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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철학

땅,몸,그리고 身土不二 (2001.7)



땅,몸 그리고 身土不二



1.쥬라기 공원


마이클 크리튼(M.Crichten) 원작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유명한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여기서 "쥬라기"는 지질학의 한 시대로서 공룡들이 번성한 시간대라서 붙여진 이름이다.)의 이야기의 발단은 호박속에 갇혀 화석이 된 모기의 피속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하는데서 시작한다. 그것을 가지고 공룡을 복원해서 코스타리카의 어느 섬에 거대한 공룡의 공원을 만든다.

그림 1 좌측은 쥬라기공원의 로고,우측은 공룡의 피를 빤 후 호박속에 화석화된 모기


 발상은 참신하고 재미있지만 나는 이것을 보면서 어딘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과연 그런 기술이 가능한가 하는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 소설에 깔려 있는 생명에 대한 관점이다.이 아이디어의 이면에는 생명에 대한 기계론적 관점이 깔려 있다.

어떤 생명체든 생명체는 그 자체 무수한 미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일종의 생태계이다. 예컨대 소는 풀을 먹지만 그 풀의 셀룰로스를 스스로 소화시키지는 못한다.그것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소의 장내에 박테리아의 집락이 있다.그러한 미생물총에 의존하지 않고는 소는 살아갈 수 없다.공룡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공룡을 복원할려면 이 공룡의 미생물총도 복원시켜야 한다.

현재의 미생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본래 장내 상주균과 병원균의 구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기생자로 시작해서 오랜 시간의 타협의 결과 공생자로 귀착된 것이 상주균이다.어떤 균이든 낯선 숙주에 대해서는 치명적 독성을 야기시킨다. 그가 먹는 모든 풀들을 그것은 소화시킬 수 없을 것이고 그가 먹는 모든 음식은 그에게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킬 것이다.그래도 그것을 복원하고 싶다면 우선 무균실을 만들고 바로 흡수될 수 있는 특수하게 제조된  음식만을 먹여야 할 것이다.바깥으로 외출하고 싶으면 세균차단 필터가 달린 거대한 헬멧을 쓰고 나와야 할 것이다.헬멧을 쓴 티라노사우르스, 이것은 불쌍한 환자일 뿐 더 이상 영화에서 보는 그 강력한 티라노사우르스는 아니다.우리는 그 티라노사우르스를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우리가 내뿜는 독기에 오히려 그 큰 덩치가 쓰러지고 말 것이다.피해 달아나야 할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오히려 그 껍데기 뿐인 티라노사우르스이다.

자 그러면 진짜 티라노사우르스를 만들려면 그와 함께 그 미생물총을 복원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 미생물총은 또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다른 미생물들과 길항적,상보적 관계속에서만 존재한다.그러면 그것도 복원시켜 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또 이것은...결국 쥬라기의 환경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는 티라노사우르스의 포효하는 진짜 모습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그 환경과의 연관속에서 존재한다.그것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이 <쥬라기 공원>에 들어있다.기계라면 그것이 가능하겠지만 생명의 경우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기계는 문맥독립적 기계이고 몸은 말하자면 문맥의존적 "기계"이다.나는 이 문맥을 "땅"이라고 본다.

땅은 단순히 구획된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땅은 그 공간속에 살고 있는 각 생명체들-인간에서부터 잡초,심지어는 병원균에 이르기 까지-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놓은 역사적 생성물이다.이런 의미에서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땅과의 연관속에서 인간이 만들어질 뿐이다.

나는 최근 크로스비(A.W.Crosby)의 역작 『생태제국주의』1)(Ecological Imperialism)를 읽으면서 이것이야 말로 땅의 의미에 대한 실증적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아메리카가 새로운 유럽(그의 용어로 네오유럽)으로 편입된 이유를 단순히 문명의 우월성에서 찾지 않고 유럽산의 세균,가축,잡초 등이 유럽의 문명과 공동으로 일구어낸 결과물로 본 다.말하자면 땅이 바뀌는 문자그대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 최근 500년간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몸과 땅,그래서 영혼조차 파괴되어 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이다.이것에 비하면 독립국으로서의 주권의 상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겠다.그것은 다시 회복할 수 있겠지만 땅을 잃으면 그가 숨쉬고 있다고 해도 그는 자기땅에서의 이방인이 된다.철저히 파괴되어 버린 인디언들의 땅에 대해서 비애를 느끼고 유럽인들의 그 악마적 잔인성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지만 이것은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땅이 파괴되어가는 그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필자의 관심은 역사적인 것 보다 철학적인 것에 있다.


