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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장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과 자연의 암호(2001.3)

<강좌 "불멸의 물음들" 보충자료>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과 자연의 암호

 

 

1.우주의 암호

 

1990년대 SETI(외계 지성 탐사계획)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던 엘리 애로웨이 박사는 지구로부터 26광년 떨어진 직녀성 근처의 별에서 발신되어온 한 이상한 전파를 수신하게 된다.우주공간을 통해서 수없는 전파들이 지구에 수신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은 의미있는 메시지가 아니고 우주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소음들이다.그런데 이번에 수신된 것은 그렇지 않았다.그 신호가 소수열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소수(prime number)는 자신과 1외에 어떤 수로도 나뉘어지지 않는 수로 2,3,5,7,11,13...의 열이다.무작위적인 소음이 소수만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이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고 우주로부터의 어떤 메시지임에 틀림없다.애로웨이 박사는 이 기이한 수열의 암호들을 고심 끝에 분석한 결과 과연 그것이 직녀성으로 인도해줄 우주선의 설계도에 관한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낸다.그 설계도에 따라 우주선이 건조되고 인간과 외계 지성체간의 최초의 조우(contact)가 이루어진다.

       우주선 앞에서                        외계의 신호를 수신하고 있는 장면.

 

이것이 『코스모스』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칼 사강의 원작소설의 줄거리인데 뒤에 동명의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가 열연하였다.내가 볼 때는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가운데 그 배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가 아니었는가 한다.

앨러웨이 박사의 운은 정말 예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소수의 열이 전송된다면 아마추어라도 그것이 단순한 소음이 아닌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을 것이다.(물론 그 경우 누군가가 장난치고 있을 가능성도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할 것이다.)

이것은 SF에나 등장할 이야기 소재인가? 사실 자연을 탐구한다는 것은 신(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의 암호를 수신하고 해독하는 과정이 아닐까?그런 면에서 자연의 탐구자들은 앨러웨이 박사와 본질적으로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자연은 소음으로 가득차 있다.그러나 우리가 주의깊게 그 소음을 가려내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메시지를 가려낸다면 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 내밀한 암호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것이 소음이고 어떤 것이 메시지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사실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 것을 견강부회로 해석해서 메시지로 착각할 수도 있으며 거꾸로 의미있는 메시지를 소음으로 지나쳐 버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우리는 제멋대로인 것 즉 "무작위성"이 무엇인지를 정의내릴 수 있어야 한다.그것이 바로 아무 의미없는 소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수열을 보자.1)

 

l 0 l 0 l 0 1 0 l 0 l 0 1 0 l 0 l 0 l 0 l 0 l 0 l 0 l 0 l 0 l 0 l 0 l 0 l 0 l 0 1 0 l 0 1 0 l 0 l 0

 

이것은 분명히 무작위가 아니며 반복적이다. 나타난 유형을 표시하는 유용한 방법은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0과 l의 이진법은 정보를 암호화하는데 이용된다. 이것이 대부분의 컴퓨터가 정보를 암호화하는 방법이다.) 위 수열의 총정보 함량을“l0을 25번 인쇄”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만일 한 페이지 전체를 이진법으로 채우려고 하더라도 요약된 문장은 거의 더 길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반복적인 서열의 정보를 간단한 식으로 압축할 수 있다. 수학에서는 이것을 알고리듬이라고 한다. 컴퓨터 알고리듬은 어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단순한 처방전, 또는 기계적 절차에 불과하다.설명하고 있는 예에서 간단한 알고리듬 “l0을 25번 인쇄”는 위의 서열을 만든다.우리가 기다란 문자열을 몇 마디의 메시지로 압축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서열이 규칙적인 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비교적 짧은 식이나 알고리듬으로 나타낼수 있는 더 복잡한 유형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반대로 1과 0의 문자열이 유형이 전혀 없다면, 즉 그것이 무작위라면그것을 나타내는 요약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간단한 계산과정의 결과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알고리듬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IBM에서 일하는 컴퓨터 과학자인 채이틴(Gregory Chaitin)은 정보와 복잡성에 관한 강력하고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서 그것을 생물학적 계들을 비롯한 많은물리적 예들에 적용하였다.그는 무작위 서열을 알고리듬으로 압축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무작위 서열에 대한 가장 간단한 표현은 서열 그 자체가 된다.이 “알고리듬”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적인 무작위의 정의를이용하면 무작위 서열은 정보 함량을 간단한 식으로 요약할 수 없기 때문에 정보가 풍부한 서열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반대로 위의 수열같은 무작위가 아닌 서열은“10을 25번 인쇄”라는 말로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거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음은 무작위처럼 보이는 1과 0의 유형을 보여준다.

