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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철학

섹스,그 현란한 생명의 춤사위(2001.7)

 

-숙주, 기생자 그리고 美의 진화-

 

 

1.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세상사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도 자꾸자꾸 접하다 보면 물리기 마련이다.그런데 예외가 딱 하나 있는 것 같다.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놀음이다.텔레비젼을 켜면 20,30년 전의 드라마나 지금의 드라마나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는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사람들은 물리지도 않고 본다.그게 어디 텔레비전 드라마 뿐이겠는가?소설이나 시,연극이나 영화 거의가 우리의 영원한 주제 "사랑에 대해서"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사랑이 얽히고 섥혀서 문화가 이루어지고,그것이 정치를 만들어 놓으며,결국 역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의 사랑을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그런 논의라면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필자는 이곳에서 인간을 포함한 더 넓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성(sex)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림 1 <슈렉>의 피오나 공주

 

    평소에 이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 글을 쓰게된 직접적 동기는 얼마전 <슈렉>(Shrek)을 본 것이다.내용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삼차원 애니메이션이 대단하다고 해서 보러갔다.그런데 내용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것은 디즈니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를 완전히 뒤짚어 놓은 것이다.<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숲속의 공주>의 그 공주(그러고 보니 이 공주는 이름도 없다)와는 천양지차로 다르다.그녀는 그냥 얌전히 잠만 자면서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숲속에 나타난 도둑 로빈훗에게 이단 옆차기,앞발차기,돌려차기를 선보이는가 하면 괴물 슈렉의 엉덩이에 박힌 화살을 그대로 쭉 뽑는등 아주 터프하고 엽기적인 공주로 그려지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당연시 여겨왔던 디즈니판의 그 공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슈렉에서 보는 것처럼 다른 공주상도 가능한데 왜 디즈니판의 공주의 상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형적인 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더 깊은 심층적 이미지를 전형화한 것일지 모른다.

디즈니판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그것은 <슈렉>에서 보여주듯이 다음 3컷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그림 2 옛날 옛날에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어요.공주는 멀리 떨어진 성에 갇혔어요.무섭게 불을 내뿜는 용이 그 성을 감시했지요.용감한 기사들이 그 성에서 공주를 구하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그러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어요.공주는 용이 지키는 가장 높은 탑,가장 높은 방에서 기다렸어요.진정한 사랑과 진실한 사랑의 입맞춤을.

 

왜 공주는 잠만 자고 왕자는 생사를 건 그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서 공주에게 입맞춤 하도록 되어 있는가? 얼핏 보면 공주는 선택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처럼 보인다.그러나 진실로 선택하는 자는 공주이다.공주를 찾아가는 그 험난한 장애물(하필 용인가?)은 어중이떠중이를 걸러내기 위해서 신중히 고안된 공주의 체이다.그리고 공주의 깊은 잠속에는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숨어 있다.이것이 다윈을 곤혹스럽게 했던 성선택(sex selection)의 진상이다.

도대체 왜 성이 존재하는가? 더 구체적으로 왜 수컷이 존재하는가 하는 더 근본적인 물음에서 우리의 논의를 시작하자.

 

2. 性의 기원

 

성은 형질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형질이 다양하면 그만큼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이 생겨난 원인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는 대립된 견해들이 있다.하나는 윌리암스에 의해서 제기된 것으로 성은 "다양성을 생산함으로써 이질적 환경에 살아남을 확률을 높혀 준다."는 것이다.그는 이것을 "복권"(lottery)에 비유한다.같은 번호를 여러 장 가지는 것 보다 다른 번호들을 각각 1장씩 가지는 것이 당첨 확률이 높다.1)부모와 자식이 같은 장소에 있을 때는 성이 필요없다.부모에 의해서 이미 적합한 것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번거러운 유성생식을 할 필요없이 무성생식으로 증식해나가도 상관없다.그러나 지금 까지 탐험되지 않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자 할 때는 이 형질이 그 땅에 적합할지의 여부가 불확실하다.이 경우는 똑같은 카드를 여러장 가지기 보다는 각기 다른 카드들을 1장씩 가지는 것이 낫다.그 가운데 어느 한 장이 당첨될지 모르기 때문이다.그래서 뿌리나 줄기로 무성적으로 증식하는 식물도 다른곳으로 이주할 때는 예외적으로 유성생식을 통해서 씨앗을 만들어낸다.2)

 또 다른 견해는 "엉킨 방둑"(tangled bank)에 비유한다.이것은 다윈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성은 자손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태적 니체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부모와 자식,자식과 자식들간의 경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본다.예컨대 지금까지 딱딱한 견과만을 먹이로 하던 종의 자손이 성을 통해 다른 식성을 얻어 풀을 먹이로 할 수 있게 되었다면 부모와 경쟁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요컨대 성은 자손들로 하여금 다양한 자원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3)

