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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철학

면역이 없는 곳에 암도 없다.(2000.5)

면역이 없는 곳에 암도 없다.

 

 

하나의 역설

 

면역을 담당하는 것은 항체이며 이것은 림프구의 유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그러므로 림프구가 없는 동물에게는 면역이 없다.척추동물중 가장 하등한 것,즉 먹장어 이하의 것과 무척추동물 전체에는 림프구가 없으므로 면역이라는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좀 거칠게 말한다면 면역은 척추동물에게는 있으나 무척추동물에게는 없다.

 

그런데 척추동물에 속하는 종의 수는 약 4만종인데 대해 동물 전체는 100만종 이상이 있으므로 면역기구를 가진 동물의 수는 동물종 전체의 4%이하이다.

 

지구라는 천체가 형성된 것은 약 45억년 전이며 생물이 출현한 것은 그로부터 30억년이 지난 15억년 전이다.그리고 동물의 몸의 중심에 등뼈라는 몸의 지주(支柱)가 생겨난 것은 불과 지금으로부터 4억년전이다.그러므로 동물이 면역이라는 정교한 메카니즘을 가지게 된 것은 생물의 긴역사에서 본다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무척추동물에게는 암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100만 이상이나 되는 종 가운데 알려진 것은 절족동물에 다섯 종류,연체동물에 여섯 종류가 있을 뿐이다.이에 비해 인간을 포함한 고등척추동물의 경우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암이 있고 암은 죽음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1)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얼핏생각하면 역설적으로 보인다.정교한 면역시스템이 없는 무척추동물의 경우 암이 훨씬 더 쉽게 창궐할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면역시스템을 갖춘 척추동물에 많은 것은 왜일까?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면역시스템이란 무엇이며 암이란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면역시스템

 

 

1985년 닭에 메추라기의 깃털이 붙어있는 키메라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했다.수정되고 3,4일이 지난 닭의 수정란에 메추라기의 깃털이 만들어지는 완신경총(脘神經叢)을 이식한 것이다.그러나 생후 3주에서 2개월쯤 되면서 이상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깃털이 축 늘어지면서 먹지도,걷지도 못하다가 온몸이 마비되면서 죽고 말았다.2)

 

이것은 메추라기에서 유래한 신경세포를 닭의 면역계가 "非自己"인 異物로 여겨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데서 온 것으로 이것을 면역학적 거부반응이라고 한다.

 

면역이란 비자기를 거부하는 작용이다.바깥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이물질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렇다면 "자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그리고 면역계가 자기와 비자기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는 것이다.이 식별의 표적이 되는 것이 "주요조직적합항원"(主要組織適合抗原) 즉 MHC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이다.(인간의 경우 이것을 특히 HLA(human leukocyte antigen)라 부른다.)

 

HLA항원은 세포표면,즉 세포막에 있으며 유전적으로 결정된다.인간의 경우 이것은 제 6염색체에 한데 모여 존재한다.각각의 유전자가 서로 다른 6종류의 분자를 세포표면에 발현시키는데 그 6종류의 단백질이 개체마다 약간씩 다르다.부와 모로부터 각 6종류의 HLA유전자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래서 최대 12종류의 HLA 분자를 세포표면에 갖고 있게 된다.각각의 분자가 개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뿐 아니라 그 조합에 의해서도 개체사이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자신과 똑같은 HLA조합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기 어렵다.(상세한 내용은 아래 주 참조)3)결국 면역학적으로 "자기"와 "비자기"를 규정하는 것은 HLA항원이라고 부르는 이 6종류의 분자와 그 조합이다,이것은 약간 거칠게 말한다면 자기를 나타내는 ID와 같은 것이다.이제 ID를 확인하는 주체를 찾을 차례이다.

