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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철학

생화학적 통일성은 창조의 증거인가?(2000.5)

 

생화학적 통일성은 창조의 증거인가?

 

 

범균론과 창조론

  

생명체의 몸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 아주 비슷하다.분자수준에서 볼 때 유전자는 아데닌.티민(우라실).구아닌,시토신 이라는 4개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고,그가운데 셋을 합성하여 아미노산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있다.이 아미노산의 중합체가 단백질인데 이것은 말하자면 문장에 해당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인간의 언어가 민족과 국가에 따라 각양각색인데 대해 생명체의 언어는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 까지 모두 그 언어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생명이 계획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면 이 생화학적 통일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스웨덴 출신의 유명한 화학자이며 1903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스반테 아레니우스(S.Arrhenius)는 생화학적 통일성의 근거로써 "汎菌論"(panspermia)을 제안했다.지구상의 생명은 저 먼 우주에서 운석을 타고 도래한 원시적 박테리아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지구상의 생물체들의 생화학적 통일성은 한 생물체에서 유래한데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박테리아와 같은 생명체가 우주공간이라는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최근 크릭(F.Crick,왓슨과 함께 DNA의 복제기제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은 색다른 제안을 했는데 이른바 "정향적 汎菌論"(directed panspermia)이다.고도의 문명수준에 있는 외계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종되었다는 것이다.1)

 이 둘다 그럴듯해 보인다.박테리아는 크기가 작아서 운석내부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으리라는 법도 없을 것 같고,더군다나 워낙 간단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장기간 동안 껍집을 뒤집어 쓴채 동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왓슨의 주장도 칼 사강(C.Sangan)이 말하는 행성개조론의 입장과 연관시켜 볼 때 그럴듯해 보인다.생명이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행성을 찾아낸 다음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을 그 행성에 파송해서 생명의 행성으로 바꾼 다음에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체들이 이주한다는 발상이다.아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지구에 도착했을 것이다.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 당혹스러운 질문에 대해서 그들에게는 준비된 답이 있다."그래,그들은 이미 도착했다.그들이 바로 우리다."

 이 주장은 앞서 제기했던 지구상의 생물체의 생화학적 통일성을 설명해 준다.그러나 이 주장은 더 깊은 질문인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그 사건의 장소를 지구에서 우주라는 무대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이것 보다는 차라리 창조주에 의해서 계획적으로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적어도 이 주장은 지구상의 생명체의 생화학적 통일성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함께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들이 사실인지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이러한 견해들은 필자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다.전자의 경우는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한발자국도 진전한 것이 없기 때문이고,후자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더 나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우리로서는 아무 할 일이 없다.그저 "손을 놓은채"(이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수 밖에 더 있겠는가?

 나는 지구 자체의 환경과 원인으로 생화학적 통일성 나아가서 생명의 기원을 해명해 주는 가설이 훨씬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3가지이다.

 첫째,우리가 생명의 기원을 알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생명체와 그리고 나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때 그 기원이 외부에 있다면 그 기원을 아는 것과 나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별도의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실제 생명이 지구밖의 산물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이 전제가 거짓이 라는 것이 입증된다 해도 이 가설은 그 방법적 특성으로 해서 그 추구과정에서 유용한 부산물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셋째,물질의 수준에서도 자기조직화가 그렇게 드문 현상이 아니라면(사실 아주 흔하다.) 물질에서 생명에로의 이행이 꼭 무슨 기적과 같은 확률을 기대해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그것은 우주의 도처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지구도 그 가능성을 가진 행성들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지구상에서 생명의 자연발생적 출현을 인정하면서 생화학적 통일성을 설명해야할 부담이 생명의 지구기원론자에게 있다.이것에 대한 정황증거(직접증거가 아니다.)를 혼돈이론을 경제학에 적용한 미국의 경제학자 브라이언 아서(B.Arthur)의 "록인"(lock-in;고착)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해 보기로 한다.