이 두 견해는 다른 결과를 예측하기 때문에 흥미롭다.복권가설이 맞다면 부모의 주변에는 무성생식이,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유성생식이 일어날 것이고 방둑가설이 맞다면 그 반대로 부모의 주변에서는 유성생식이,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무성생식이 일어날 것이다.관찰결과는 방둑가설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4)그러나 어느 것도 결정적인 것은 아니며 모두 가설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흥미로운 제 3의 견해가 있다.해밀턴(W.Hamilton)의 "기생자"(parasite) 가설이다.그는 성과 질병간의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그는 200개체로 된 가상적 개체군에서 시작했다.이것들은 매년 자식을 하나씩 낳는 것으로 설정했다.그 가운데 어떤 것은 유성생식으로 어떤 것은 무성생식으로 번식한다.그리고 죽음은 무작위적으로 일어난다.그 결과 유성생식 개체는 급속히 소멸했다.이것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무성생식이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다음 그는 이 가상세계안에 몇 종류의 기생생물체를 풀어 놓았다.그러자 무성생식종은 급격하게 소멸하면서 유성생식종이 우위를 차지했다.5) 요컨대 성은 기생자-넓은 의미에서 질병-에 대한 대항책으로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성의 기생자 가설에 대한 인상적인 증거가 있다.리블리(C.Lively)는 Potamopyrgus antipodarum이라는 달팽이를 연구하고 있었다.호수,계곡,강등에 서식하며 1/4인치 가량의 크기이다.그 종의 달팽이의 대부분은 처녀생식을 통해서 태어나는 똑같은 클론들이지만 일부는 암컷과 수컷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성을 통해서 재생산한다.그런데 계곡의 달팽이는 무성으로,호수의 달팽이는 유성으로 번식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내었다.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리블리가 여기서 명백한 패턴을 찾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호수의 달팽이는 계곡의 달팽이보다 흡충에 더 많이 감염되어 있었다.그리고 가장 많은 수놈들이 있는 곳은 호수였다.호수가 기생생물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호수에는 수놈들의 수가 더 많다. 기생자들의 수가 많은 곳일수록 성의 진화의 압력이 높은 것이다!6)

 

섹스가 주는 최고의 이익은 생화학 단계에서 볼 수 있다.배우자와 자신의 유전자를 뒤섞고 재결합시킬 수 있는 개체는 영속적인 유전자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그들은 놀랄만큼 다양한 생물학적 자물쇠를 자손에게 물려주어,해로운 병균이 최악의 상태로 몰고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따라서 섹스는 숙주에게 빠르게 번식하는 미생물과 기생충을 능가하는 상당한 기회를 제공한다.전염 미생물은 새로운 표면 단백질-세포의 자물쇠를 여는 새로운 표면단백질-을 만들어 내겠지만,숙주들 사이에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들 모두가 효과적이지는 못할 것이다.7)

 

기생자 가설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는 기생충 그 자체로부터 왔다.8)숙주나 마찬가지로 기생충도 성을 갖고 있다.1977년 스코틀랜드의 과학자들은 기생충들이 왜 이런 번거러운 짓을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리블리처럼 이들도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둘 다 행하는 대상을 찾았다.그들은 쥐의 몸안에 살고 있는 Strongyloides ratti라는 선충을 그 연구대상으로 택했다.쥐의 장내에 살고 있는 암컷은 수컷의 도움없이 알을 낳는다.쥐의 몸을 떠나서 그 알은 부화하는데 이 유충은 두가지 다른 형태로 출현한다.

한 형태는 모두 암놈이다.그것은 다시 침투할 쥐를 찾으면서 시간을 보낸다.쥐의 피부를 뚤고 들어가 코에 도달하고 쥐가 냄새를 맡는데 사용하는 신경말단에 도달한다.그것을 따라 뇌로 들어간다.여기서 이 기생충은 항상 동일한 경로를 따라 쥐의 장으로 들어가 암놈클론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선충의 또다른 형태는 흙속의 알에서 부화하고 거기에 머문다.이 유충이 성숙하면 암,수의 두성을 가진다.암놈은 수정된 알을 낳아 쥐의 몸으로 들어갈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킨다.요컨대  Strongyloides ratti는 무성과 유성의 두가지 생활사를 가진다.