 

앞서 메추라기의 신경세포를 닭에 이식할 때 거부반응이 발생한 것은 HLA항원이 상이했기 때문이다.그런데 묘한 것은 메추라기의 흉선으로 발달할 모세포를 같이 이식해주면 거부반응을 모면할 수 있다.그 이유는 메추라기의 흉선안에서 만들어지는 면역세포는 메추라기의 날개도 "자기"의 일부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흉선이야말로 "자기"와 "비자기"의 식별능력을 부여하는 면역의 중추장기이다.

 

흉선은 가슴 안에 있는 말랑말랑한 장기이다.사람의 경우에는 10대 전반에 그 크기가 최대로 되는데 그 때의 무게가 약 35g이다.그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차 크기도 감소한다.이 흉선(thymus)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필수적 장기이다.

 

흉선이라는 장기는 胎生期 초에 먼저 상피세포로부터 만들어진다.상피세포들이 모여 그물모양으로 된 곳에 골수에서 원시적인 조혈세포인 幹細胞(stem cell)가 옮겨와서 급속히 분열과 증식을 되풀이 한다.여기서 림프구라는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가 만들어진다.림프구는 혈류를 타고 림프절이나 지라,편도선 등으로 옮아가면서 몸의 방위를 담당하게 된다.

 

이 흉선에서 공급되는 세포가 T세포(T는thymus에서 따온말) 라는 림프구이다.바로 이 T세포가 자기와 비자기를 식별하여 비자기를 배제하는 면역반응의 주역이다.이 T세포도 기능에 따라 helper-T세포,supressor-T세포.killer-T세포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자기와 비작기의 구분을 실행하는 helper-T세포에 대해서만 살펴보자.T세포는 어떻게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는 것일까?

 

T세포는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기 위한 분자를 세포의 표면에 달고 있다.이것을 T세포 항원리셉터(T cell  receptor,TcR)라 부른다.이것을 세포표면에 안테나처럼 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아래 그림은 이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식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T세포는 비자기를 발견해서 배제하는 역할을 한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자기의 범주가 너무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영양물질도 비자기가 아닌가?그런 경우 까지 면역반응을 일으킨다면 이러한 면역반응은 생체에 치명적일 것이다.(사실 앨러지와 같은 과민반응이 여기에 해당한다.)비자기의 외연과 적의 외연은 서로 다르다.이것이 면역계에서의 자기인식에서 가장 큰 문제이다.그렇다면 비자기라는 것 자체만으로 반응하지 말고 그것에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반응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마크로파지의 역할이 중요하다.세균이라도 마크로파지에 의해서 포식되지 않은 세균과 같은 이물질에 대해서는 T세포는 무관심하다.마찬가지로 영양물질에 대해서도 무관심할 것이다.그러한 것들과는 작용하지 않는다. 세균이 마크로파지에 의해서 포식되면 마크로파지는 세균의 특정단백질 조각을 자신의 표면에 제시한다.이것을 항원의 제시라고 한다.이 때 비로소 세균은 T세포의 관심의 표적이 된다.

 

그러므로 T세포가 비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은 다음 2가지 단계를 포함하고 있다.위의 그림은 이것을 도식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그림에서 보면 2개의 결합부위가 있다.하나는 자기를 나타내는 결합부위이고 다른 하나는 비자기를 나타내는 결합부위이다.이 두 부위가 함께 맞아야 하므로 결국 자기이면서 비자기인 것이 T세포의 관심사이다.절대적 비자기나 절대적 자기는 T세포의 관심사가 아니다.전자는 영양물질이거나 무해한 것일 가능성이 많고 후자는 결코 공격해서는 안될 자기자신이기 때문이다.이것이 잘못되면 전자의 경우 앨러지를 일으킬 것이고 후자의 경우 자가면역이라는 자살행위를 일으킬 것이다.말하자면 비자기화한 자기 또는 자기화한 비자기가 T세포의 면역반응의 대상이다.