2.유라시아와 아메리카


2억년전 모든 대륙은 지질학자들이 판게아라고 부르는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으로 붙어 있었다.1억 8천만년전 판게아는 두 개의 초대륙으로 갈라진 다음 다시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는 과정을 거쳐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의 대륙들이 되었다.2)유라시아와 아메리카는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가 일시적으로 연결된 때를 제외한다면) 수백만년동안 동일한 대륙괴에 속하지 않았으며 이 기간 동안 아메리카 버팔로,유럽소,오스트레일리아의 캥거루 등은 각기 서로 고립된 채 독립적인 진화의 길을 걸어갔다.

그림 2 대륙이동


약 350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인류는 10만년전 유라시아전역에 퍼졌다.그 뒤 12,000년전 어떤 시기에 일시적으로 연결된 베링해협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갔다.대략 10,000년전 만년설이 녹기 시작해서 알래스카와 시베리아를 연결하고 있던 육교가 사라졌다.그 이후로 유라시아의 인류와 아메리카의 인류는 독립적인 발전의 과정을 거쳐가게 되었다.

그 이후 유라시아 대륙의 인류는 신석기 혁명을 맞게 된다.신석기 혁명은 단순히  돌을 깨서 석기를 만들던 것을 갈고 닦아서 만들었다는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신석기 혁명의 더 중요한 사건은 농업과 동물 길들이기의 시작이다.이에 이은 금속시대에는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문자가 발명되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의 신석기 혁명은 이 보다는 상당히 지체 되었으며 그 혁명의 정도도 훨씬 좁았다.16세기 스페인인들이 아메리카로 들어갔을 때 원주민들은 아직 야금술의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었다.그리고 유라시아 지역에 비해 길들여진 가축의 범위도 훨씬 좁았다.그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일반적인 소,양,돼지,염소,말을 길들이지 않았다.아메리카의 가축에는 개,라마,기니피그,칠면조와 같은 몇몇의 가금이 있을 뿐이다.

현존하는 대형가축 14종 가운데 13종이 유라시아산이며 1종(라마)만이 아메리카산이다.3)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고기,유제품,비료,운송,가죽과 털,동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중요한 것은 노출된 적이 없는 민족들을 죽일 수 있는 생물학적 무기,병원균을 제공했다는 것이다.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문명이 분리된 후 근 9,000년 이후에 만났을 때 결정적 차이를 만든 것은 이 대형가축의 존재 여부였다.


천연두,홍역,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들은 원래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매우 유사한 조상 병원균으로부터 나온 것인데,각각 돌연변이를 거쳐 인간의 병원균으로 특수화된 것이다.동물을 가축화시킨 사람들은 새로 진화한 병원균에 제일 먼저 희생되었지만 그 사람들은 곧 그 새로운 질병에 대하여 상당한 저항력을 진화시켰다.그렇게 부분적으로나마 면역성을 지닌 사람들이 일찍이 그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없었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면 당장에 유행병이 돌기 시작하여 심한 경우 전체 인구의 90%까지 몰살시키기도 했다.궁극적으로 가축화된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들은 나중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태평양 여러 섬들의 원주민들을 정복할 때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4)


농업은 여러 기생생물들에게 새로운 생태적 기회를 열어놓았다. 수렵 채집민들은 야영지를 자주 옮기므로 그때까지 세균이나 기생충 유층들이 잔뜩 축적되어 있던 분뇨 더미를 남겨두고 훌훌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농경민들은 정주형 생활을 하면서 오물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각종 세균이 한 사람의 몸 속에서 다른사람의 식수 속으로 옮겨 가기도 쉽다.

어떤 농경민들은 자기들의 똥과 오줌을 모아서 사람들이 일하는 밭에 비료로 뿌려 그 분뇨 속에 섞인 세균이나 기생충이 더욱 쉽게 새로운 피해자를 감염시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관개농업과 물고기 양식은 주혈흡충을 옮기는 달팽이에게, 그리고 인간이 분뇨섞인 물 속을 걸어다닐 때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흡충류에게 이상적인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 정주형 생활을 하는 농경민들을 포위하는 것은 그들의 분뇨뿐만 아니라 그들이 저장해 놓은 식량에 이끌려 와서 질병을 퍼뜨리는 설치류 동물들도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농경민들이 숲을 베어낸 개간지는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들에게 이상적인 번식지가 된다.5)

게다가 농업을 통해 인구밀도-수렵사회의 대략 열 배에서 100배-가 높아짐에 따라 중간숙주가 없는 전염성 질병-홍역,천연두,백일해,소아마비,기타 호흡기 전염병들-이 출현했다. 이러한 질병은 중간숙주가 없기 때문에 숙주들간의 밀접한 접촉을 필요로 한다.초기의 인간은 작은 무리내에서 다른 무리와 별로 접촉하지 않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수는 질병을 직접적으로 전파시킬 만큼 충분히 존재하지 않았다.그러나 농업혁명 이후 인구가 조밀해지면서 이러한 질병이 출현했다.