스코틀랜드의 과학자들은 쥐의 면역계에서의 어떤 변화가 기생충의 재생산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그들은 Strongyloides를 쥐의 몸속에 주입했다.그리고 쥐는 이 기생충에 대한 면역반응을 일으켰다.그다음 구충제를 주사해서 쥐의 몸속의 기생충을 제거했다.그 다음 이 쥐를 재감염시켰을 때 선충의 새로운 파도가 알을 낳기 시작했다.그런데 거기서 태어난 기생충들은 훨씬 더 많은 수가 성을 구비하고 있었다.또 다른 실험에서는 방사선으로 쥐의 면역계를 약화시키자 성적 재생산 보다 클론에 의한 재생산이 늘어났다.

이 실험은 Strongyloides가 무성생식을 더 선호하지만 면역계가 성을 가지도록 강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면역계는 기생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기생자 자신의 기생자이다.그 기생자에 대한 대응으로서 유성생식을 낳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말라리아와 같은 장내 기생충들이 왜 유성과 무성의 그 복잡한 생활사를 반복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우리의 면역계에 대한 대응전략인 것이다.

 

3.男과 女

 

필자는 여러 가설 가운데 기생가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이것이 앞으로 전개될 많은 사실들-특히 우리가 모두에서 제시한 공주의 디즈니 모델-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성이 생겨난 원인에 대한 논의였지만 이것이 암컷과 수컷이 생겨난 것에 대한 이유는 아직 아니다.섹스는 유전자를 섞는 것이며 따라서 암수의 구분을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지렁이나 달팽이 같은 것은 유성생식을 하지만 암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몸안에 난소와 정소를 다 갖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암수한몸,남녀추니 또는 학술적 용어로 "동형배우자"(isogamete)라고 한다.이들은 교미할 때 두 개체가 동시에 각각의 정자로 상대의 알을 수정시켜주고 상대의 정자로 자신의 알을 수정받는다.9)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암컷과 수컷으로 분리되어 전문화의 길을 가게 되었을까?다시말해서 이형배우자(heterogamete)의 기원은 무엇인가?자연과 인간사회에서 발견되는 흥미진진한 섹스 스토리는 바로 이 분화에서 시작된다.모든 예술과 문학의 소재는 여기서 발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는 주고 하나는 받는다.둘다 이동한다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주는 것이 움직이고 받는 것은 그대로 머무는 편이 낫다.이동하는 것은 가벼운 편이 낫고 머무는 것은 무거운 편이 낫다.그래서 하나는 자연히 작고 운동성을 갖추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크고 운동성을 잃게 되었다.생물학자들은 이 단순한 조건들이 정자와 난자의 차이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난자는 자손의 양육 기능에 맞도록 되어있고 정자는 운동성을 가져 짝짓기를 위한 기능에 적합하다.두개의 전문화된 배우자들이 만들어내는 접합자가 두 동일한 배우자들이 만들어내는 접합자에 비해 더 적응력이 있고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10) 여기서 정자를 전문으로 하는 것이 수컷이 되었고 난자를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암컷이 되었다.도킨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파커(G.A Parker) 등은 동형 접합의 상태를 근원으로 하여 이로부터 상기와 같은 비대칭성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모든 성세포가 쉽게 융합할 수 있고 또한 거의 같은 크기를 갖고 있던 시대에서도 그 중에는 다른 세포보다 좀더 큰 성세포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큰 동형 배우자는 평균 크기가 다른 배우자에 비해 어떤 점에서 유리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런 배는 출발에서부터 남보다 다량의 먹이 공급올 얻을 수 있어서 유리한 출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큰 배우자를 낳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의 함정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필요 이상으로 큰 동형 배우자가 진화하면 그것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평균 이하의 작은 배우자를 만드는 개체는, 만일 그들의 작은 배우자를 확실히 큰 배우자와 융합시킬 수 있다면 유리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배우자의 운동성을 길러 적극적으로 큰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게 하면 양자의 융합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아서 활발히 운동하는 배우자를 만드는 개체의 유리한 점은 그에 의해 많은 배우자의 생산올 가능케하고, 따라서 새끼의 수를 증가시키는 데 있다. 자연 선택은 대형의 배우자를 융합 상대로 활발하게 찾아다니는 소형의 배우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떨어진 성의 ‘전략’의 진화를 상상할 수 있다. 우선 대량 투자 전략이나 또는 ‘정직한’ 전략이 있었다. 이 전략은 투자량이 적고 착취적인 전략의 진화에 스스로 길을 열게 했다. 일단 두 전략의 분리가 시작되면 이 경향은 일방적으로 추진됐을 것이다. 중간 크기의 배우자를 만드는 전략은 큰 배우자 또는 작은 배우자를 만드는 더 극단적인 전략에 끼여들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상 불리하게 됐다. 착취적인 전략의 배우자는 점점 소형으로되어 민첩한 운동성올 가진 배우자로 진화되어 갔다. 정직한 전략이 만들어 내는 배우자는 착취적인 배우자의 투자량이 점점 축소되어 가는 것을 메우기 위해서 계속 대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착취적인 배우자 쪽은 항상 적극적으로 대형 배우자를 추구함으로써 후자는 결국 운동성을 잃고 말았다...그래서 정직한 배우자는 난자로 되고 착취적인 배우자는 정자로 되었다.11)

 

이 이형배우자에는 동형배우자에는 없는 복잡한 손익계산서가 등장한다.요컨대 수컷이 되는 것이 유리할까 암컷이 되는 것이 유리할까?