 

이것은 중요한 인식론적 함축을 갖고 있다.절대적 비자기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우리의 인식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은 자기와의 연관성속에서 나타나는 대상이다.헤겔의 변증법적 도식은 이것을 말하고 있다.헤겔에 의하면  卽者가 자신을 비자기화한 對者를 산출하고 이 산출된 대자를 또 한번 부정함으로써 卽者 對者 단계로 이행해가는데 이것이 자기인식이다.타다 토미오의 면역학적 언급은 마치 헤겔을 연상시킨다.

 

 

"1960년대 까지의 면역학이 면역계를 비자기를 인식해 배제하는 시스템으로 규정했던 데 대해 오늘날의 면역학은 원래의 자기를 인식하는 기구가 자기의 비자기화를 감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비자기는 언제나 자기의 맥락에서 인식된다."4)

 

 

이 면역시스템의 정교성이 역설적으로 암과 연관되어 있다.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논리로서 메이나드 스미스의 ESS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ESS와 조직화의 비용

 

메이나드 스미스(Maynard Smith)의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는 진화적 안정전략으로서 개체군의 대부분이 이것을 채용하면 다른 대체 전략에 의해서 변화시킬 수 없는 전략으로 정의된다.메이나드 스미스는 매파와 비둘기파의 전략을 든다.매파는 공격적 전략이고 비둘기파는 수비적 전략이다.어떤 전략을 가진 구성원들로 되어있을 때 그 전체집단의 적응도 즉 이익이 최대로 되는 것일까?말할 것도 없이 수비적 전략으로 된 비둘기파들로 되어있을 때이다.인간사회로 말하자면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비생산적 분야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은 ESS가 아니다.하나의 매파가 비둘기파 구성원들내에 생겨나면 매파는 전체 이익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집단은 급속히 매파 구성원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그러나 매파 구성원들로 된 집단도 ESS가 아니다.이제 매파가 상대해야될 대상은 매파가 될 공산이 높다.이 경우 상호간의 공격으로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적응도는 비둘기파 이하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이 때 비둘기파는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된다.그러나 비둘기파가 증대하면 매파는 다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이 두 전략사이를 진동하다가 이 둘사이의 일정한 비율에 도달했을 때 그 집단은 안정을 얻을 수 있다.이것이 ESS이다.여기에 대한 리차드 도킨스은 이 개념의 핵심을 아주 쉬운 언어로 잘 설명하고 있다.이하의 논의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가져온 것이다.5)

 

【이 개념을 공격에 맞추기 위해서 메이나드 스미스의 제일 단순한 가정적인 예의 하나를 고찰해 보자.어떤 종의 개체군에는 매파형과 비둘기파형이라고 하는 두 종류의 전략밖에 없는 것으로 하자.우리의 가정적 개체군의 개체는 모두 비둘기파든 매파이든 어느 한편에 속하는 것으로 한다.매파의 개체는 가급적 항상 맹렬히 힘차게 싸우고 심하게 다쳤을 때가 아니면 굴복하지 않는다.비둘기파 개체는 그저 규정대로 행하며 위협을  줄 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매파의 개체와 비둘기파의 개체가 싸우면 비둘기파는 그냥 도망치므로 다치는 일이 없다.매파의 개체끼리 싸우면 그들은 한편이 중상을 입거나 죽을 때 까지 싸운다.비둘기파 끼리 부딪힐 때는 어느 편이든 다치는 경우는 없다.그들은 서로 자세를 추하기만 하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틸 필요가 없다고 결심하면 중지하게 된다.

 

또 특정의 경쟁자가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 미리 알 수 없는 것으로 가정해 놓자.그는 경쟁자와 싸워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 뿐 그를 유도하는 특정개체와의 과거의 싸움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한다.그래서 싸우는 양자에게 "득점"을 주기로 한다.예컨대 승자에게는 50점,패자에게는 0점,중상자에게는 -100점,장기전에 의한 시간낭비에는 -10점이라고 하는 식이다.이들 "득점"은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통화에 직접 환산되는 것으로 보아도 좋다.높은 득점을 얻은 개체,즉 높은 평균득점을 받고 있는 개체는 유전자풀속에 다수의 유전자를 남기는 개체이다.