이러한 대규모의 전염성 질병들은 본래 가축들의 질병이다.가축화되기 쉬운 동물들은 사회성 동물들이고 이들은 밀집되어 생활하므로 이러한 질병들이 존립할 수 있었다.그러다가 인간이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하고 인간 역시 농업혁명이후 밀집되기 시작하면서 가축에서 전염된 이 질병들이 인간에 전문화된 질병으로 진화되었다.


소나 말,그리고 양과 같은 동물이 오래 전부터 여러 가지 전염병을 만성적으로 보유해 왔다는 주장은 이들이 야생상태에서 겪었던 생활상을 통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이 동물들은 원래 무리지어 사는 군거성을 가지는데,인간이 가축화를 통해 이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기 이전부터 유라시아대륙의 초원에서 무리를 지어 풀을 먹고 살아왔다.따라서 이들은 바이러스와 같은 직접적으로 전염되는 질병들이 뿌리내려 토착화하는데 좋은 조건을 제공해 왔다.같은 종류의 동물들이 대규모로 무리지어 살게 되면 감수성이 있는 새로운 숙주를 찾기 쉬워서 미생물의 감염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동물들과 기생체간의 진화과정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따라서 생물학적 균형이 이미 확립되었을 것이다.실제 야생의 소,말,양은 수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지만 그 증상은 매우 가볍다.아마 이러한 감염병은 이 동물들 사이에 흔한 소아병이었고 감수성을 가진 어린 동물들이나 계속 감염되었겠지만 별로 해를 받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그러나 사람이 감염되면 몹시 독성이 심한 전염병으로 나타났을 것이다.사람은 이 새로운 침입자에 대항할 수 있는 어떤 후천적인 면역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6)


사실 가축은 전염성 질병의 창고이다.아래 표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7)

그림 3 가축에 기인하는 인간의 질병들


농업과 가축이 양대축이 되어 신석기 이후 인간은 엄청난 대유행병의 희생자가 되었다.그것을 증폭시킨 것은 그후 세계 교역로의 발달이었다. 그로 인해 로마 시대에는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가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세균 번식장을 형성하고 있었다.바로 그 무렵에 드디어 천연두가 ‘안토니우스병’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도달했다. 그 결과 A.D. 165년-180년에는 수백만 명의 로마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마찬가지로 흑사병도 ‘유스티니아누스병’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처음 나타났다(A.D. 542-543). 그러나 전염병이 유럽을 본격적으로 뒤흔들었던 것은 흑사병이 유행한 A.D. 1346년의 일이었다. 그당시 중국과의 육상 무역을 위한 새로운 교역로가 뚫리면서 전염병이 만연하고 있던 중앙아시아로부터 벼룩이 우글거리는 모피들이 유라시아의 동서 축을 따라 유럽으로 신속하게 운반될 수 있었던 것이다.8)

그러나 아무리 무서운 전염병이더라도 유행이 거듭되면 사망자수는 감소한다.같은 지역에 같은 전염병이 반복 유행하는 경우에 대개 유행과 다음 유행간의 기간도 짧아진다.그것은 과거에 같은 전염병에 걸려서 면역력을 획득한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기 때문이다.또한 1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다시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더라도 이 병에 감염되었다가 치유된 사람들만이 자녀를 가지므로 높은 수준의 저항력을 갖춘 인구집단이 생겨난다.그 결과 숙주와 기생생물이 다같이 공존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정된 균형이 빠른 진화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유럽 전체로 볼 때 17세기 까지 각종 전염병의 융단폭격을 받아 유럽인들의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화되어 왔다.이런 역학적 적응에 힘입어 15세기 이후 부터는 전염병의 유행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감소는 없어졌다.

이것이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기전 까지의 유럽의 상황이다.그 때 쯤이면 유럽인들은 현존하는 모든 질병들에 대해 상당한 저항력을 갖고 있었다.저항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몸안에 그 균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그 균이 질병에 이르지 못하도록 면역계에 의해서 억제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보균자임에는 분명하다.그들이 뿌리는 균은 저항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병이 되지 않더라도 저항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치명적인 균이었다.1492년 백인들과 접촉한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처지가 그러했으며 그들에게 백인은 걸어다니는 死神이었다."인디오들은 너무 쉽게 죽어갔다.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냄새만  맡아도 죽는 것 같았다."9)그러나 그 치명적 결과가 모습을 드러낸 후에도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아무도-백인들까지도-몰랐다.


3.죽음의 키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약12,000년전  베링기아(Beringia)라 불리는 자연육교를 통해 매머드를 비롯한 큰 사냥감을 좇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왔다.