동형 배우자가 융합할 경우, 새로운 개체에 기여하는 두 배우자의 유전자가 동수인 것은 물론 두 배우자가 기여하는 음식물 비축량도 같다. 정자와 난자의 경우도 유전자의 기여수는 같다. 그러나 음식물 비축에 대해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한다. 남자와 여자의경우 실제로 정자의 기여는 거의 없다. 정자의 관심은 유전자를 가급적 빨리 난자로 운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수컷이 자식에 대해 투자한 자원량은 임신 시점에서 공평한 분담량, 즉 50%보다 훨씬 적다. 개개의 정자는 아주 작아서 수컷은 매일 막대한 수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따로따로 암컷을 상대할 경우 수컷이 단시간 내에 많은 수의 새끼를 만드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도 개개의 배(胚)가 수정할 때 어미로부터 충분한 먹이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다. 배에 대한 영양분 공급의 필요에 의해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일정한 한도가 있는 반면에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실질적인 제한이 없다. 말하자면 수컷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이 아니다.

암컷을 수정시키는데 그 수 만큼의 수컷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이론적으로는 한 마리의 수컷이 전 암컷을 수정시킬 수 있다.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짝짓기 하기에 충분한 수자의 암컷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소수의 수컷이 전 암컷을 수정시키고 대부분은 총각으로 늙어죽을 위험이 많다.실제 바다코끼리의 경우 88%의 암컷이 겨우 4%의 수컷에 의해 수정되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12)

반면 암컷의 입장에서 볼 때 수컷에 비해 적기는 하지만 자신의 알을 수정시키지 못하고 처녀로 죽을 위험성은 전무하다.결국 전략적 선택의 문제가 되는데 수컷이 된다는 것은 이익은 크지만 위험부담도 그만큼 큰 셈이고 암컷이 된다는 것은 이익은 적지만 그만큼 확실한 것이다.어느 전략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결국 50대 50의 성비로 안정화된다.

수컷이 된다는 것은 양으로 대응하는 것이고 암컷이 된다는 것은 질로 대응하는 것이다.일정한 자원을 수컷은 많은 곳에 조금씩 투자 하는 것이고 암컷은 적은 곳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다.그 결과 암수 개개의 관계에서는 암컷이 대부분을 투자하고 수컷은 극히 일부를 투자하는 셈이 된다.13)이 공동투자에 누가 더 까다롭고 세심해야할지는 분명하다.그것은 암컷이다.실패할 경우 수컷은 잃을 것이 별로 없지만 암컷은 큰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암컷과 수컷의 행태의 차이를 낳는다.새끼를 기르는 것은 부모로서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다.만일 그것을 어느 일방에게 떠 맡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큰 이득을 보게 된다.그러므로 알이 수정된 다음 누가 빨리 줄행랑을 치느냐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대부분 양육은 암컷의 몫이다.수컷은 양육에는 관심이 없다.둘다 새끼를 팽개치고 달아났을 경우 손해를 보는 쪽은 암컷 쪽이다.이미 많은 투자가 행해졌기 때문이다.이것이 암컷의 약점이 된다.이것을 트라이비스는 "참혹한 속박"이라고 불렀다.14) 육아를 암컷이 전적으로 떠 맡는 것을 포유류나 조류의 경우 흔히 볼 수 있다.사실 사람의 경우도 아이를 버리는 쪽은 여자 쪽 보다는 남자 쪽이 더 많다.그래서 남자는 도둑놈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럴 유전적 성향이 다분히 있는 것이 수컷 쪽이라는 점에서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 포유류나 조류의 경우 구조적으로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 될 가능성이 많다.교미후 육상동물의 암컷은 얼마동안 체내에 배를 가지고 있게 된다.수컷은 유기할 것이냐 머물 것이냐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지만 암컷에게는 전혀 선택권이 없다.임신 동안 줄행랑을 쳐 버리면 육아는 고스란히 암컷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그러나 체외수정하는 어류들의 경우 사정이 약간 다르다.수정이 막 끝난 알을 상대에게 맡기고 줄행랑을 치는 것이 암수 모두에게 가능하다.어쩌면 암컷에게 약간 유리할 수 있다.난자를 먼저 방출한 다음 정자가 사정되게 된다.순서가 앞에 있으므로 암컷은 달아날 기회를 갖게 된다.이런 사정으로 해서 어류의 경우 예외로 수컷이 양육을 도맡는 경우가 있다.날새기가 이런 종류에 속한다.15)