 

중요한 것은 매파가 비둘기파와 싸울 때 상대를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그 답은 이미 알고 있다.언제나 매파가 이기는 것은 뻔하다.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매파형과 비둘기파형 중 어느것이 진화적으로 안정전략(ESS)인가 하는 것이다.만약 한쪽이 ESS이고 다른 쪽이 그렇지 않다면 ESS인 쪽이 진화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두개의 ESS가 있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다.

 

전원 비둘기파로 된 개체군이 있다고 하자.그들은 싸워도 다치지 않는다.다툼은 아마 긴 의식적인 시합,더러는 노려보기만 하는 싸움이어서 어느쪽이든 기가 죽으면 결판이 난다.이 때 승자는 싸워서 자원을 차지했기 때문에 50점을 따나 노려보기에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10점의 벌금을 내야 하므로 결국 40점이 된다.패자 역시 시간을 낭비했으므로 10점이 깍인다.평균하면 비둘기파의 개체는 모두 다툼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지는 것으로 생각된다.따라서 싸움의 득점은 +40과 -10을 평균하여 +15점이 된다.이와 같은 이치로 비둘기파의 개체군중의 비둘기파 개체는 모두 매우 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이 개체군에 매파형의 돌연변이 개체가 나타났다고 하자.그는 여기서 유일한 매파이므로 싸움 상대는 모두 비둘기파이다.매파는 비둘기파를 확실히 이기므로 그는 모든 싸움에서 +50점을 기록하게 되며 이것은 그의 평균득점이다.그는 순득점이 15점 밖에 없는 비둘기파에 대해서 막대한 이득을 누리게 된다.그 결과 매파의 유전자는 그 개체군내에 급속히 퍼질 것이다.그러나 그렇게 되면 매파의 각 개체는 이미 부딪힌 경쟁자가 모두 비둘기파라라고 기대할 수 없게 된다.극단적인 예를 들면 매파의 유전자가 순조롭게 퍼져 개체군 전체가 매파로 되었을 때 이번에는 모든 싸움이 매파끼리의 싸움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이제는 사정은 매우 다르다.매파끼리 부딪히면 한쪽이 다치기 때문에 -100점이 되는 반면 승자는 50점을 딴다.매파 개체군의 각 개체는 싸움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진다고 생각된다.따라서 싸움의 평균득점은 +50과 -100의 평균,즉 -25가 된다.여기서 매파의 개체군내에 비둘기파 한 개체가 있다고 하자.확실히 그는 모든 싸움에서 패하는데 그러나 한편 결코 부상당하는 일이 없다.매파 개체군내의 평균득점이 -25점인데 비해서 그의 평균득점은 매파개체군내에서 0이다.따라서 비둘기파의 유전자는 개체군내에 퍼지는 경향이 있다.

 

