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연락되지 않으면 촉수에 닿지 않지" |
인제대 '강의 가장 잘 한 교수' 철학자 조용현 |
세상과 삶의 기특한 '안쪽'은 역설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우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참선하듯 이 역설을 고요히 응시해야 한다. 역설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바쁘거든 돌아서 가라'….
조용현(56) 인제대 인문학부 교수가 인제대 '최우수 교육상' 수상자로 최근 선정됐다. 2009년 강의를 가장 잘한 교수로 뽑혔다. "강의실이 붐비냐"고 조 교수에게 물었다. "6과목을 맡고 있는데 각 과목 수강생이 50~30명 정도입니다." 의외였고, 적은 수를 거리낌없이 말하는 그의 태도가 참신했다. 아니, 세속이 '질(質)'보다 '양(量)'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은 '적은 수가 아름답다'는 역설이었다.
아름다워지려면 거울을 자주 봐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울'을 보지 않는다. "자동차를 몰고 나갔는데 길이 밀려요. 우리들은 대뜸 '자식들 차, 많이들 가지고 나왔네'라고 내뱉지요. '자식들' 속에 자신도 들어 있는데 자신을 빼놓고 빈정거리는 거죠. '거울'을 안 보기 때문입니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그 뜻이다. 눈을 뜨는 것이다.
요상하고 이상한 딜레마와 역설이 있다. "잘 가르쳐 학생들이 눈을 뜨면 취업 공부를 안 해요." '다르고 새로운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좋은 강의'인가. 우리는 난해하고 시건방진 이 물음 앞에서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는 '거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그는 아토피를 예로 들었다. 아토피 현상과 치료 방법에만 집중하면 그것은 과학이다. 그러나 아토피를 유발하는 삶의 태도까지 반추하면 그것은 인문학이다. "탐색을 마치고 끝내버리는 게 과학이고, 끝난 탐색에서 다시 자기로 되돌아오는 것이 인문학이에요." 소 같이 꾸역꾸역 느리게 되새김질하는 것! 그것은 느린 것 같으나 "대상이 거울이 돼 내 얼굴이 보이는 과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조 교수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니까, 거울을 보지 않으니까 인문학이 위기"라고 꼬집었다. 역사가 어떻고, 문학이 어쩌구, 철학이 어떠하다, 고들 하지만 삶과 연락되지 않으면 그것은 삶의 문제적 촉수에 닿지 않는다. 무늬만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빅뱅과 우주의 기원을 말해도 거울을 보면 인문학이고, 조선사와 인식론을 얘기해도 거울을 보지 않으면 과학으로 끝난다. "거울아 거울아 나는 누구냐?"라고 계속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부끄럽다"고 했다. 부끄러워서 인문학을 하는 것이고, 인문학을 하니까 부끄러운 것이다. "논문을 쓰는 '학자'가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조 교수는 피력했다. "공자가 그랬지요." 공부를 하면 인생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가 바뀔 것이다. 무서운 공부다. 그는 "'탐스러운 빨간 사과'의 예를 자주 든다"고 했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탐스럽고 달콤한 빨간 사과가 나올 수가 없어요. 그 사과는 인간의 욕망 그 자체이지요. '자연'이 아니라 '새빨간 욕망'이지요." 이를테면 백설공주를 꾀는 독 사과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주말, 밀양에 가서 스스로 조그마한 텃밭을 경작한다"고 했다. 몇 년 전에도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과목을 가르치냐"고 물었다. "'생명의 디자인과 자연의 미학' '몸의 철학' '생명의 철학' '인문콘텐츠와 철학' 등을 가르치지요." 또 "학계에 논문을 많이 발표하느냐"고 질문했다. "삶과 동떨어진 논문중심주의…. 가능하면 발표하지 않아요." 그는 '정신은 어떻게 출현하는가?'(96년) '작은 가이아'(2002년)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2006년)라는 저서를 냈다. 역설이 떠오른다. (인문학의 이름으로)'공부는 무섭고 아름답다.
'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