그러나 그렇다고 암컷에게 절대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수컷은 초기투자가 적으므로 암컷이 사라진 다음에라도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둘이 함께 버리면 더 많은 손해를 보는 것은 암컷이므로 제깐게 도로 돌아오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라는 두둑한 배짱으로 말이다.육지 보다는 사정이 좋기는 하지만 어류의 암컷도 암컷이라는 그 한계 때문에 트라이버스의 "참혹한 속박"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여러 사정으로 보아 암컷은 수컷의 선택에 신중하고 까다롭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다윈은 이 암컷의 까다로운 선택이 오늘날 자연에서 보는 그 경이롭고 다채로운 생명의 아름다움을 출현시켰다고 본다.이제 우리는 수컷을 고르는 암컷의 솜씨를 볼 차례이다.

 

4. 性선택과 美의 기원

 

공작 수컷의 깃은 그 화려한 장식으로 해서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에 비적응적이다.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다윈은 공작 수컷의 화려한  깃이 공작 암컷을 매료시켰기 때문에 짝짓기를 쉽게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선택되었다는 주장을 했다.그러나 그것이 생존에 불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암컷을 매료시켰는지가 설명되고 있지 않다.다윈은 그것을 암컷의 선천적 미적 감각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왜 그러한 미적 감각이 생겨난 것일까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왜 암컷은 수컷 공작의 긴꼬리를 섹시하다고 보는 것일까?

그림 3 공작의 꼬리는 엄청난 크기의 부채꼴을 이루며 거기에는 아름다운 무지개 빛깔의 눈꼴 무늬가 광택있는 푸른색 목과 복부를 애워싸는 형상으로 촘촘하게 배열되어 있다.공작수컷이 꼬리깃털을 살랑살랑 흔들어서 눈꼴무늬들이 흔들리며 금속성을 발하면 이러한 연기가 주는 인상은 한층더 강화되며 마치 실제 보다 큰 움직임이 있는 양 암시한다.각각의 눈꼴무늬는 이 새 자체의 축소 아이콘과 흡사하며,눈길을 끄는 몸 깃털의 푸른색과 녹색을 반영한다.그것은 마치 공작이 무대에 서 있는 스타이고,꼬리를 한번 떨 때 마다 그 주위에서 번쩍거리는 작은 수컷들이 코라스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 쇼가 성공하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암컷은 감동을 받아 수컷이 올라타도록 허용한다.(스파크스,앞의 책,59면)

 

 

피셔(R.F.Fisher)는 여기에 대해 약간 구체적인 답을 내놓고 있다.암컷이 긴꼬리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대부분의 암컷이 긴꼬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마치 이것은 무슨 선문답처럼 들리지만 논지는 간단하다.내가 컴퓨터의 운영체계로 리눅스가 아니고 윈도우를 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윈도우를 쓰기 때문이다.대부분 윈도우를 쓰기 때문에 윈도우용 소프트웨어가 많고 다른 사람들과 파일의 공유가 가능하다.단지 그것 뿐이며 윈도우가 리눅스 보다 좋은 운영체계이기 때문은 아니다.이것은 임의적인 유행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소위 "록인"(lock-in,고착) 현상이다.공작의 암컷이 긴꼬리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암컷이 긴꼬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긴 꼬리를 좋아하는데 어떤 기능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의 암컷이 긴꼬리를 좋아하는데 내가 짧은 꼬리를 좋아하는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하자.나는 짧은 꼬리의 공작수컷과 짝짓기해서 짧은 꼬리의 아들을 볼 것이다.그러나 나의 아들은 긴꼬리를 좋아하는 이 집단에서 짝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것이다.공작암컷이 긴꼬리를 좋아하는 것은 우연히 처음에 긴꼬리를 좋아하는 취향이 더 우세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온다.긴꼬리의 수컷을 선호하는 것은 우연히 생겨 고착된 유행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이것이 피셔의 취지이다.