 

 록인(lock-in)과 수확체증의 원리2)

  

종래의 경제이론은 "수익체감의 원리"(diminishing return)를 가정하고 성립되었다.경제활동은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을 유발하여 가격과 시장점유율을 예측할 수 있는 평형상태로 이끌어 가게 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오일쇼크를 보자.1970년대의 높은 원유가격은 에너지 절약을 촉진시키고,원유의 탐사를 촉진시켰는데 결국 예측하는대로 이것이 1980년대 초반의 유가하락을 촉진시켰다.이러한 종래의 이론에 따르면 결과적인 평형상태는 그 특정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결과"-자원의 가장 효율적인 배분과 사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럴듯한 그림이 실제와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경제의 여러부분에서는 안정화하는 힘이 나타나지 않아 보인다.오히려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 나타나 조그마한 경제적 변화를 증폭하는 것이 관찰된다.이러한 것을 설명하는 경제학 모델은 종래의 것과는 아주 다르다.수익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경제에 일정한 단일 평형점이 있음을 상정하는 것이지만 ,양의 되먹임-수익체증-에서는 평형점이 여럿 있을 수 있다.

 또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결과중에서 선택될 어떤 특정한 경제적 결말이 "최선"이라할 어떤 보장도 주어지지 않는다.더구나 어떤 우연한 경제적 사건들이 하나의 특정한 방향으로의 길을 선택하여 움직이게 되면 그 후의 선택은 다른 선택가능한 방안들이 설사 더 우수한 것이라 하더라도 선행한 방안에 "고착"(lock-in)되어 버린다.어떤 상품이 우연한 이유로 해서 앞서게 되면 그것이 앞섰다는 것으로 해서 그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비디오시장의 흥망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VCR시장은 같은 가격을 파는 두 종류의 체제-VHS와 Beta-로 시작되었다.이 전쟁은 VHS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는데 이 승리은 기술적 우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비디오가게에 VHS방식으로 녹화된 비디오가 많다는 것이 소비자로 하여금 VHS방식의 VCR을 사도록 유도했다.그것은 다시 비디오가게에   VHC방식의 비디오테잎을 많이 비치하도록 했고 이것은 다시 소비자로 하여금 VHS방식의 VCR를 구입하도록 유도했다.이런식으로 시장점유율에서의 조그마한 우위가 특정시스템의 경쟁적 위상을 증진시키고 또 그 우위를 더 증가시키게 된 것이다.

 이제 세계의 비디오시장은 거의 VHS방식의 테잎과 VCR로 통일되었다.이 과정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이 결말만을 보고 있으면 마치 비디오기술에 있어서 어떤 통일적인 범세계적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초기에는 여러 형태의 변종들이 출현하지만 일단 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위를 점하게 되면 양의 되먹임이 작용하면서 하나의 형태로 통일되어가는 진화의 한 현상일 뿐이다.지구상의 생명체의 생화학적 통일성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아서 브라이언이 즐겨 예를 드는 한 흥미있는 예로써 시계의 록인현상이다.오늘 우리는 일상어에서 "시계 방향으로 20도,시계 반대방향으로 30도"등의 말을 흔히 쓴다.그러나 시계의 침이 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 안돼는 것일까?브라이언에 의하면 초창기에 시계가 나올 때 여러 가지 디자인들이 있었다고 한다.실제 1443년 파울로 우첼로가 설계한 것으로  지금 플로렌스 대성당에 걸려 있는 시계는 시계침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24시간 움직인다.그러나 "시계방향"으로 12시간의 눈금을 나타내는 디자인이 사람의 눈에 익숙해짐에 따라 다른 디자인들은 급격히 소멸하고 오늘날의 디자인으로 통일되었다.

  

플로렌스 대성당에 있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시계.눈금도 24개가 있다.