 

l 1 0 0 l 0 0 1 0 0 0 0 l 1 1 l 1 l 0 l 0 l 0 l 0 l 0 0 0 l 0 0 0 l 0 ...

 

이것은 무작위 수열일까? 우리는 어떻게 그 서열에 미묘한 유형이 숨어있지 않다고 알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이진법으로 표시된 파이(π)의 처음 50개 숫자이다. 그것은 간단한 식에 기초한 컴퓨터 프로그램 몇줄에 의하여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것을 모른다면 아무 유형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서열은 무작위에 관한 일상적인 통계학적 시험을 모두 만족시킨다. 그러므로 그 정의에 의하면 그것은 무작위 수열이지만 사실은 무작위 수열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무작위인지 아닌지 다시말해서 소음인지 메시지인지 구분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소음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상 메시지인데 이것을 이용한 것이 암호문이다.다음 수열을 보자.2)

 

20304815424786......

 

이것은 아무 의미없는 수의 나열로 보인다.외계에서 이런 신호가 수신되었다면 그저 우주의 잡음으로 생각하고 던져 버릴 것인가? 위의 각수에 1을 더해 보면 그 수열은 다음과 같다.

 

3141592653535897...

 

바로 π값이다.이 수가 무작위로 산출될 확률은 거의 없으므로 그 신호가 우주공간에서 날라온 것이 확실하다면 외계 지성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될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그 분은 글을 한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그런데 그 할머니 이야기인즉 자기도 글자를 안다는 것이다.검은 것이 글자고 흰 것이 종이라는 것이다.그 당시는 헛소리 쯤으로 들었는데 요즈음 내가 스캐너를 사용해서 텍스트를 스캔해 보니까 그 이야기가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멍청한 스캐너는 책속의 글자와 내가 읽다가 죽 그어놓은 연필 자국을 구분하지 못한다.지우개로 이 낙서들을 깨끗이 지우고 나서야 겨우 이 기계의 혼돈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할머니가 아무리 까막눈이라도 이 정도의 교란(소음)에 글자와 글자 아닌 것 간의 혼돈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림과 글자를 혼돈하지도 않을 것이다.그런 면에서 영 글자를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에게 제일 부여하기 어려운 것이 바깥에 대한 지각능력이다.무작위적인 것이 무엇이고 소음이 무엇이며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정의내려줄 수 있다면 기계에게 지각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그 정의는 불가능하다.반면 생명체는 선천적으로 메시지가 무엇이며 소음이 무엇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물론 생명체는 이 무작위를 정의내리고 그 위에서 메시지를 해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론적이기 보다 실천적이다.자신의 생활세계에 맞추어 메시지와 소음을 구분한다.그래서 생활세계가 달라지면 메시지와 소음의 구분도 달라진다.그런 면에서 의미는 각 생명체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런 면에서 기계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욕구(넓은 의미에서 자아)를 부여하면 그 스스로 의미를 진화시키지 않을까 생각한다.문제가 있다면 그 경우 그 기계는 자신의 의미세계를 창조하고 스캐너는 더 이상 글자를 스캔하는데 흥미를 가지지 않게 될 것이다.그것이 자신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틈만 있으면 인간이 시키는 일은 안하고 짝짓기에만 열중할 것이다!

인간은 우선 이 지상의 한 동물로서 살아 남기 위한 실천적 방식에서 지각을 진화시켜 왔지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방식으로 진화해오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하겠다.그래서 생활세계에서 메시지와 소음을 가르는 이 익숙한 기능도 우리의 삶과 일단 괴리되어있는 이론의 문제로 들어가면 스캐너가 저지른 것과 같은 우를 자주 범하게 된다.