이 논지가 맞다면 짧은 꼬리를 좋아하는 어떤 집단도 있어야 될 것 같은데(우연이 작용할 확률은 같으므로) 조류들의 경우 대부분 화려하고 긴 꼬리를 선호한다. 뮐러(A.Muller)는 제비의 바깥쪽 꼬리깃털을 연구했다.뮐러는 제비수컷의 꼬리를 짧게 자르자 짝짓기에 실패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다음 접착제로 깃털의 길이를 과장했을 때 재빨리 짝짓기에 성공한다는 사실도 알아내었다.이것은 태양조,핀치,벌새들의 경우에도 공통된 현상이었다.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17) 이러한 광범위한 일치는 그것을 우연한 취향이라고 보기 보다는 공통적인 어떤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이치에 닿는다.

뮐러는 제비의 깃의 길이와 짝짓기간의 관계에 대한 해명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수컷들의 긴꼬리가 암컷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연구했다.그는 그것이 수컷들이 기생체 감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천적 저항력을 나타내는 지표일 것이라는 해밀턴의 가설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제비를 괴롭히는 것은 진드기이다.그것은 제비둥지에 기생해서 피를 빨아먹고 질병을 옮긴다.이것에 대한 저항력은 제비의 생존에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가 진드기의 수를 조사해본 결과  꼬리깃털이 긴 수컷들에 의해서 태어난 한배의 새끼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수컷에 의해서 태어난 새끼들 보다 진드기의 수가 적었고 심지어는 심하게 오염된 둥지에서 자란 새끼들의 경우도 그 숫자가 현저하게 적었다.그래서 뮐러는 이 수컷의 꼬리길이(그리고 대칭성)가 기생체나 미생물에 의한 감염성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결론지었다.18)

앞서 성은 기생자에 대한 대응전략으로서 진화했다는 해밀턴의 가설을 소개했다.이제 암컷에 의한 수컷의 선별은 기생자에 대항할 가장 효율적인 유전적 자질을 찾기위한 방법이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이제 그림맞추기가 제대로 맞아 들어간다.화려한 색깔과 선명한 무늬는 그것이 기생자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는 징표이다.또 이것은 깃의 색깔이 선명하면 할수록 기생자의 압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왜냐하면 그럴수록 암컷의 선별은 더 까다로와 지고 그 선별을 통과하기 위해서 수컷은 더 선명한 색깔로 자신을 장식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반면 기생자가 없다면 깃의 색깔도 수수해질 것이다.주크(Zuk)는 그 뒤 109종의 새들에 대한 현장조사를 통해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19) 암컷이 길고 화려한 꼬리에 매료되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기생충에 대한 대응전략인 셈이다.자연이 보여주는 그 화려한 색체와 무늬는 기생자와 암컷이 수컷이라는 캔버스에 그려놓은 예술작품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공작의 깃의 그 화려한 색체와 무늬를 설명할 수 없다.암컷에게 자신을 광고하는 방법으로는 너무 비싸게 먹히지 않은가?그 거추장스러운 깃으로 생존에 지장이 될 정도로..그러나 일단 이것이 암컷의 선택의 지표로 자리잡게 되면 더 과장되고 더 증폭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게 된다.문제는 다른 수컷과의 경쟁 때문이다.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수컷 보다 좀더 선명하고 화려한 무늬를 추구하게 되고 이것은 암컷을 좀더 매료시킴으로 그 효과를 본다.그것은 다른 수컷을 자극해서 좀더 선명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하고 이것은 다시 이 수컷을 자극하게 된다.그 가운데 본래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이상으로 과장되게 된다.이것을 "탈주반응"(run-away reaction)이라고 한다.이 단계를 주도하는 것은 앞서 본 피셔의 모델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해밀턴의 가설과 피셔의 가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해밀턴의 모델이 이 경향을 시동시키고 피셔의 모델이 이 경향을 증폭시킴으로써 공작수컷의 그 아름다운 깃이 완성되었다.

 

5. 선택의 기준으로서 "핸디캡"

 

암수의 짝짓기를 공동투자라고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수컷은 판매자이고 암컷은 구매자라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세일즈맨이 물건을 팔 때 그 상품에 대한 정보만을 충실히 제공함으로써 팔지 않는다.그는 거짓말하고,과장하고,어떤 이미지와 연결시켜 구매자를 세뇌시킨다.그는 아이스크림을 섹시한 탈랜트의 이미지와 섞어서 팔고,비행기표를 손을 잡고 다정하게 해변을 거닐고 있는 연인의 이미지와 섞어서 판다.인스탄트 커피를 낭만과 결합시키고,담배를 카우보이의 남성적 이미지와 결부시킨다.소비자는 그 이미지와 실체를 혼동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여자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여자를 유혹할 때 예금통장을 보여주는 것은 서투른 방법이다.여자의 관심은 그것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아마 화를 낼 것이다.노련한 남자라면 그보다는 진주목걸이를 선물할 것이다.이것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도 그 허영도 만족시키는 기막힌 방법이다.(지금은 너무 상투화되어 효과가 없을 것이라 볼지 모르지만 사랑의 표현은 물리는 법이 없다.) 상투적인 방법이 더 있다.건강진단서를 떼어주기 보다는 마라톤의 결승점에 골인하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라.자신이 얼마나 사려깊은 사람인가를 자랑하기 보다는 연인의 생일날 백송이의 장미꽃을 보내라.각 제스쳐에는 은밀한 메시지가 닮겨 있다."나는 부자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현명하다! 나는 멋지다!"20)