이 이야기의 말투로 보면 마치 개체군내에 부단히 진동이 있는 양 생각될지 모른다.매파의 유전자는 압승하여 우세를 점한다.그러면 대다수가 매파로 되는 결과로 인해 비둘기파의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수를 늘여간다.하지만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금 매파의 유전자가 성하기 시작한다.이러한 식으로 진행될 것 같으나 이와같은 진동이 일어날 필요가 없다.어디에나 매파와 비둘기파의 안정된 비율이 존재한다.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임의의 득점시스템으로 계산해 보면 안정된 비율은 비둘기파가 5/12,매파가 7/12인 것을 알게 된다.이 안정된 비율에 달하면 매파의 평균득점과 비둘기파의 평균득점은 똑같아 진다.이 때문에 선택이 이쪽 보다 다른쪽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만약 개체군내의 매파의 수가 점점 늘기 시작하여 그 비가 7/12이상으로 되면 비둘기파가 나머지 이익을 받기 시작하여 그 비율이 원래대로 되고 안정상태가 된다.안정된 성비는 50대 50인 것 같이 이 가정적 예로는 매파 대 비둘기파의 비는 7대 5이다.어떤 경우에도 안정점 부근에서 진동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히 큰 것으로 될 수 없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그룹선택설에 약간 유사한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그룹선택설에 닮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이 설명이 개체군에도 안정된 평형상태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흐트뜨리면서 또다시 그 점까지 되돌아 오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ESS는 그룹선택 보다는 훨씬 미묘한 개념이다.그것은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 보다 성공하느냐 어떠냐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이 사실은 우리의 가설적 예의 임의 득점시스템을 사용하면 잘 설명된다.매파 7/12,비둘기파 5/12로 안정된 개체군내의 한 개체의 평균득점은 6과 1/4인 것을 알 수 있다.이것은 그 개체가 매파이든 비둘기파이든 같다.그런데 이 6과 1/4이라는 것은 비둘기파 개체군내의 비둘기파 개체의 평균득점(15) 보다 훨씬 낮다.전원이 비둘기파로 될 것에 동의한다면 어느 개체도 모두 유리해질 것이다.단순한 그룹선택설에 의하면 전원이 비둘기파로 될 것에 동의한 집단은 어느 것이나 ESS비에 머물러 있는 경쟁자 집단 보다 성공할 것이다.따라서 그룹선택설은 전원 비둘기파의 합의로 향해 진화할 것으로 예언할 것이다.확실히 어떤 개체도 ESS집단에 있는 것 보다도 전원 비둘기파 집단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그러나 안됐지만 합의를 한 비둘기파 집단에 태어난 한 개체의 매파는 너무도 팔자가 좋아서 아무도 매파의 진화를 막을 수 없다.그러므로 합의된 집단은 불신행위로 인해 내부로부터 붕괴되어가는 운명에 매여있다.여기에 이르면 ESS는 안정하다.그것은 ESS가 그것에 가세하고 있는 개체입장에서 유리해서가 아니고 단지 내부로 부터의 불신행위를 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적 집단-그것이 다세포생명체의 몸이든 아니면 우리의 인간사회든간에-은 각 구성원들간의 상호협조를 전제로 한다.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개체의 이익을 상당한 수준에 까지 자제한다는 전제에서 성립한다.그러나 이것을 거꾸로 이야기 한다면 조직사회내에서는 은밀한 배반을 통해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된다.상호불신의 집단내에서는 배반을 통해 개체에게 돌아올 이익이 별로 없지만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는 사회의 경우는 다르다.이러한 사회에서 배반은 훨씬 더 달콤한 꿀물이다.

 

메이나드 스미스의 ESS의 개념은 그래서 협조와 배반이라는 좀더 조직화의 일반적 문제로 확장시켜 볼 수가 있다.악셀로드(R.Axelrod)의 '죄수의 딜레마'가 여기에 대한 좋은 해명을 제시해 준다.(여기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공생,합생,창발성"참조)

 

 

조직화의 명암

 

척추동물을 무척추동물과 명확히 분리하는 특징은 척추동물을 구성하는 세포집단의 특유의 복잡성과 고도의 조직성이다. 생물분류상 척삭동물문에 속하는 척추동물은 다른 생물체와는 다른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척추동물의 주요신경은 전신으로 뻗어있는 원통형의 척색속에 다발로 묶여 척추에 내장되어 있다. 그 일단은 머리의 두개부로 들어가 확대되어 뇌가 된다. 뇌는 시각,청각,취각,미각 등의 주요감각기관으로 나뉘어 두개골에 덮혀 보호되고 있다. 순환계 는 완전히 폐쇄되어 있고 심장이라는 특수한 근육의 압력에 의해 관리된다. 대사기관은 각각의 기관에 내장,관리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개량된 점은,신장에서 이루어지는 효율좋은 혈액정화와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다.