이주한 아시안인 무리는 아메리카 대륙 전역으로 퍼졌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켰다.몇몇 장소에서 수렵채집 생활은 원시적인 농경에 자리를 내어 주었고,그 뒤로 대규모의 경작과 도시가 나타나기도 했다.이러한 변화는 7천년전 페루에서 시작되었다.그리고 미국의 남동부에서는 겨우 천년전에야 완성되었다.신세계에서의 주요 작물은 감자,카사바,옥수수였다.이 농업을 바탕으로 수만 또는 수십만의 인구를 가진 도시들이 생겨났다.큰 사원과 피라미드가 있는 이런 도시들은 도로를 통해 더욱 광대한 제국 또는 연방과 연결되었다.즉 안데스 남쪽의 잉카,열대 중부아메리카의 마야,멕시코 북부의 아즈텍,뉴멕시코의 아나사지,그리고 미국 동부의 마운드빌더 등이 그러한 제국들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이들의 문명수준은 유라시아의 고대 슈메르문명의 수준에 와있었다.그러나 유라시아의 몇가지 핵심적 기술은 결여되어 있었다.금속을 제련했지만 대부분 장신구용으로 만들었고,도구와 무기용은 드물었다.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 것은 대형 가축을 길들여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동력은 거의 인간의 근력에 의존하는 수준이었다.10)

가축을 길들이지 않은 것은 아마 가축화할 만한 적당한 대형 포유류가 아메리카 대륙에 없었는지 모른다.이것은 어떤 면에서 행운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유라시아와의 대결에서 결정적 패배를 가져온 원인이기도 하다.가축을 기르지 않았으므로 가축에서 기인하는 구세계의 전염성 질병들이 이 대륙에는 없었다.그들은 적어도 유라시아가 겪은 전염병의 대유행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은 대체로 건강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유럽인들과의 접촉은 전염성 질병에 경험이 없는 그들을 치명적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사용자

그림4 죽음의 키스. 콜럼버스의 산살바드로 상륙


 전염병은 1518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해서 천연두가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발생하고 원주민들에게 무섭게 유행하기 시작했다.이 천연두 유행에서 살아남은 원주민은 1천명 미만이었다.그리고 히스파니올라 섬으로부터 1520년에 코르테즈를 돕기위해 온 증원부대와 함께 천연두는 멕시코에 도착했다.그리하여 거의 좌절할 뻔 했던 스페인의 신세계 정복은 이 천연두를 통해 성공했다.아즈텍의 군사들이 스페인군을 반격할려고 하려는 순간 천연두가 테노치티트란에 들어왔던 것이다.전투에서 패배하여 수도로부터 후퇴한 스페인군을 좇아간 지 몇시간만에 아즈텍의 수많은 병사들이 사망했다.이들이 천연두 때문에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서전의 승리를 그대로 밀고 나가 스페인 사람들을 몰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갑작스런 천연두 유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이들은 공격을 중단했고, 따라서 코르테즈는 전열을 재정비해서 다시 수도를 포위하여 완전히 괴멸시킬 수가 있었다.11)


"사용자

그림5 16세기 아즈텍의 천연두 희생자들



뒤를 이어 아메리카를 황폐화시킨 수많은 질병들이 백인들의 몸에 실려 그 땅으로 속속 들어갔다.41종의 천연두 발진,4종의 선페스트,10종의 인플루엔자,25종의 폐결핵,그리고 디프테리아,티푸스,콜레라 등이 유입되어 들어왔다.12) 그것은 남북 아메리카를 황폐화시켰고 그 정지작업의 끝에 1620년 미래의 "위대한" 미국문명을 창조할 일단의 신의 대리자(?)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 대륙의 동해안에 상륙했다.


플리머스 거주자가 도착하기 몇 년전에,매우 치사율이 높은 병이 뉴잉글랜드의 동쪽 지역에 거주하는 인디언 사이에 맹렬하게 퍼졌다."전 마을의 인구는 감소했다.살아있는자가 죽은 자를 묻어줄 수 없을 정도였다.그리고 몇 년이 지난후에도 시신이 땅위에 나뒹구는 채로 발견되었다.메사추세츠 인디언은 30,000명에서 300명으로 격감했다.13)


메이프라워호가 출항하기에 앞서 영국의 제임스왕은 야만인들에게 경이로운 역병을 하사함으로써 우리에게 위대한 선함과 풍요로움을 주신 신에게 감사드렸다.

그 대륙은 신천지가 아니었다.그러나 그 원주민들을 몰아냄으로써 결과적으로 깨끗해진 대륙(인종청소?)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신대륙이라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유럽의 아메리카 정복사를 보고 있으면 정말 비애를 금할 수가 없다.시간적,공간적 범위가 다른 한 문명이 다른 문명에 침투해 들어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그것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그것은 폭풍처럼 밀어닥쳐오는 운명이었다. 유라시아의 병원균들이 범대륙적 규모로 전파되면서 1억명으로 추정되던 원주민의 수가 90%이상 감소하였다.그것은 개인의 노력과 창의성,용기 등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자연적 재해, 아니 어쩌면 신의 섭리처럼 보였다.자연재해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이것은 유럽인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명백한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일방적 사태는 유럽인들에게는 정복해도 좋다는 신의 허가장으로 그리고 원주민들에게는 어쩔수 없는 신의 징벌로 받아들여졌다.인디언들은 매우 절망적이어서 더 이상 부족의 신을 믿지 않았으며 자신의 전통을 부정했고,술독에 빠졌고,자살하거나, 힘있는 기독교의 신으로 개종했다.