암호를 푼다는 것은 소음에서 메시지를 가려내는 작업이다.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메시지를 가려내는 알고리듬적 방법은 없다.그러나 우리가 철학과 과학의 역사를 보면 그 효과적인 방침 내지 지침은 있었던 것 같다.자연의 암호를 푸는 방법은 수적 통일성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지침이다. 과학은 이 강력한 직관에 의해 인도되어 왔는 바 우리는 이것을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지침의 정당성의 논리적 근거가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 근거가 무엇이든간에 지금까지 아주 유효하게 작동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 두가지 사례로 이 직관에 의해서 소음속에서 메시지를 찾아낸 케플러와 발머의 경우를 살펴 보고자 한다.

 

2.케플러의 행성의 법칙

 

케플러의 행성운동의 3법칙 가운데 세 번째 법칙인 이른바 "조화의 법칙"은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이다.이것은 행성이 궤도를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주기(T)와 태양으로부터 행성 까지의 거리 즉 평균궤도의 반경(D)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성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행성들의 공전주기와 태양으로부터의 평균거리사이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를 케플러와 함께 찾아 보기로 하자.3)이를 위해 먼저 태양계에 속해 있는 각 행성들에 대하여 그 주기 T와 태양으로 부터의 평균거리 D를 다음과 같이 표를 만든다.이 표들에서 거리의 기본단위로 천문단위(AU)를 사용하는데 1AU는 지구에서 태양 까지의 평균거리로 정의한다.케플러는 티코 브라헤로 부터의 관측자료를 물려 받아서 다음과 같은 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주기(T)

0.24

0.615

1.00

1.88

11.68

29.457

거리(D)

0.387

0.723

1.00

1.524

5.203

9.539

 

이 표로 보아서 주기와 거리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어 보인다.케플러는 이들을 제곱한 값 즉 T2과 D2의 상관관계를 검토해 보았다.그 결과는 아래표와 같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주기(T2)

0.058

0.38

1.00

3.54

140

868

거리(D2)

0.147

0.528

1.00

2.323

27.071

90.792

 

그러나 D와 T2,또는  D2과T 그리고 D2과 T2사이에도 아무런 수적 연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러나 케플러는 이러한 수치들이 무의미한 잡음들이 아니고 신의 암호라는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에 빠진 사람이었다.그는 그 암호를 해독하기위해 끈질기게 그 수치적 관계들을 조사해 나갔다.다시 그는 D3과 T3의 표를 만들어 보았다.그러나 그것 역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그러다 그는 D2과 T3을 비교해 보았다.그는 마침내 신의 소매자락을 붙잡았다는 것을 확신했다.그 둘은 강력한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어서 도저히 우연적인 잡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주기(T2)

0.058

0.38

1.00

3.54

140

868

거리(D3)

0.058

0.38

1.00

3.54

140

868

 

이것이 바로 천체의 조화를 나타내는 3법칙이며 지구를 포함하여 태양계에 속하는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주기의 제곱은 태양으로 부터의 그 행성까지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이것을 수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k는 상수이다.이 공식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만일 태양으로부터 4AU의 거리에서 새로운 행성 a가 발견되었다고 하자.그러면 이 행성의 공전주기는 얼마일까?이 공식은 새로이 발견된 행성a의 Da3/Ta2은 지구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지구의 D3/T2은 1,Da=4이므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여기서 그 행성의 공전주기 Ta는 8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반대로 행성의 공전주기가 주어진 경우 그것의 거리를 구할 수 있다.주기가 125년이면 거리 D는 25AU가 된다.

얼핏보면 서로 상관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주기와 궤도반경 간에 어떻게 이러한 인상적인 수치적 일치를 보여주는 것일까? 이 뒤에 숨은 신의 암호는 무엇일까? 이 암호풀이는 뉴턴에게 주어졌다.뉴턴은 케플러의 운동의 3법칙의 주의깊은 분석을 통해서 그 수치적 일치는 거리의 제곱에 역비례하는 힘이 주어질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이것을 검토해 보자.