 

전체적으로 이것은 그 자체 완결된 시스템이고,뚜렷한 윤곽을 가지고 공간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이것은 혈액이 체내의 빈곳을 제멋대로 흐르면서 식량을 운반하거나 조직의 윤활유 역할을 수행하는 무척추동물의 시스템과는 다르다. 신경섬유와 감각관이 무질서하게 산재해있어 눈과 발이 서로 마주보는 대합과 같은 현상은 척추동물에서는 찾아볼 수없다.

 

이 고도의 조직화는 무척추동물의 느슨한 조직에 대해서 비길수없는 효율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효율성에는 지불해야할 대가가 있다.

 

우리와 같은 다세포 생물체도 수정난이라는 하나의 단세포에서 시작한다.수십회의 세포분열을 거쳐 비로소 우리는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들로 된 몸이 만들어진다.이때 까지의 분열은 암세포의 전형적 분열방식을 따른다.그러므로 암세포의 분열방식 자체가 이상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그것은 각 세포가 가진 본성에 속한다.그러나 다세포라는 조직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본성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그래서 전체의 구성계획에 따라 일정 수준에 이르면 분열을 멈추어야 한다.그것에 대한 "합의"가 있음으로써 정상적인 몸이 만들어질 수 있고 또 기능할 수 있다.

 

이 합의의 준수의 정도는 조직화의 수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복잡한 조직일수록 그 준수의 정도는 높아야 한다.복잡한 기계일수록 부분의 사소한 오작동이 전체의 기능중단을 일으키게 되는 원리와 유사하다.그러므로 복잡화로의 진화는 이 준수의 수준을 높일수 있도록하는 제반 장치들과 함께 진화하지 않으면 안된다.상대적으로 중앙집중도가 높고 조직화의 수준이 높은 척추동물이 그렇지 않은 무척추동물에 비해 여기에 대한 안전장치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결과 척추동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고도로 조직적이며 체제순응적이다.사실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척추동물에서 보는 것과 같은 복잡한 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척추동물에게서는 무척추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암화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부패의 논리와 비유할 수 있다.어떤 법규를 준수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법규를 어겼을 때 이득이 커진다.처벌을 강화시킴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강화된 법규가 범법의 유혹을 더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을 막기위해서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하고 그만큼 범법의 기대이익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이 고리는 쉽게 끊기 어렵다.규제를 풀면 범법의 기대이익이 줄어들겠지만 그 규제가 사회질서를 위해 필요한 규제였다면 그럴수도 없다.(물론 필요없는 규제라면 그것은 마땅히 풀어야 할 것이다.그것은 인허가권자의 범법을 조장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그러므로 이것은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구조적으로 따라오는 딜레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의 딜레마이며 암세포를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척추동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무척추동물들에 비해 고도로 조직순응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배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훨씬 더 크다.말하자면 성공하기는 더 어렵지만 성공했을 경우 갖게될 판돈이 훨씬 더 큰 도박에 비유할 수 있다.앞서의 메이나드 스미스의 도식에 집어넣는다면 배반카드(매파)에 할당한 값을 무척추동물에 비해 척추동물에 더 큰 값을 부여해야 한다.(그러나 성공할 확률이 작기 때문에 ESS는 같은 비율에 도달할 것이다.)

 

무척추동물의 세포들의 경우 자신의 배반에 대해 상대가 일방적으로 협조로 나올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배반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국지적 교란에 그칠 것이고 암세포로 성장할 가능성이 적다.무척추동물의 경우 규제가 느슨하므로 세포의 반란은 오리려 더 자주 일어나겠지만 그 반란이 전국적 구테타로 연결될 소지는 작다.결과적으로 무척추동물에게는 암이 없는 것이다.

 

척추동물의 경우 세포의 반란은 상대적으로 드물겠지만 일단 발생한다면(그리고 까다로운 검사를 통과해서 우리 면역계를 속여 넘길 수 있다면) 암으로 확산될 소지가 커진다.이것은 우리의 면역계가 자초한 결과라고 보아도 좋다.