이것은 진실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과장이고 또 어쩌면 사기일지 모른다.남자는 과장하고,거짓말도 서슴치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는 세일즈맨이므로) 그러나 여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그 물건을 사야할지를 결정해야하는 구매자이므로) 그래서 여자는 그 가공된 메시지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사실 인간 여성을 포함한 암컷은 그 안목을 진화의 과정속에서 갈고 닦아 왔다.그렇지 못한, 말하자면 "헤픈" 유전자를 가진 암컷은 수컷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착취당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은 과거 매서운 안목의 암컷의 후손이라는 증명이 아닌가?

자, 이제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비싼 외제 자동차에 번드러한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 빚만 잔뜩지고 일전한푼 없는 백수건달일지도 모른다.공작의 그 번드르한 외모도 그렇게 꾸밀수도 있지 않을까?사실은 온몸에 이와 진드기가 잔뜩 꾀어 있지 않을까? 암컷이 겉만 보고 그 수컷 구혼자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남자는 모두 도둑놈이라는데...

대부분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말 할 수 있다.그렇다면 도저히 거짓으로 은폐할 수 없는 징표는 없는 것일까? 여자는 그것을 찾고 그것을 보여주기를 요구해야 한다.그것을 보여줄 수 없으면 물론 탈락이고 그 대신 다른 것을 보여주어도 탈락이다.이 다른 것은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거짓으로 꾸며될 수 있기 때문이다.오직 그것,그것을 보여달라.그런데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모두에 도입한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사실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앙큼한" 암컷일지 모른다.그녀는 온갖 장애물들을 만들어서 남자들을 시험한다.그녀는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갇혀 있는 것은 오히려 열렬히 구혼하고 있는 남자들이다.이 城은 동물의 왕국의 레크(lek,짝짓기 시장)이다.번식철이 되면 영양은 영양대로,공작은 공작대로 이 레크에 모여 자신을 뽐내며 자신을 사 갈  구매자를 기다린다.암컷들이 이곳을 방문하면 저마다 다른 수컷들 보다 돋보이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광란의 구애가 펼쳐진다.공주는 가짜는 그 장애물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그 타오르는 유황불,성을 뒤덮은 가시덩쿨,불뿜는 용은 가짜를 걸러내는 그녀의 체이다.자신의 입술에 키스할 수 있는 자라면 진짜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공작, 극락조,멧닭,꿩의 암컷은 왜 하필 수컷의 깃을 가지고 선택하는가?  왜 다른 것은 안되는가? "깃은 약간 못해도 내 마음씨만 비단인데..여자는 왜 겉모습에만 현혹되는가..난 참 불운한 놈이야.." 어떤 수컷이 이런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그러나 암컷은 단호하다.그것만이 (좋은 유전자를 갖는 2세를 만드는) 사기칠 수 없는 지표이기 때문이다.그것이 진실의 증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수컷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는 핸디캡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생물학자 자하비(A.Zahavi)의 "핸디캡이론"(handicaps theory)이다.마음씨 좋고 사려깊다는 것과 기생충에 대한 저항성 사이에는 직접적 인과가 없다.그러나 화려한 깃털, 선명한 무늬와 기생충에 대한 저항성 사이에는 직접적 인과가 있다.이것이 암컷 공작이 깃털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화려한 깃은 기생충에 대한 저항성을 약화시킨다.21)새의 깃,볏,그리고 육수(닭이나 꿩,공작등에 보여지는 늘어진 살) 등의 선명한 색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스테로이드계 호르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선명한 색을 유지하기 위해서 혈액내에 테스토스테론의 레벨을 높혀야 하는데 이것이 높으면 면역이 억제된다.22)또 다른 스테로이드계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도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결과 면역력을 떨어뜨린다.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것의 증가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병에 걸리게 된다.그러므로 화려한 깃을 유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데 기생충에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일단 감염되면 이 깃,볏,그리고 육수 등은 색이 탈색된다.그 이유는 기생충이 어떤 경로로 이 과정에 관계하기 때문이다.붉은 색은 카르테노이드라는 색소로 인한 것인데 이것은 몸안에서 합성되지 않고 과일,갑각류,기타 식물에서 추출해야 한다.추출된 이 카르테노이드를 필요로하는 조직으로 운반해서 그것을 붉게 물들이게 된다.그런데 기생충에 감염되면 이것이 차단되어 색깔이 바래진다.그와함께 몸도 쇠약해질 것이고 죽음에 이르기도 할 것이다.