케플러의 유명한 행성운동의 3법칙은 다음과 같다.

 

(1)각 행성의 궤도는 타원형이며 그 촛점의 하나에 태양이 위치하고 있다.

(2)각 시간동안에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분은 같은 넓이를 그린다.

(3)임의의 2개의 행성에 있어서 태양주위를 회전하는 시간의 제곱은 그들의 태양으로 부터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케플러의 제1법칙                        케플러의 제2법칙

제2법칙은 "넓이속도 일정의 법칙"이라 불리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정식화 된다.

 

  rv = 일정(r;중심으로부터의 거리,v;행성의 속도)

 

이것은 행성이 태양에 가까울 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제 3법칙은 앞서 보았듯이 주기와 거리사이에 엄밀한 수학적 비례관계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뉴턴이 밝혔듯이 이 셋 법칙간에는 내적 연관성이 있다. (2)는 구심력의 존재를 드러내어 주며,(3)은 그 구심력이 거리의 제곱에 역비례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으며,이 경우 (1)은 그 운동궤도는 타원(넓은 의미에서 원추곡선)이 됨을 함축한다.

여기서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에 도달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어렵지 않다.행성에 작용하는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만유인력법칙의 골간을 법칙(3)이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T2 r3........①

 T  ∝ ....②

 

②식을 ①식에 대입 T를 소거하면

 

v2

.......③

 

그런데 구심가속도는 다음과 같다.

 

f

......④

 

여기서 v2 rf,이것을 ③식에 대입하면

 

f

.......⑤

 

그런데 케플러는 왜 만유인력의 법칙의 발견의 한발 앞에서 멈추고 만것일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힘은 운동체의 속도 v에 비례한다.이것을 케플러의 2법칙에 대입시켜 보면 힘은 거리의 자승의 역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거리의 역수에 비례하게 된다.

 

f ∝ v...........①

rv = k...........②

 

여기서 v =

,이것을 ①식에 대입하면

 

f ∝

f ∝
......③

 

여기서 그는 행성을 운동시키는 힘이 중심(태양)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아니고 태양에서 나오는 역선(力線)이 마치 자전거 바퀴살 처럼 회전하면서 행성을 운동시킨다고 보았다.

이것은 케플러가 행성의 운동을 정식화함으로써 근대 천체역학의 기초를 놓았지만 그가 힘을 운동체의 속도에 비례한다고 본 것은 그의 동시대인인 갈릴레오에 의해서 정식화되었던 새로운 운동개념(관성운동)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주문에 사로 잡혀 있었다.

갈릴레오가 지상의 자유낙하운동에 적용시켰던 그 힘과 케플러가 행성의 운동에 적용시켰던 그 힘은 적용영역이 달랐을 뿐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다시말해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과정과 달이 지구궤도를 도는 과정은 동일한 원인(힘)에 의해서 결과된 다른 사건들일 뿐이다.그러나 그들이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그 본질적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이다.그랬었다고 한다면 지상의 역학과 천체역학의 통합은 좀더 빨리 달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본질적 구조의 동일성은 쉽사리 발견되어 지는 것은 아닐 것이며,이것간의 동일성이 우리에게 용이하게 이해되는 것은 데카르트의 정초작업과 뉴턴의 종합화라는 과정을 필요로 했다.

티코 브라헤가 남겨놓은 행성의 주기와 거리에 관한 데이터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을지도 모르는 수치들,그 속에서 케플러는 신의 암호를 해독하는 단서를 발견했고 그 단서에 기반해서 뉴턴은 우주의 구성원리로서 중력을 발견한 것이다.그러나 이 케플러와 뉴턴의 성취도 우주의 비밀은 수치적 상관관계속에 숨어있다는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에 의해서 인도되지 않았더라면 그 어떤 것도 해독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그러한 신념이 없었더라면 그것은 무미건조한 데이터들의 집적 이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이러한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은 다시 현대 원자물리학을 태동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그 주인공은 이제 발머이다.