백인들은 의기양양했다."신은 이  지역에 사는 원주민을 내쫓았다.480km이내의 원주민 지역 대부분이 천연두로 말살됨으로써 신은 우리가 이곳을 차지할 확실한 명분을 주었고 이 지역에 남아있는 거의 50명도 안되는 원주민들은 우리의 보호안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초대 메사추세츠의 주지사였던 존 윈스롭은 말했다.14) 신이 백인을 위해서 개발지역 브로커의 역할 까지 하다니,비서구인이자 비기독교인인  나로서는 소름끼치게 들린다.15)

북아메리카의 키오와족에게는 이 병에 관한 전설이 하나 있다.그 부족의 신화적 영웅인 세인데이(Saynday)가 검은 옷과 큰 모자를 걸치고 있어서 마치 선교사처럼 보이는 한 낯선 이를 만났다.그 낯선 이가 먼저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세인데이라고 합니다.키오와족의 나이든 삼촌이지요.나는 항상 건강이 좋은 사람이랍니다.당신은 누구요?"

"천연두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고 하는 일은 무엇이고 여기에는 왜 왔소?"

"나는 저 멀리 동쪽 바다를 건너서 왔소.나는 백인들과 함께 다니지요.카오와족이 당신의 부족이듯이 그들은 나의 친척이지요.때로는 나는 그들을 앞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몰래 숨어 다니기도 합니다.그러나 언제나 나는 그들의 친구이고 당신은 그들의 야영지와 집에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오?"

"나는 죽음을 실어 나릅니다.나의 숨결은 아이들을 봄눈 속의 어린 식물처럼 쇠약해지게 합니다.나는 파괴를 실어나릅니다.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 하더라도 나를 한번 보면 죽음처럼 추해집니다.그리고 그들의 아이들과 아내 까지 죽이고 해칩니다.가장 강력한 전사들도 내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나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처지가 됩니다."16)


아무리 수가 적고,행동이 잔인하고 비열하다더라도 백인들은 그 신의 저주에서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신이 이들을 편애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천연두가 가지는 이 선택적 파괴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의를 이미 꺽어 버렸다.그들은 숙명을 기다리고 있었다.코르테즈나 피사로와 같은 망나니들은 천연두가 만들어 놓은 승리의 이삭을 줍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이것만이 그들의 압도적 승리를 설명해줄 수 있다.

왜 질병은 이렇게 선택적으로 작용했는가? 물론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신의 섭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안다.인간이 새로운 병원균과 만나면 초기에는 그것은 상당한 유독성을 보인다.그것은 급성 전염병의 형태를 취한다.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과 병원균 사이에 일종의 타협이 이루어지게 된다.그 과정에서 그 질병은 생명에 치명적이지 않은 만성질환이나 소아전염병으로 변한다.

국지성에 머물던 질병들이 동서간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동서간의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과 아시아를 급습했다.초기에 수많은 희생자들을 내면서 이러한 치명적 질병들과 인간들간에는 일종의 타협의 선이 만들어졌다.일종의 인간과 질병간의 평형상태가 형성된 것이다.그러나 아메리카는 이 과정에서 고립되어 있었다.(이것은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다.거기서도 아메리카에서 보는 것 같은 비극이 발생했다.)백인들의 아메리카 유입과 더불어 이들은 균의 갑작스러운 급습을 받은 것이다.여기서 아이러닉한 것은 유럽인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병원균들이 아메리카 침탈에서는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동맹군이 되었다는 점이다.유럽인들은 혼자 오지 않았다.그들은 세균들과 더불어 이 미지의 낯선 땅으로 왔다.그러나 여기에 동행한 또 다른 동맹군들이 있다.바로 잡초와 가축들이다.이들이 함께 합쳐서 아메리카 대륙을 그들의 땅으로 바꿔 버렸다.

인디언이 그들의 땅을 잃었을 때 그들만 그 땅을 잃은 것이 아니다.그 땅에 살던 식물과 동물도 그 땅을 잃어 버렸다.앞서 말했듯이 땅이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안에 서식하고 있는 생명체들이 서로 얽혀서 만들어내는 관계망이다.그 관계망의 한 일각이 무너지면서 다른 일각도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잡초"는 종이나 속,또는 과의 의미에서의 학술적 용어가 아니다.그것은 메마른 땅에서 급속히 퍼져나가고 다른 식물 보다도 빨리 자라는 어떤 식물을 가리킨다.이것은 산사태,홍수,화재 등등으로 인해 식물들이 사라진 땅을 장악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식물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물론 유럽인들이 들어오기전에 아메리카 토착산 잡초들이 있었다.그러나 이것은 유럽산 잡초들에게 패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메리카에는 대형 동물이 버팔로 등 몇 종을 제외하고는 별로 많지 않다.이것은 이 잡초들이 구대륙의 잡초들처럼 발굽에 채이고,입에 뜯기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말하자면 신대륙의 잡초들은 그런 와중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는 방어수단을 진화시키지 못한 것이다.이것들은 땅을 갈고 뒤엎은 유라시아적 농법에도 적응되어 있지 않았다.인디언들은 이런 농법을 알지 못했다.그들은 말했다."나 보고 땅을 갈아 엎으라구요? 내가 칼을 가지고 내 어머니의 가슴을 찢으란 말이오."17)

