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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장

친일 청산 없이 미래없다(2005.3)

05.03.15 경영대학원 특강

 

친일 청산 없이 미래없다.

 

 

1. 더불어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거래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주고 상대가 가진 것을 받는 것이지요. 이러한 거래가 지속되려면 일방이 이득을 보고 일방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둘 다가 이득을 보는 상태가 말하자면 상생입니다. 그러나 이득을 독점하고 싶은 유혹이 너무 달콤해서 상생은 쉽게 깨어집니다. 그래서 일방이 이득을 취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정의"의 문제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근한 예를 한가지 봅시다.

 곰치와 같은 바다의 대형 물고기들은 온갖 기생충들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해저의 산호초의 보초에는 이 기생충들을 청소해주는 새우들(경우에 따라 노래기와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이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들이 있습니다. 이를 청소 새우라고 하는데 이 새우들은 큰 물고기의 몸에 붙어 있는 기생동물들을 잡아먹고 삽니다. 특히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렸을 때는 물고기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산호초에서 이 청소새우들을 없애 버리면 감염된 물고기들이 빠르게 늘어나 물고기들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그만큼 이 청소새우들은 물고기들의 위생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청소새우들은 식량을 얻고 큰 물고기는 몸을 청소합니다. 서로 이익입니다. ☜ 비디오 자료 1

 그러나 청소새우는 이 곰치가 평소 즐겨먹는 먹이와 비교할 때 크기나 모양이 다르지 않습니다. 청소새우는 고객의 입속을 들락거리고 아가미 속을 헤엄쳐 가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합니다. 그러나 고객은 청소새우를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어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청소장을 찾아온 고객 물고기들은 왜 청소새우를 먹어버리지 않을까요? 사실 서비스를 받고 나서 먹어버리면 금상첨화일 것 같은데...

 그건 은혜를 배신으로 응답하는 나쁜 짓이다. 도움을 받고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해? 그건 나쁜 짓이잖아...그렇게 하면 안되지...우리 모두 이런 행위에 대해서 도덕적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곰치가 무슨 도덕감을 갖고 있을리 만무하죠. 그런데 왜 그 놈은 배신을 때리지 않고 마치 도덕적인 것 같은 행동을 하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청소새우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져 다시는 청소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겠지요. 그러면 기생충에 감염되어 중병에 덜컥 걸릴지도 모릅니다. 이 예상되는  응징으로해서 배신을 때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물론 이 보다는 훨씬 복잡하겠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응징이 도덕 행위를 강요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입니다. 반대로 응징이 주어지지 않으면 배반은 쉽게 일어납니다. 바다의 산호초에도 가끔 지나가는 뜨내기 물고기들이 서비스를 받으러 들리기도 합니다. 청소새우가 겁도 없이 이 놈에게 서비스를 하다가 먹혀 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뜨내기는 이 청소장에 다시 들릴 일도 없습니다. 따라서 배반을 때리더라도 응징할 수 없지요. 그래서 뜨내기는 쉽게 배반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서비스도 받고 배도 채우자...인간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관광지 같은데서 물건을 사면 속기 쉽지요.  관광객은 뜨내기고 다시 만날 일이 없지요. 한탕 속여 먹이면 되는 겁니다. 역전이나 버스 터미널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이 없지요...왜 그럴까요? 승객들은 다시 볼 일이 없는 뜨내기들이기 때문이지요. 반면 단골식당은 어떻습니까? 오늘 한탕하고 장사 그만둘 것 아니질 않습니까? 단골 손님에게는 음식도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맛이 좋은 것입니다. 관광지의 상점이나 역이나 공항 터미널의 식당들은 응징이 안되고 단골집은 응징이 됩니다. 이것이 전자를 배신하도록 유혹하고 후자를 신의를 지키도록 다잡습니다.

 도덕 행위의 본질은 그 응징 가능성에 있죠. 이 응징이 사실 정의의 원초적 의미입니다. 그러나 응징이 바로 정의는 아닙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부시 대통령이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 집단에 대해 "Infinite Justice"를 선포했습니다. 우리 언론에서 이것을 "무한 정의"로 번역했는데 이것 사실 번역이 잘못된 것입니다.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무제한 응징"으로 해야 맞습니다. 사실 부시는 이 전략에 따라 일부 테러 집단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무제한 폭격을 가했지요..

 그러나 "Justice"는 문맥에 따라 "응징"으로 번역해 좋은 경우도 있고 "정의"로 번역해야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부시의 경우에는 "응징"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왜 이 부시의 전략을 "정의"로 번역할 수 없는가? 응징과 정의는 어떤 면에서 같고 어떤 면에서 다른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응징일까요, 정의일까요? 우리는 이것을 잔인한 복수 즉 단호한 응징을 나타내는 모토로 많이들 인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함무라비에 의해서 제정된 최초의 법의 원리라고 배웠습니다. 법의 원리는 응징이 아니라 정의입니다. 법사학자들은 이것을 최초의 정의의 원리라고 봅니다.