 

3.발머의 수소스펙트럼

 

티코 브라헤가 정밀한 관측 데이터를 남김으로써 케플러의 직관을 자극했듯이 발머(Johan Jakob Balmer)의 피타고라스-플라톤적 직관을 자극한 것은 옴스트롱이다.옴스트롱은 7000분의 1의 오차의 정밀성으로서 수소 스펙트럼의 파장을 측정한 값을 내어 놓았다.

수소의 선스펙트럼

 

수소스펙트럼은 알파선,베타선,감마선,그리고 델타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옴스트롱이 측정한 수치는 아래와 같다.4)(단위는 옴스트롱이고 이것은 10-10m이다.그러므로 Hα의  파장의 길이를 m로 환산하면 6.65210×10-7 m가 된다.)

 

Hα = 6562.10

Hβ = 4860.74

Hγ = 4340.10

Hδ = 4101.20

 

6562.10, 4860.74. 4340.10, 4101.20 이라는 이 4개의 수치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케플러가 행성의 주기와 거리간의 데이터를 예사로 보지 않고 그 속에 숨어있는 암호를 찾을려고 시도했듯이 발머도 일견 소음으로 보이는 이 넷 스펙트럼선의 파장들간에는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는 우선 Hα을 Hβ으로 나누었을 때 소수점 4째 자리에 00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측정에는 으례 오차가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쩌면 0020779..는 그 측정의 오차에서 오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1.35라는 수치일지 모른다.이것을 분수로 고쳐쓰면 135/100 또는 27/20이 된다.파장들간의 비례를 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여기서 우리는 다시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의 영향을 볼 수 있는데 발머는 이 파장들 사이에 무엇인가 정수비례의 관계가 작용해야 한다는 직관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그래야 우리는 그가 그 비례를 찾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한 비젼에 기초하지 않았다면 그 수치적 관계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정수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은 넷 파장에 최대공약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을 기본수라고 부르자.그리고 Hα/ Hβ 가 분수의 꼴로 표현된다면 Hα,Hα도 분수(정수를 포함한 유리수의 꼴)의 꼴을 취해야 한다. 이 둘을 고려하면 수소의 파장 H를  다음의 꼴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수소원자에 기본적인 수)×(분수)

 

여기에 임의의 기호를 부여해서 아래와 같이 표시하자.

 

   

 

Hα/Hβ=27/20을 위 식의 꼴로 변형하면 다음과 같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다른 비율들을 정리한다.

 

  Hα/Hγ= n1d3/d1n3 = 6562/4340 = 1.5119826.. = 1512/1000 = 189/125

  Hα/Hδ =n1d4/d1n4 = 6562/4101 = 1.600..= 160/180 = 72/45

 

여기서 Hα/Hδ을 왜 더 간단한 8/5로 놓지 않고 72/45로 놓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수적 관계에 대한 엄밀한 증명의 단계가 아니고 수적 단계를 찾아가는 추측의 단계이다.여러가지 시행착오를 통해서 가장 잘 맞는 수를 선택한다.그것이 72/45 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식을 얻을 수 있다.

 

1. n1d2 = 27

2. d1n2 = 20

3. n1d3 = 189

4. d1n3 = 125

5. n1d4 = 72

6. d1n4 = 45

 

n1d2 = 27 에서 n1 = 9, d2 = 3 으로 놓는다.(물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컨대 n1 = 3, d2 = 9 로 놓을 수도 있다.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그치면서 이 식을 만족하는 수치 가운데 가장 잘 맞는 수치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 n1=9를 3식에 대입하면 d3 =21, 5식에 대입하면 d4=8을 얻을 수 있다. 2,4,6식에 d1이 공통으로 들어 있다.이것은 d1이 20,125,45의 최대공약수임을 의미한다.그 공약수를 구하면 d1=5가 된다.그러면 이것을 2,4,6식에 넣어 n2=4, n3=25 ,n4=9를 얻을 수 있다.이로소 우리는 모든 미지수에 수치를 할당할 수 있었다.그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n1=9 ,n2=4 ,n3=25 ,n4=9  d1=5 , d2=3 ,d3 =21 ,d4=8

 

이제 우리는 수소원자 스펙트럼의 기본수 b를 구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수소의 4개의 스펙트럼선을 다음의 꼴로 정리할 수 있다.