그러나 버팔로와 같은 아메리카 원산의 대형 포유류들이 그 생태적 니체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말하자면 신대륙의 잡초를 버팔로가 보호해주고 있는 형상이었다.그런데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버팔로에 대한 마구잡이식 남획이 시작되었다.버팔로가 사라진 그 빈 곳으로 쟁기와 유럽산의 가축들이 밀고 들어갔다.그 유럽산 가축들은 아메리카 원산의 동물들 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새순을 끝없이 뜯어먹고 뿌리 까지 뽑아먹었다.대형 초식동물들이 많지 않아 미처 그러한 지독한 동물들에 대한 방어를 진화시키지 못했던 신대륙의 초본과 식물들이 점차 사라지자 그 빈생태적 니체를 차지한 것은 그러한 가축들에 잘 적응되어 있는 유럽원산의 잡초들이었다.


북아메리카의 대평원의 초지의 토착식물들은 수백세대 동안 버팔로 수백만 마리에 의해서 뜯어 먹혔으면서도 그 압력을 잘 견디어 내었다.. 버팔로는 토착풀이나 활엽식물들과 단단한 제휴관계를 형성한 가운데 서로 상대방을 존속시키고 영속화시켰으며,어떤 외래 동식물들의 침입도 막았다.신석기 혁명후 수천년 이래 온대지역에서 끊임없는 성공을 거두었던 유럽산 가축들과 풀들도 거기서는 가로 막혔다...침입생물들은 그들의 생물상 가운데 우세 생물이 소총을 지닌채 무력으로 도착하기 까지는 거의 아무런 진전도 하지 못하였다.미국 남북전쟁이후 소총수들이 평원에 들어와 버팔로를 죽였으며,이로써 토착생물상의 핵심적인 요소가 제거되었다.버팔로가 사라짐에 따라 평원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독자적으로 생활하면서 새로운 힘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도 사라졌다.구세계의 목동과 농부들,소와 양들이 평원으로 휩쓸고 들어왔다.18)


이 동물의 무리들에 의해서 신대륙의 잡초들은 사라졌으며 이 빈곳은 이 구대륙의 동물들에 보다 잘 적응되어 있는 구대륙의 잡초들에 의해서 채워졌다.이 잡초들은 다시 구대륙 동물들을 불러들이고 이렇게 됨으로써 인디언이 쫓겨난 땅에는 이제 신대륙의 동물과 식물도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이 과정을 통해서 아메리카 대륙은 물리적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땅으로서 완전히 유럽화되었다.이제 그것은 유럽의 땅이다.이것은 인간,세균,잡초,가축과 같은 유럽을 구성하는 생물시스템이 다른 생물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이다. 인디언들은 과거 자기들의 땅에서 이제 낯선 이방인이 되었다.


4.신토불이


인간과 잡초,인간과 세균,가축과 잡초..이것들은 한 생태계내에서 경쟁하며 서로 길항적으로 작용하지만 다른 생태계와의 관계에서는 일종의 공동보조를 취한다.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긍정적 관계든 부정적 관계든 서로에 맞추어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홀로 존립할 수 없다.이것이 땅의 의미이다.전체 생물상이 만들어내는 이 관계망이 땅이고 개별적 생물들은 이 관계망에 의존한다.물론 이 관계망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외부의 영향을 받아 들이면서 끊임없이 유동한다.그러나 땅은 그 유동속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다.우리는 이것을 "풍토"라고 부른다.

                                                                                                                     


                                                                   그림 6 미국자리공


미국자리공(poke)이 화물속에 숨어 우리나라로 들어올 때 한 개체로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땅의 대표로서 온다.그것이 우리 땅의 생태적 빈틈을 찾아 뿌리내림으로써 그 땅의 다른 성원들의 정착을 용이하게 한다.미국자리공은 울산공단과 같은 대규모 공단에 대군락을 이루었는데 땅이 극도로 산성화되어 우리 잡초가 소멸된 그 빈틈안으로 들어온 것이다.우리나라의 귀화식물 가운데 60%이상이 유럽과 북미산이다.이것은 우리의 땅이 유럽-북미의 땅에 의해 상당한 침탈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어떤 문화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19)

생태학자들은 외래종의 잡초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그 땅의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지표로 받아들인다.시스템의 어딘가 구멍이 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난 "귀화"일 뿐 땅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그러나 지난 500년간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났던 것은 단순한 귀화가 아니라 원래의 주인을 몰아내고 땅을 바꾸는 문자 그대로 경천동지의 사건이었다.그것은 인디언 원주민 보다는 백인이 살기에 더 편안한 땅으로 바뀌었다.인디언에게는 조상 전래의 그 땅이 낯설고,물설은 땅으로 변해버렸다.