이 두가지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가? 선명한 색과 무늬를 가진다는 것은 기생충감염의 위험이 높아 조만간 탈색되기 쉽다.그러므로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수수한 모습으로 있는게 낫다.암컷은 이 수컷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그 판단은 정확하다.

그런데 화려한 색감을 유지하면서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건강한 깃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기생충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가졌다는 부인할 수 없는 징표이다.그는 깃에 투자하는 바람에 기생충과 전력투구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을 제어하고 있다는 것을 그 밝은 색의 깃과 볏이 보여준다.암컷은 이 수컷에 성적 매력을 느낀다면 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자칫 하면 목숨을 내놓아야할지 모를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수컷이 감히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핸디캡을 다음과 같이 비유해 볼수 있지 않을까 한다.100m달리기를 하는데 100kg짜리 돌덩어리를 등에 얹고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등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체력이 어느 누구 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누구든 납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돌이 그의 핸디캡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또 다른 비유를 들면 바둑의 네점 접은 접바둑에서 이긴 형상이다.이 네점이 그의 핸디캡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그의 바둑이 상당히 강함을 입증해준다.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고 이것으로해서 암컷은 수컷에 대한 까다로운 선별안을 끊임없이 진화시켜 왔고 이 선택이 생명에 있어서 경이로운 아름다움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공작이 펼쳐보이는 그 아름다운 자연의 화폭,숲속의 레크에서 펼치는 마나킨새의 현란한 율동의 가무,그 모든 곳에는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다.숲속의 잠자는 공주는 그냥 거기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보이지 않는 끈으로 모든 것을 조정하면서 이 현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연출해 왔다.

성의 기원은 기생자에 대한 대응이었고 아름다움의 기원도 기생자에 대한 암컷의 대응이었다고 본다면 이 현란한 무대의 또 하나 이름없는 주역은 그 기생자들이기도 하다.넓은 의미에서 볼 때 암컷도 수컷도,숙주도 기생자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이 모두가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현란한 군무(群舞),생명의 춤,시바의 춤이다.

그림 4 시바의 춤

 

1)M.Ridley,The Red Queen-Sex an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Penguin Books,1995),p.57

2)G.윌리암스,『진화의 미스테리』,이명희 옮김(두산동아,1997),119면

3)C.Zimmer,Parasite Rex,(The Free Press,2000),p.163

4)Ridley,앞의 책,59면

5)같은책,77-78면

6)Zimmer,앞의 책,163-167면

7)J.Sparks,『동물의 사생활』(Battle of the Sexs),김동광 옮김(까치,1995),281-282면

8)Zimmer,앞의 책,281-282면

9)물론 동형배우자의 개체가 자신의 정자로 자신의 알을 수정시키는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그렇게 되면 다양한 형질의 확보라는 성의 본래의 목적과 배치되기 때문이다.성은 그 형질을 섞어 버린다.그래서 모처럼 좋은 형질을 얻었다더라도 다음 세대에 사라져 버린다.이것을 막기 위해서 재배식물의 경우 자가수분이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그것은 무성생식과 다를 바가 없어 해충의 좋은 타깃이 된다.농약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0)R.E.Michod,『유전자,사랑 그리고 진화』,한국유전학회 옮김(전파과학사,1998),84면

11)R.Dawkins,『이기적 유전자』,홍영남 옮김(을유문화사,1993),216-217면

12)같은 책,217면

13)인간배아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정자와 난자가 요즈음 매매되고 있다.그런데 그 가격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CNN의 보도에 따르면 한 의과대학은 정자제공자에게는 50달라를 지불한 반면 난자 제공자에게는 이보다 50배나 많은 2500달라를 지불했다고 한다.(국제신문,2001.7월 17일자)

14)Dawkins,앞의 책,235면

15)같은 책,235-236

16)Ridley,앞의 책,139면

17)같은 책,136면

18)스파크스,앞의 책,75면

19)Ridley,앞의 책,151면

20)같은 책,155면

21)같은 책,155-156면

22)남자는 수탉의 볏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무성한 구렛나루와 넓은 어깨를 가지는데 이것 역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만들어내는 것이다.이것이 남성다움의 징표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인간도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셈이다.이것이 또 면역력을 떨어뜨림으로 남성다움 만큼 질병에 걸리기도 쉽다.남자의 수명이 여자 보다 짧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