 이 말의 뉘앙스를 잘 음미해 보세요. 이것은 "이"를 당했을 때는 "이" 만큼 응징하고 "눈"을 당했을 때는 "눈" 만큼 응징하라는 것으로 응징의 제한의 의미도 있습니다. "응징의 제한"...이것은 응징을 하지 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배반에 대해서 응징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응징을 반드시 당한 것만큼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죽인 원수에 대해서 삼족을 멸해서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무제한적 응징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이 법칙은 약간 의아하게 들릴지 몰라도 상대에 대해서 관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잔인한 복수의 주장이 아닙니다. 물론 관용은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한 것만큼 돌려주고 그 이상은 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박하지만 이 "탈리오의 법칙" 속에 정의의 기본정신이 잘 들어 있습니다. 당하면 반드시 갚되..이것은 응징의 요소입니다...당한 것만큼만 갚아라...이것은 관용의 요소입니다. 이 두 요소가 합쳐져서 배반한자와 배반당한 자가 화해하는 상생의 장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복수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정의에는 응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증오"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응징을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랑"의 요소도 있습니다. 무제한적인 보복을 선포한 부시의 전략을 "무한정의"의 구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거기에는 어제의 원수들이 내일의 동료로써 화합하게 하는 관용의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이런 맥락에서 지금 현안이 되고 있는 친일 진상 규명과 그 청산의 문제를 봅시다. 정의는 응징과 관용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의의 그 응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응징"으로 봅니다. 반면 청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의의 그 관용적 측면에 맞추어 "정의=관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두 진영 모두 상생을 외칩니다. 응징이 상생인가, 관용이 상생인가? 응징만으로는, 관용만으로는 상생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전자를 너무 강조하면 보복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고 후자를 너무 강조하면 집단 내에 발호하는 배반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둘 다 중요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수순이 있습니다. 응징이 먼저고 관용과 용서는 다음입니다. 응징이 없는 관용과 용서는 배반의 유혹만을 부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수순에 있는가? 일제 36년이 충분히 규명되고 그에 걸맞은 응징이 주어졌다면 그것을 다시 문제삼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수구 정당과 언론들이 줄창 외쳐대듯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보복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입니다. 프랑스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일부 정당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과거 독일 나찌에의 부역을 문제삼고 재이슈화하는 것을 언론과 학계가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배반에 대해 납득할만한 응징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더 문제삼는 것은 국론의 분열과 국력의 낭비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일 나찌의 4년 점령을 받은 프랑스는 99만여명의 나찌 협력자를 색출하여 이중 760여명에게 사형, 2,700명은 종신 강제노동형, 유기 강제노동형은 1만여명, 징역형 2만 2,800여명, 9만 5,000명에게는 부역죄형을 선고하고 7만여명에게는 공민권을 박탈했습니다. 이것이 "똘레랑스"의 나라, "관용"의 나라라고 하는 프랑스가 제일 먼저 한 일입니다.

 조중동과 같은 수구언론들은 "과거사에 대해 그 캐캐묵은 이야기를 재론해서 국론의 분열을 부채질하지 말고 용서하고 상생의 길을 가자"고 합니다.1) 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그 맥락이 중요합니다. 프랑스라면 이 말이 맞습니다. 응징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친일을 문제삼아 사형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실형을 받은 자도 불과 7명뿐이었습니다. 이들마저도 재심청구 등으로 감형되거나 형집행 정지로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전혀 과거를 응징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응징이 전제되지 않은 용서는 진정한 상생의 화합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 이득에만 급급한 모리배들만 양산시켜 궁극적으로는 한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 분열된 양상도 궁극적으로는 과거를 효과적으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응징도 없었고 따라서 진정으로 마음에 우러나오는 참회와 용서도 없었고 그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화합보다는 불화, 통합보다는 분열이라는 상극의 기운만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경우 더 죄질이 나쁜 것은 이 관용을 외쳐 부르는 자들이 일제하의 가해자였거나 그것을 수혜받은 그 후손들이라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용서"와 "관용"을 외치고 있는 웃지못할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4. 친일 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고 현재의 문제이며 우리나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위한 기본전제라는 것은 다음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정말 대조적인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 하면 일제하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고 근대 민족사학의 정립자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채호 선생이 무국적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는 대한민국 국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방되면서 우리 국적은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으로 승계되었습니다. 단재는 일본 국적을 취하느니 아예 국적을 파버렸다고 합니다. 무국적자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해방되고 나서입니다. 다시 일본 국적은 한국 국적으로 승계됩니다. 그러나 단재는 일본국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승계할 한국국적도 없습니다. 이 때 살아 계셨더라면 직접 소명함으로서 국적을 회복할 수 있었겠지만 이 때는 이미 돌아가신 다음이었습니다.(1936년 여순감옥에서 순국) 이 경우 특별한 조치가 아니고는 국적을 찾는 것이 법리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국적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국적을 자동적으로 회복시켜주는 것이 순리이고 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이완용이나 송병준과 같은 친일 매국노들은 합방에 협조함으로써 엄청난 개인적 이득을 취했습니다. 해방과 함께 "친일 매국노들의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당연히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지난 2월 열린 우리당 최용규의원에 의해 의원입법으로 제출되었다고 하니 지켜 보아야 겠습니다.)