대평원에서 백인들과 고용인들은 버팔로를 모두 죽여 없애면서 성병 병원체의 확산을 부추겼는데,물론 그 가운데 일부는 외부에서 온 것이었다.지난 세기 말경 포트 펙에서 수우족을 치료한 한 의사의 평가에 따르면,그 부족의 여성들 사이에 성병이 만연하게 된 비극은 단순히 비도덕성의 산물이 아니라 더욱 일반화된 변화의 산물이었다."버팔로가 소멸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정숙했다."20)


버팔로가 소멸한 것과 인디언 여성들 사이에 성병이 만연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그것은 함께 그들의 땅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그러므로 버팔로의 소멸은 인디언들에게 영향을 주게된다.땅이 죽어가는데 그 땅의 일부인 인간이 멀쩡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그 땅이 파괴되면 그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그 종족의 영혼도 파괴된다."버팔로가 소멸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정숙했다."는 이 말은 身土不二와 다른 말이 아니다.땅과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땅이 몰락하면 몸도 몰락한다.이것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온 인디언의 슬픈 몰락사였다.

풍토병화된 병원균도 이 땅의 일부이다.아프리카를 유럽의 침탈에서 막아내고 그 땅을 지키고,그 땅의 다양성을 유지시켜온 것은 이 기생생물들이었다.다른 땅에서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사라져 버린 대형 포유류의 다양한 종들이 그 땅의 일부를 이루면서 살아있는 것도 이 기생생물의 덕분이다.그것은 아프리카인을 비롯한 모든 생명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질병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땅을 구성하는 같은 동지였다.아프리카는 인간을 포함한 어느 특정 종의 주도적 역할을 허용하지 않는 정말 독특한 땅이다.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만연되고 있는 기아와 질병은 주도적 역할을 확보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땅의 분명한 거부의 표현이다.아프리카의 땅은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그것은 기생생물의 힘이다.

사실 아프리카는 유럽에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침탈의 1차 대상이 되었다.그것은 훌륭한 상품이었지만 유럽인들에게 그것은 그림의 떡이었다.한 제국주의자는 그 좌절감을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죄 때문인지 혹은 신의 심오한 판단 때문인지 우리가 들어선 위대한 에디오피아의 모든 입구에,신은 죽음의 열병이라는 불타는 칼을 가진 무서운 천사를 놓으셔서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 이 동산의 샘으로 가는 것을 막으셨는데,그곳으로부터 우리가 정복한 수많은 지역의 바다로 흘러가는 이 황금의 강들이 발원한다.21)


지구상의 여러 자연환경 가운데 열대우림지역은 가장 변화가 많은 곳이다.기온이 낮고 건조한 지역에 비해서 다양하고 많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또한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떠한 것도 이 우림지대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했다.추운 빙점이하의 낮은 기온이나 습도에서는 살 수 없는 작은 미생물들이 열대우림에서는 수없이 번식하고 있다.또한 이렇게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단세포생물(원생동물)들이 숙주의 몸밖에서 오랫동안 목숨을 보존할 수 있으며,일부 기생체는 숙주의 몸밖에서 독립된 생물로 꽤 오랫동안 생존하기도 한다.다시말해서 숙주가 될 수 있는 생물이 매우 적더라도 각종 기생생물들은 얼마간 기다릴 수 있다.이것이 숙주와의 끈이 떨어지면 갑자기 수그러드는 온대성 질병과 다른 점이다.열대우림은 언제 어느 때든 숙주를 기다리면서 대기해 있는 기생 미생물들로 꽉 차 있다.22)

열대지역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모든 형태로 기생생물에 의해서 감염되어 있다.이것이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어느 종의 우세화를 허용하지 않는 견제 역학을 한다.유제류와 같은 초식동물은 수면병의 병원체인 트리파노소마(trypanosome)에 감염되어 있다.여기에 적응된 병원체는 그 숙주를 계속 쇠약하게 하겠지만 치명적 사망에 까지 이르게 하지 않는다.그러나 사람이 이 유제류를 잡아먹으면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 옮아오고 인간에게는 치명적이다.이러한 기생체의 존재로 사람이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수많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데 일정한 제한이 가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23)

한 예에 지나지 않지만 열대지역은 기생체와 숙주,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얽히고 설킨 관계로 해서 어느 종이 지나치게 증식하는 것을 막으면서 다양한 종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유럽인들이 처음 보았을 때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원시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그것이 열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준이었다.그 땅은 인간의 전횡을 용서하지 않는 곳이다.