 

 Hα = 3645.6×(9/5)

 Hβ = 3645.6×(4/3)

 Hγ = 3645.6×(25/21)

 Hδ = 3645.6×(9/8)

 

여기서 우리는 괄호안의 수치의 어떤 형태적 공통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분자는 제곱수이고 분모는 제곱수에서 4를 뺀 것이다.이것은 다음과 같은 일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이 수소스펙트럼의 파장(λ)에 대한 발머의 최종식이다.

 

  

 

n에 3,4,5,6을 대입함으로써 우리는 Hα,Hβ,Hγ.Hδ의 파장값을 차례로 얻을 수 있다.

뒤에 리드베르크(Johannes Robert Rydberg)는 위 식을 파장의 역수로 나타내어 다음과 같이 나타내었는데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표현방식이다.

 

  

       R=1.097×10-7m

       n=3,4,5,...

 

그리고 뒤에 이것을 이 식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처럼 더 일반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m=1,2,3,....

       n=m+1,m+2,m+3,....

 

뒤에 발머계열은 수소스펙트럼이 내는 파장의 일부임이 밝혀졌다.그래서 발머계열은 m=2인 특수한 경우이다.아래는 수소원자의 에너지 준위에 따른 스펙트럼 계열을 보여주고 있다.

수소원자의 에너지 준위와 스펙트럼 계열

 

이 식이 정수의 꼴로 표현되는 것은 원자구조의 깊은 심층(불연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더 깊은 분석으로 들어가야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발머는 여기에 대한 어떤 모델을 제시하지는 못했다.케플러에서 보여지는 그 수치적 정합성의 비밀을 해독한 것이 뉴턴의 모델이었듯이 이 발머의 식의 그 비밀을 해독한 것은 닐스 보어였다.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이 케플러에서 고전물리학의 길을 열어 놓았듯이 이제 발머에서 원자물리학의 길을 열어 놓았다.

 

 1913년 닐스 보어(Niels Bohr)는 원자스펙트럼의 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 2가지 가정을 세웠다.

 

1.원자내의 전자궤도는 전자의 각운동량이 플랑크 상수 h를 2π로 나눈 값의 정수배가 되는 것에 한한다.회전운동에서 각 운동량은 mvr이므로 이것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mvr을 통상 L로 표시한다)

 

  

 

이 식을 아래와 같이 변형해 보면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2πmvr = nh

 

각운동량을 한 주기(2π)에 걸쳐 총합한 것이 플랑크상수(h=6.626×10-34J·S)의 정수배라는 것을 의미한다.

2.원자내의 전자가 한 정상상태에서 다른 정상상태로 전이할 때 두 정상상태의 에너지차가 hν(플랑크상수×진동수)가 되는 진동수의 전자기파를 방출하거나 흡수한다.

 

 

 

에너지가 투입되면(a) 전자는 상위궤도로 뛰어 오른다(b). 곧 불안전해져서 흡수한 에너지를 방출하고(c) 원궤도로 돌아간다(d).원궤도로 돌아갈 때 스펙트럼의 선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발머가 관측한 그 무늬이다.이 모델은 왜 스펙트럼이 연속적이 아니고 불연속적인 띠의 형태를 가지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래 그림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방출과 흡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이 스펙트럼선은 자연의 암호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이것은 발머가 직관했듯이 물질의 구조를 드러내는 암호였다.이 외양상의 띠의 무늬에서 물질의 구조에 대한 이해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그 암호는 깊이 깊이 감추어져 있다.그러나 과학은 피타고라스-플라톤적 비젼이 그 암호해독에 비교적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렇다면 갈릴레오가 말했듯이 자연은 과연 신이 쓴 수학책일까?그것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져 있는 것일까?

 

 (주)

 

1) 폴 데이비스,『생명의 기원』,고문주 옮김(북힐스),119-120

2) 하인즈 파이젤스,『우주의 암호』,이호연 옮김(범양사),112-113

3) 버나드 코헨,『새물리학의 태동』,163-165

4) A.K.듀두니『수학이 세상을 지배한다』,박범수 옮김(끌리오),191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