리이스 신화에서 새로이 도입한 가이아)의 형상이기 때문이다.그것은 생명을 키우는 기본설계이다. 그리이스인들은 일찍이 이것을 황금분할( golden section)이라고 불러왔으며 신의 비례(devine proportion)라고 불러 경이를 표해왔다.아래 오각형 도형을 보자.

 

추상적 논의를 피하기 위해서 각 변에 임의의 값을 부여했다.5각형의 한변의 길이를 89라고 할 때 5각형안에 그은 대각선의 길이는 144가 된다.144를 89로 나누면 1.6179..가 된다.다시 대각선들이 교차하면서 분할하는 선분의 길이는 각 89와 55이다.89를 55로 나누면 1.6181..이 된다.이 비율은 근사하게 일치한다.사실 이 차이는 수치를 부여하다 보니 생겨난 것이며 수학적으로 두 비율의 값은 같다.(정확한 값은 1.618033..의 무리수이다.) 이것을 황금분할이라고 부른다.

이 오각형내에 모두 대각선을 그으면 별의 형상이 얻어질 것이다.이 별은 분할된 어떤 부분도 황금분할을 이루는 특이한 도형이다.그리고 그 별안에 새로운 오각형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모체가 되는 오각형의 180도 회전으로 만들어지는 형상이다.부분속에 전체가 재현되는 형상을 혼돈이론에서는 프랙탈이라고 부르는데 이 오각형은 전형적인 프랙탈적 형상을 보여준다.그리고 이 프랙탈적 형상이 생명의 형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논의는 이제 새로운 것이 아니다.(상세한 것은 이 사이트의 프랙탈항 참조) 위 그림 우측과 아래 그림들은 5각형과 별이 가지는 프랙탈적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각형과 별은 황금분할 또는 황금비를 반영하고 있는 도형이다.이 도형의 매력은 그 도형자체에 있다기 보다 그것이 황금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것의 구체적 형태 보다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황금비이다.이러한 관점에 설 때 우리는 이 구체적 도형을 넘어서서 그 도형이 기초하고 있는 수학적 본성의 더 심오한 차원의 이해로 나아갈 수 있으며 별의 형상을 보다 넓은 지평에서 이해할 수 있다.(황금비와 피보나치수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교재 참조)

황금비를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인 것이 "등각나선"이다.얼핏보면 등각나선과 별의 형상간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그 둘은 황금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학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다음 그림은 등각나선이 어떻게 황금비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위 그림의 우측의 두 그림은 황금비(피보나치수열)를 통해서 어떻게 등각나선이 형성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정사각형의 한변이 1인 정사각형에서 시작해서 둘이 모여 변이 2인 정사각형이 되고 다시 변이 3,5,8,13,21,34인 정사각형으로 확장되어 간다.여기서 어떤 인접해 있는 임의의 두 사각형의 비가 황금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사각형에 사분원을 차례로 그려나가면 중앙의 그림과 같은 나선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을 등각나선 또는 로가리듬나선이라고 한다.오각형의 대각선을 자르는 두 선분이 황금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오각형을 계속 잘라나가면 동일한 황금비가 얻어진다.그래서 그 내부에 쉽게 등각나선을 만들수 있다.이것을 위의 가장 우측의 그림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등각나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 형태가 앵무조개이다.

별이 황금비의 정적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나선은 그것의 동적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이제 우리는 국기에서의 유형1과 유형2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유형2는 성장의 동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이 등각나선은 생명의 문양이다.아래 그림은 생명에 나타나는 나선의 몇가지 사례를 보이고 있다.(상세한 설명은 교재 참조)

 

등각나선과 태극문양

다음 그림은 등각나선과 태극문양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앵무조개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등각나선의 외곽윤곽은 바로 음양이 만나는 태극의 윤곽이라는 것을 위 그림이 잘 보여준다.더군다나 거울상의 등각나선을 서로 교차시키면 불교의 "만"자 문양이나 나치스의 문양이 얻어진다.이제 이 만자 문양을 다시 도안의 단순화를 위해서 직선화하면 기독교의 십자가 문양이 얻어진다.이것은 이 모두가 그 근원에서 같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십자가가 로마의 형틀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통설이다.그러나 사실 로마의 형틀은 십자형이라기 보다  T 자 형이었다.십자는 더 깊은 연원에서 나온 것이다.그리고 또 불교의 만자 형도 이것이 불교 특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심성에서 근원한 상징이라는 것은 다음 그림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이 둘 모두 불교와는 접촉이 없었던 그리이스 문화의 전통에서 나온 그림들이다.왼쪽 그림은 사냥의 신인 아르테미스여신의 상이다.

 

 태극문양도 중앙아메리카의 아즈텍문명의 흔적에서도 발견된다.아래 태극문양은 태양신에게 제물을 받치기 위한 제단으로서 중앙의 홈이 파여진 곳에 자른 머리를 놓고 그 좌우의 홈을 따라 피를 흘러내리게 했다고 추정되는데 분명한 것은 아니다.

아마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은 유형2가 태극문양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한국의 태극기와 독일의 국기를 비교해 보자.

독일국기는 3층(이런 국기패턴의 경우 대부분 그렇다)으로 되어 있는데 태극은 적,청의 두 층으로 되어 있다.사실은 음양의 두 층이며 그 중간부위는 음양이 충돌하고 있는 장소이다.태극은 음양이 상호길항,충돌하는 그 경계역이며 이것은 항시 변화하는 역동적 과정에 있다.그런 의미에서 독일기의 중앙은 검은색층과 노란색층이 상호충돌하고 있는 그 경계역이며 말하자면 그 빨간색의 층이 태극에 해당한다.태극기의 문양은 그 역동적 과정까지 구상화하고 있으므로 태극을 구태여 보일 필요가 없다.그렇지만 그 긴장과 대립이 훨씬더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구성이다.표현하지 않음으로써 더 표현적일 수 있는 법이다.태극의 디자인은 그것을 성취하고 있다.만일 태극의 선을 단순화하기 위해 직선으로 곧게 편다면 그 중간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독일국기와 같은 3층패턴이 될 것이다.

유형3은 유형1과 유형2의 합성이다.유형1의 정적구조로서 별의 문양과 유형2의 동적과정으로서 3층의 길항대립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그러나 이 둘이 창조적으로 종합되지 못하고 평면적 수준에서 병치되어 있다.둘다를 단지 함께 그려 놓았을 뿐이다.이 둘을 창조적으로 종합시키면서 하나의 문양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태극이다.음양의 대립으로 그 역동적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별이 가지는 그 생명적 구조를 꿈틀거리는 나선속에 표현해 내고 있다.별은 나선의 형태로 재창조되고 있다.내가 태극을 최고의 디자인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기의 문양은 아니지만 숙고가 필요한 문양이 기독교의 십자가와 이슬람교의 초승달,그리고 불교의 만자문양이다.앞서의 분류유형을 적용시키자면 이들 모두 유형2에 속한다.모두 그 역동적 과정을 강조하고 있다.십자가문양에 보다 운동의 효과를 부여하면 만자 문양이 된다.초승달문양은 그 자체 나선의 단순화이다.

이 전체를 종합해서 내 나름대로 그려본 것이 아래 그림이다. 이 모든 상징들의 보편적 특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이 그림의 의도이다.(조용현,2000,4,2)

 

참고문헌

1.진 쿠퍼,『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 사전』,이윤기 옮김(까치,1996)
2.M.S.Schneider,Constructing the Universe,HarperPerennial,1995
3.T.A.Cook,The Curves of Life,Dover Pub.,1914,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