모든 적도 아프리카인은 어떤 형태의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고 감염되어 있음으로 해서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여기서 잉여생산물을 전제로 성립하는 도시와 문명은 이 땅과 어울리지 않는다.우리 인류가 진화의 초기에 아프리카를 탈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는 이 땅을 새로운 땅으로 바꾸고자 시도했다.그것이 녹색혁명이다.정글을 갈아엎어 아프리카에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의 농업,그것도 환금성 작물인 커피나 열대과일과 같은 단일 작물을 재배했다.아프리카가 기생생물의 땅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그것도 전혀 저항성이 없는 단작으로 해서 기생생물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훨씬 많은 유독성 농약을 퍼부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에볼라,라사,마르부르크 출혈열과 같은 신종 질병들이 출현했다.말라리아와 황열병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 땅이 인간이라는 강력한 적을 만나서 자신을 지켜내려는 방어의 과정이다.그곳은 다양한 종들이 더불어 사는 곳이며 특정한 종의 착취를 허용하지 않는 곳이다.그곳은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그러나 과학기술의 개입으로 20세기 들어 급격한 인구팽창이 있었다.내란이 발생하고 대규모의 종족살해가 만연되고 있다.한편으로는 장기간 계속되는 한발로 기근이 만성화된 데가 기생충의 창궐로 죽음의 땅이 되었다.이 모든 것이 균형의 회복을 위한 땅의 작용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과학과 기술이 손틀고 나오면 그 균형은 다시 회복되어 인간이 감히 손댈 수 있는 신성한 땅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대륙 규모의 땅을 검토해 보았지만 이것만이 물론 땅이 아니다.보다 작은 규모에서 우리의 땅이 있다.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는 조상의 혼령이 깃들어 있는 우리의 땅이다.이 땅은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근원이다.땅이 파괴되고 외래종이 토종을 몰아내어 번창하고 있는 것을 우리 몸의 근원에서 살펴야 한다.일시적 필요에 의해서 물길을 막아 댐을 만들고 갯벌을 메꾸어 공단이나 농토를 조성하는 것은 땅을 단순한 추상적 공간으로 보는 잘못된-땅의 입장에서 "사악한"-발상이다.

身土不二.땅과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그 동일성을 깨달을 때 철새가 죽어가는 것을 환경론자의 한갓된 취향으로 보지 않고 내 몸이 죽어가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철새든,지렁이든,벌레든 그것은 땅이고 그 땅이 죽어가는데 내 몸이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주>


1) A.W.Crosby,『생태제국주의』,안효상.정범진 옮김(지식의 풍경,2000)

2) 같은 책,20-21면

3) Jared Diamond,『총,균,쇠』,김진준 옮김(문학사상사,1998),233면

4) 같은 책,126면

5) 같은 책,297면

6) W.H.McNeill,『전염병과 인류의 역사』,허정 옮김(한울,1998),71면

7) Diamond, 앞의 책,300면

8) 같은 책,298면

9) McNill, 앞의 책,232면

10) Arno Karen,『전염병의 문화사』,권복규 옮김(사이언스 북스,2001),150-151면

11)  McNill,앞의 책,227면

12) J.W.Loewen,『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이현주 옮김(평민사,2001),116면

13) 같은 책,116면

14) 같은 책,110면

15) 다음은 백인들의 진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내려오는 일화이다.

스페인인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서 어느날 추장은 사람들을 모아 그들에게 스페인 인들이 이스파뇰라 섬의 사람들에게 행했던 박해를 상기시켰다.

"왜 그들이 우리를 박해하는지 알아요?"

그들은 대답했다."스페인 사람들이 잔인하고 나쁘기 때문에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내가 말하겠다."추장은 말했다.

"그들이 정말로 사랑하는 주인이 있는데 그 주인을 당신에게 보여주겠다."

그는 금으로 가득찬 종려잎으로 만든 바구니를 들어올리며 말했다."이게 바로 그들의 주인이다.그들이 섬기고,존경하는...이 주인을 갖기 위해서 그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주인을 위해 그들은 우리의 부모,형제 그리고 전 부락민을 죽였다.

어떤 장소에서든지 이 주인을 기독교인으로부터 숨기지 말아라.우리가 우리의 내장에 이것을 숨긴다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로부터 이것을 취할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강속에,바다 아래에 던져 버리자.그러면 그들은 이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금을 강에 던졌다.(같은 책,100-101)

16) Crosby,앞의 책,239-240면

17) 같은 책,333면

18) 같은 책,334면

19) 김준민 외,『한국의 귀화식물』(사이언스 북스,2000),22-23면

20) Crosby,앞의 책,331면

21) 같은 책,162면

22) McNill,앞의 책,31면

23) 같은 책,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