  

록인현상은 제품들간의 의존도(제상품들간의 네트워크)가 높을수록 더 신속하게 발생하고 견고해 진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자동차를 비교해 보자. a사의 자동차를 타다가 b사의 자동차로 바꾸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격이 싸고 성능이 좋으면 언제든지 소비자는 이동할 것이다.그러나 소프트웨어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내가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데 MS WORD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리눅스를 공짜로 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손에 익은 윈도우를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손에 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익힌다는 것은 비용을 넘어서 투자될 시간이 만만치 않다.그래서 일단 어떤 소프트웨어에 록인되면 비용이 더 비싸고 성능이 더 떨어지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이런 응용프로그램이 아니고 컴퓨터의 운영체계 정도가 되면 이것은 여간 강력하게 록인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80년대의애플과 MS의 싸움은 이제 교과서에서 다루어지는 고전이 되었다.빌게이츠는 어떻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가?3) 성능에서의 우월성은 전혀 아니었다.애당초 텍스트형의 도스는 이미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도입하고 있던 애플의 매킨토시에 대해서 성능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MS사는 10년이나 늦게 1990년대에 와서야 애플의 매킨토시와 같이 마우스와 그래픽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윈도우3.0을 출시했다.이것도 매킨토시에 비해 성능면에서 훨씬 떨어지는 것이었다.(윈도우는 85년에 첫선을 보였지만 문제투성이어서 쓸만한 것이 못되었다.) 빌게이츠의 성공은 기술의 성공이라기 보다 전략의 성공이었다.

 애플사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이기 이전에 컴퓨터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회사이다.이 회사는 70년대 벌써 PC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는데 대형컴퓨터를 생산하던 IBM이 PC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애플사와 대립하게 된다.이 때 빌게이츠는 제빨리 IBM과 손잡고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스를 이용한 새로운 운영체계를 만드는 일을 맡게 된다.빌게이츠는 MS-DOS를 만들어 IBM에 공급했다.이 IBM을 등에 업고 MS-DOS를 보급시켜 감으로 MS-DOS가 PC운영체계의 표준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다른 응용프로그램은 IBM과의 호환성이 요구되었으므로 MS-DOS가 비록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MS-DOS에 기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 까지 아직 애플사에게 기회가 있었다.그러나 애플사는 자기들의 컴퓨터에  자기들의 운영체계만 적용되는 기술의 폐쇄적 전략을 고수했다.그 바람에 애플의 운영체계는 다른 유형의 컴퓨터와의 호환성에 문제가 생겼고 그럴수록 소비자는 그것을 구입하기를 꺼려했고(소프트웨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응용프로그램의 제작자는 소비시장이 넓지 않은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를 꺼려하게 되었다.바야흐로 음의 되먹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반면 MS-DOS는 소스를 공개하는 등 기술의 공유전략을 택했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독점의 이익을 감소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든 소비자를 여기에 길들임으로써 운영체계의 록인현상을 만들어내었다.그 결과 이것이 "사실상의"(de facto)의 표준으로 굳어져 버렸다.

 일단 록인된 것을 풀기는 어렵다.이 윈도우의 록인에 리눅스가 도전하고 있다.비싼 돈주고 윈도우 운영체계를 살 필요없이 리눅스를 공짜로 다운받아 쓰라고 한다.그러나 사실 돈도 돈이지만 새운영체계에 투자되어야할 시간이 만만치 않다.차라리 돈주고 윈도우를 사서 쓰는 것이 시간비용을 함께 고려한다면 싸게 치일지도 모른다.

  

진화상의 록인은 없었던가?

  

"불"이라는 말은 불이 아니고,"물"이라는 말은 물이 아니다.전자는 기호이고 후자는 그 기호에 의해서 지시되는 지시체이다.지시와 지시체 사이에는 필연적 관계는 없으며 다만 임의적인 약속일 뿐이다.셋 염기로 구성된 코돈은 어떤 특정 아미노산을 지시한다.예컨대 알라닌(Alanine)이라는 아미노산은 GCU으로된 셋염기쌍 소위 코돈으로 표기된다.약속이므로 물론 동의어도 가능하며 사실 알라닌은 GCC,GCA,GCG에 의해서 동시에 지시된다.3개씩 한묶음이 되므로 64개의 코돈이 가능하다.아래 도표는 각 코돈이 어떤 아미노산을 지시하는가에 대한 조견표이다.첫째,둘째,셋째로 염기를 차례로 읽어나가면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그 코돈에 의해 지시되는 아미노산이다.그래서 UUU에 해당하는 것은 페닐알라닌이다.