 

면역계는 칼과 같다.그것은 외부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자기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다.이 위험성은 면역계가 정교해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척추동물에서 나타나는 이 면역계는 진화의 최고의 산물이라고 할 만 하다.그것은 무차별적인 폭격이 아니라 타켓을 향해 정확히 조준되는 유도미사일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교성이 오히려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자기와 비자기의 구분은 그렇게 분명한 것은 아니다.자기를 비자기로 착각해서 면역계가 작동하게 되면 그것은 전체 시스템에 치명적 결과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그래서 정교한 시스템은 이상을 방지하고 그것을 사전에 체크할 수 있도록 2중,3중으로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안전장치로 해서 정작 공격해야할 타이밍에 공격하지 못하고 실기하는 수가 생길 수도 있다.

 

이 상황은 마치 핵미사일의 지휘통제에 관한 문제와 유사하다.미사일을 잘못 발사해서 초래되는 파국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핵미사일 발사체계는 발사사고를 예방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설계된다.미사일 발사대에 근무하는 요원은 비밀번호 없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다.암호가 있어도 수많은 절차들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밟아야 하며 그 절차 중에는 두곳의 열쇠구멍에 두사람이 동시에 열쇠를 넣고 돌려야 하는 단계도 있다.이렇듯 핵미사일 발사체계는 우발적 사건으로 해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일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6) 이 신중성은 시스템의 복잡화에 따른 불가피한 귀결이나 이 신중성 자체가 바로 약점이 될 수 있다.암은 바로 이 복잡성의 음영이라고 생각한다.

 

면역계는 본래 외부에서 침입해 오는 비자기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그런데 암은 비자기가 아니라 본래 몸에서 만들어진 자기이다.면역계는 자기에게 반응하지 말도록 훈련되었으므로 암세포는 일차적으로 면역계의 감시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물론 우리몸은 암세포를 포착해서 제거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정상세포와는 다른 표징-이상 단백질의 출현이나 지나친 성장률 등-을 통해서 그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그러나 그 감시망은 본래의 비자기에 대한 감시망에 비해서 느슨할 수 밖에 없다.왜냐하면 그것을 지나치게 강화시키면 자칫 자기에 대한 공격을 허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의 신분표시-모든 세포가 달고 있는 MHC,즉 주요조직적합 항원-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관용하도록 훈련받고 특별한 징후가 있는 경우에만 감시권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척추동물에 암세포가 생성될 수 있는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고 있다.우선 면역계의 정교화에 따른 맹점이 있고 다음으로 조직화에서 귀결되는 배반이익이 아주 크다.이익은 크면서 상대적으로 감시망은 느슨하다(외부의 비자기에 대한 감시망에 비해서 상대적으로)면 모든 조건은 다 갖춰진 셈이다.

 

 

암을 보는 눈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암은 진화에 따른 불가피한 귀결이다.암은 분명히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조직의 고도화에 따라오는 숙명이며 우리의 삶의 일부이다.생물체가 복잡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진화의 음영이다.그것은 근절되지 않으며 근절될 수도 없을 것이다.그것 역시 우리 존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그것은 다스림의 대상일 뿐 근절의 대상이 아니다.

 

생태운동가 장일순 선생에 관한  이현주씨의 회상 한 토막.