 몇 년전 단재 선생의 후손들이 해방 전 이미 돌아가셔 중국에 묻혀있던 선생의 시신을  한국으로 수습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신의 주인공이 단재라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것은 물론 대한민국 국적자로 인정되지 않아 선산에도 묻힐 수 없었습니다. 반면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들의 후손들은 합법적 방식으로 자신의 조상들이 백성들로부터 수탈해 갔던 토지들을 소송을 통해서 되찾고 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우리가 해방이후 친일 청산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들입니다. 특별법을 통해 매국노들의 재산은 당연히 환수되었어야 했고2)(그랬다면 승소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었겠지요) 애국지사들은 그 국적과 신분이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덮으면서 벌써 50년을 훌쩍 넘겨 버렸습니다. ☜비디오 자료2

 친일부역한 자는 그것으로 해서 영화를 누리고 그 자손들도 좋은 교육을 받아 그 영화를 되물림하고 독립운동가들은 그것으로 해서 해방된 조국에서 보상받기는커녕 불이익이 생기고 그 자손들은 그것으로 해서 교육받지 못해 가난을 되물림하는 사회, 이것이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현주소입니다.(당시 친일하면 3대가 떵떵거리며 살고 항일하면 3대가 거지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러하고도 대한민국이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이런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습니까?

 민족의 화합과 상생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확실한 친일규명과 청산을 통해서 응징과 보상을 하고 그것을 통해 용서와 관용으로 매듭지어야 합니다. 업그레드 대한민국, 친일 청산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친일 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일 우리 자손들이 안고 가야할 미래의 문제입니다.

(주)

1) 1947년 미군정하의 과도입법의원에서 <민족반역자, 부일 협력자, 간상배 조사위원회법>을 제정하려하자 이승만과 한민당이 중심이 된 우파계열은 친일파 처단을 지연 반대 변호하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 다섯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이 주장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일청산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수구정당과 조중동과 같은 수구언론들에 의해서 되풀이 주장되고 있어 흥미롭다.
 첫째 시기상조론으로 주권을 찾은 후에 처단하자는 것으로 정부의 안정이 친일파 처단보다 시급하다는 주장이었다.
 둘째는 식민지 환경론으로 3천만 국민이 모두 친일파 했다는 것으로 이 논리에 따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친일 한 입장에서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셋째 친일 인재 유용론으로 동아일보(47. 4. 30 사설) 는 수십만으로 추정된 능력과 지식의 소유자가 죄인으로 낙인을 받고 추방된다면 …이 땅은 진공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넷째, 법적 논리적 불가론으로 우리 민족을 미군정에게 처단토록 할 수 없고, 정부 수립 후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섯째 민족분열론으로 친일 처단을 강경히 주장하는 것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사회적 혼란을 가져온다는 주장이었다.     

2) 대표적 친일인사인 송병준 이완용 두 사람이 일제때 경기도 일대에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 토지가 95만평으로, 시가 수조원대의 규모에 달한다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다.  이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연구용역을 의뢰받아 지난해(2004) 10월 중순부터 두 달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토지 보유 현황 등을 조사, 7일 발간한'친일파의 축재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재산환수에 대한 법률적 타당성 연구'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은 보고서를 통해 송병준의 경우 현재 그 후손이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한 경기 부평의 13만3천평의 토지와는 별도로, 경기 고양시 등에 79만8천923평을 일제시대에 사정받았고, 이완용은 경기 광주시와 여주군 등에 14만5천98평을소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목록을 공개했다.  95만평의 토지 목록은 토지전문브로커들이 재산반환소송에 대비해 작성한 송병준.이완용 재산 추정목록을 일제시대 '토지사정부'에 대조해 확인한 것이라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또 현재 행정자치부가 보유한 토지대장에서 확인된 일본인 명의와 귀속.청산법인 명의의 토지는 전국적으로 10만2천483건에 3천743만평으로 여의도 면적(255만평)의 14.7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민족문제연구소가 자체 분류한 '매국형 친일파' 424명 가운데 창씨명이 확인된 130여명이 보유한 토지는 122필지, 6천여평에 달한다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보고서를 발표한 법사위 최용규(崔龍圭.열린우리당) 의원은 '현재 국가자료가정리된 곳이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에 지나지 않아 향후 전면적인 조사과정을 거친다면 이완용과 송병준 명의의 일제시대 부동산 규모는 수백만명 이상에 달할 것으로예상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1990년대 초반 이완용 후손의 재산반환 소송 승소 이후 친일파 후손의 재산반환 소송 건수가 현저히 증가해 현재 31건에 달하고, 진행중인 것만 6건'이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환수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과 국가재산관리 및 관련 소송의 전면적인 현황 점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일파 후손의 재산반환소송은 1990년 이전에는 1건에 그쳤으나, 1990년대에 23건, 2000년 이후 7건이 접수됐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