 

  

모든 생물들은 다른 생물들을 먹이로 하는 복잡한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그 가운데 특히 먹이가 된 다른 생물체의 단백질은 자신의 형성을 위한 재료로 쓰인다.그러나 종에 따라 단백질의 형태가 상이한 것도 많으므로 더 작은 단위로 분해해서 자신의 단백질로 재합성해야 한다.이 분해의 과정은 아미노산 이하의 단계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종에 관계없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아미노산은 동일하기 때문이다.아미노산 단계에서는 특정종을 특징지우는 아이덴티티가 없다.

 그런데 만일 다른 형태의 아미노산을 사용하고 있는 생물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자신의 단백질 합성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추가적인 분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그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고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서 생존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생명의 태동기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아미노산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어떤 이유로(지금 논의하는 기호론적 측면외에 생화학적 측면이 있었을지 모르나 이것의 해명은 유감스럽게도 나의 능력 밖이다.) 어떤 형태의 아미노산이 약간 우세하게 되었다고 하자.여기에 양의 되먹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이 추세에 따라갈수록 보다 소화하기 쉬운 먹이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이것은 다시 이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앞서 이야기한 VCR에서 VHS방식에로의 표준화나 PC의 운영체계에서 윈도우방식으로의 표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사실 생명체들은 상호간의 상호의존도가 높다(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물을 먹이로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제품에 있어서 자동차유형 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유형에 더 가깝다.그만큼 록인은 신속하게 발생하고 견고해질 가능성이 많다.이것은 계획이나 설계를 전제하지 않아도 생화학적 통일성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전체 연관 성원 가운데 어느 정도가 어떤 특성을 공유할 때 록인이 발생하는가?  그것을 일으키기위해 모두가 그  특성을 공유해야할 필요는 없으며 양의 되먹임을 만들어내는 그 최소비율에 도달하면 전체에로의 확산은 신속히 이루어 질 것이다.다음 그림은 이것을 도식화 한 것이다.

 현재종의 70%가 표준아미노산을 채용하고 있을 경우 새로운 종은 50%가 그 표준을 채용한다.그러나 70%에서 80%사이의 어느점에서 표준형을 채용하려는 급격한 피치가 발생한다.(반대로 비표준형은 급격히 감소한다.) 물론 이 도표에서의 수치는 편의상 붙인 임의적인 것이며 새로운 종이 아미노산의 채용에 선택권을 가졌다는 전제는 비현실적인 것이다.이것은 다만 록인의 형태를 이해를 돕기위해 도식화해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미노산의 표준화가 록인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렇다고 아미노산의 언어인 염기의 의미론적 표준화로 까지 이 논리를 확대할 수 있을까? 즉 특정코돈이 특정아미노산을 지시하는 이러한 의미론적 통일성을 이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기호는 임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종에 따라 기호의 지시체가 달라져도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정보만 같고 있다.말하자면 요리책은 갖고 있는데 그 재료를 스스로 조달할 능력이 없다.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침투해서 숙주의 유전기구를 장악해서 숙주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을 생산하도록 명령을 바꾼다.그런데 만일 숙주의 언어가 바이러스의 언어와 다르다면 바이러스는 숙주를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명령해본들 리보솜과 같은 실행기구가 그 명령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이 유전언어의 의미론적 통일의 주역이었을까? 바이러스의 숙주조작이 의미론적 통일을 가져온 것일까? (조용현,2000.5)

 

 

 

1) F.Crick,『생명의 출현』(Life Itself),홍영남 옮김(아카데미서적),11,12장 참조.

2) B.Arthur,"경제에서 양의 되먹이기",이홍규 편역,『딜레마 게임』(고려의학),193-216면

3) 홍성욱,『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문학과 지성사,1999),372면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