 

 

병이야기 하니까 생각납니다만 장일순 선생님이 암으로 진단받았습니다.제가 병원으로 찾아가 '투병'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그랬더니 아주 정색하시면서 "자네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다니,암세포는 내세포가 아닌가?잘 모시고 가야지."그러시더라구요.그리고 "지구가 지금 암을 앓고 있는데,지구 땅덩어리가 앓고 있는데 나는 '아프다'고 소리나 지르지.나 좀 아프니까 후배들이고 뭐 사람들이 와가지고 이렇게 여럿 와주는데 땅덩어리가 아프다고 누구 좀 울어주지도 않고 땅은 신음도 하고 있지 않지 않은가?"그러시면서 우시더라구요.그런 식으로 자기몸의 병을 모시고 사셨다가 암하고 같이 가셨지요.투병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생태적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단어가 아닌가?뭐하고 싸우자는 건가?생태적 삶이란 다 내 몸인데 모든 것이 내 몸인데 내 몸하고 내가 어떻게 싸운다는 것인가?나에게 이익을 준다고 판정되는 것들만 내 친구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나에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주는 것 같이 판단되어도 결국 내 몸이다는 의식을 가지고 산다면 투병이란 말이 점차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병과 함께 병을 잘 다루면서 병을 통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내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을 잘 간직할 수 있을까,오히려 이걸 생각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 아닌가,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7)

 

 

우리는 신이 아니다.그러나 근대 서구적 정신은 신은 아니지만 신에 다가갈려는 그 불굴의 정신을 높이 샀다.시지푸스의 언덕으로 돌을 굴리는 불굴의 프로메테우스는 서구적 정신의 영웅이었다.암의 정복에 의욕을 불태우고 불노장생의 꿈을 향해 연구실을 밝히고 있는 그들은 분명 이 프로메테우스의 후손들이다.설사 악마에게 혼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앎에의 희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파우스트적 정신이 근대과학을 추동시켜온 강력한 힘이 아니었던가?그러나 그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생명의 비밀을 파헤쳐간 현대과학의 모험의 여정은 우리를 감탄하게 한다.그러나 생명의 새로운 비밀이 밝혀질 때 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하는 불안감이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곳에서 "쏴~"하고 전해져옴을 느낀다.

 

나의 이러한 느낌을 莊子의 노래로 대신하고 싶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8)

 

 

(조용현,2000.5.27)

 

(주)

1) 나가노 야스이치,『인터페론이란 무엇인가?』,이영순 옮김(전파과학사),111면

 

2) 타다 토미오,『면역의 의미론』,황상익 옮김(한울),13-14면

 

3)조직적합항원은  A,B,O로 나누어지는 혈액형과 같이 단순하지 않다.HLA항원은 세포표면의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즉 유전자는 제6염색체상의 A,B,C,D(임의로 붙인 기호)라고 하는 4개소에 존재한다.D의 부위에는 다시 DP,DQ,DR라는 부위가 있다.

 

A,B,C,D의 항원은 생체 중의 거의 모든 세포에 존재하나 D 및 그 관련 항원은 B세포나 마크로파지 등 극히 일부의 세포에 밖에 존재하지않는다.전자를ClassⅠ항원,후자를 classⅡ항원이라고 부른다.

 

A에 있는 유전자의 유형은 20종,B는 50종.C는 10종,D10종,DP,DQ,DR이 각 6,3,16종이 있다.같은 염색체가 2개씩 있으므로 한사람의 인간은 각 종류별로 2개씩의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대략 계산해 보면 가능한 HLA의 종류는 20*50*10*10*6*3*16/2=14,400,000가지가 됨으로 동일한 HLA를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혈연간에는 비교적 그 확률이 높은데 유전방식이 A,B,C,D가 따로따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고 그 전체가 하나의 세트로 유전되는 소위 "하플로타잎"(haplotype)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형제중에 같은 HLA형을 가질 확률은 1/4이고,절반이 일치할 확률은 1/2로 상당히 높다.조직이식에 형제나 남매가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김우호,『면역』(강원대 출판부),108-110면)

 

4) 타다 토미오,앞의 책,39면

 

5)리차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홍영남 옮김,(을유문화사),114-118

 

6) 이 비유에 대해서는 G.윌리암스,『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최재천 옮김(사이언스북스),249면 참조.

 

7)이현주외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영성』,(내일을 여는 책,2000),137-138면

 

8) 『 莊子』,養生主편,오강남 역주(현암사),1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