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몸의 철학

생태계로서의 몸(2000.3)

 

생태계로서의 몸

 

항생제의 출현

 

 아마도 금세기 들어 가장 위대한 의학적 진보는 균류의 독소가 인간에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1910년 파울 에르리히(paul Ehrlich)가 비소화합물을 사용한 매독치료법을 개발한 후 줄곧 비소화합물을 사용해 왔다.그러나 1929년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배양접시안의 세균이 페니실린균류의 주변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본격적인 항생물질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아주 많은 균류와 세균들이 만들어내는 물질들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안전하게 결핵,폐염,그리고 그 밖의 많은 다른 감염들을 유발하는 세균들을 근절시킬 수 있었다.지난 몇십년 동안 이들 항생물질 덕분에 세균성질병을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황금기를 누려왔다.공중보건기구와 항생물질의 만남은 감염성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급격히 떨어뜨려 1969년 미국의 공중위생국 장관이 "이제 감염성의 시대는 끝났다."고 거리낌없이 선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황금기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오래 가진 못할듯하다.위험한 세균 특히 결핵과 임질을 유발하는 세균들이 십년 혹은 이십년 전에 비해 항생물질로 다스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세균은 그들의 진화적 역사를 통해 균류와 우리의 천연무기에 대한 방어를 진화시켜온 것과 마찬가지로 항생물질에 대한 방어를 진화시켜왔다.

 

정말 그런지 모른다.상처 감염의 가장 흔한 원인인 포도상구균을 생각해 보자.1941년 여기에 속하는 모든 세균들이 페니실린에 의해 퇴치되었다.그러나 1944년쯤에는 몇몇 균주가 페니실린을 붕괴시키는 효소를 이미 진화시켰다.오늘날에는 포도상구균의 균주의 95%가 페니실린에 대해 어느 정도 저항성을 보인다.1960년대에는 대부분의 임질이 페니실린으로 쉽게 치유되었다.그리고 그것에 저항성을 지닌 균주는 암피실린(ampicillin)으로 해결되었다.지금은 임질균주의 75%가 암피실린을 무력화시키는 효소를 만들어낸다.

 

 박테리아는 어떻게 항생물질의 말살을 견디어내는 방법을 알아내었을까?박테리아내에 존재하면서 이둘 숙주에게 저항성 메카니즘을 부여하는 유전자 및 전달가능한 물질들이 바로 그 예측하지 못했던 갑옷이라는 해답이 얻어졌다.이것이 플라스미드(plasmid)이다.

 

박테리아 플라스미드

 

 박테리아도 다른 모든 생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생존하기 위해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또한 적응하여야 한다.그러나 하나뿐인 염색체 DNA내의 유전자에 의해 지령되는 유전형질만으로는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여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기에 불충분한 점이 있다.그래서 박테리아는 진화과정을 거쳐 염색체 자체로부터 분리된 부수적인 DNA조각에 이런 유전정보를 추가하여 획득유지하고 있다.플라스미드는 본체DNA와는 독자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유전물질로 존재하는데 그 안에 3개에서 300개 까지의 다양한 유전자들을 추가로 지니고 있고,이들 유전정보들은 박테리아 자신의 염색체 내 유전목록에 없는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도록 지령함으로써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한 세포내에 하나에서부터 수천개의 플라스미드 복제품이 존재하고 있으며 여러개의 다양한 플라스미드들이 같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장균  E.Coli 의 성교환 장면

 

 플라스미드내의 유전정보는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이들은 사람의 장관을 통과하는 음식물 찌꺼기의 계속된 흐름을 견디도록 장관세포에 숙주 박테리아를 부착시키기도 하고 극한온도 등 급작스러운 환경변화에 적응하여 생존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플라스미드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는 박테리아숙주가 항생물질에 의해 사멸되는 것을 막는 저항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미드도 박테리아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처럼 박테리아내에서 증식한다.그들은 박테리아 본체의 백만분의 1정도의 작은 크기이다.이 플라스미드는 바이러스와는 달리 바깥의 보호용 단백질 외피가 없기 때문에 박테리아 밖에서는 전혀 생존하거나 증식할 수 없고 따라서 세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즉 이들은 박테리아 세포내에 일종의 기생형태로 존재한다.바로 이들의 존재는 숙주 박테리아와의 상호협력관계의 진화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플라스미드는 충실한 심복처럼 숙주에 의존하면서 숙주의 생존에 필요한 형질을 제공함으로써 숙주의 생존을 도와준다.플라스미드와 숙주박테리아는 공생관계에 있다.

 

이 플라스미드는 고정된 형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유전자를 잃거나 획득하면서 계속 변화한다.한 박테리아내에 존재하는 두 플라스미드가 합쳐져 큰 플라스미드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종의 박테리아내의 플라스미드들간의 유전자의 교환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플라스미드를 컴퓨터의 플로피 디스켓과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각 박테리아는 자신의 고유한 유전자풀 즉 본체디스켓 말하자면 C 드라이버를 갖고 있다.이것은 각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중히 보관될 필요가 있다.이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환되지 않는다.그러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능의 획득이 필요할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임시로 쓰고 버려야할 정보를 C 드라이버에 보관하는 것은 자칫 본체의 아이덴티티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따로 별도의 디스켓을 만들어두고 여기에 임시로 사용할 것을 저장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리할 것이다.이것은 컴퓨터의 플로피디스켓 말하자면 A 드라이버에 비교할 수 있다.이것이 플라스미드이다.이것은 언제나 쓰고,지울 수 있으며 심지어는 교환가능하다.사실 플라스미드는 박테리아의 종을 넘어서 범종간에 광범위하게 교환,유포되고 있다.이것은 다시 컴퓨터에 비교하자면 누구나 필요하면 공짜로 다운받을 수 있는 프리웨어의 소프트웨어이다.이 비유를 좀더 진행시켜 항생제 내성의 급격하고 광범한 확산의 메카니즘을 알아보자.

 

새로운 항생제의 출현은 박테리아에게는 치명적이다.그래서 초기에는 항생제의 효력이 아주 탁월하다.그러나 대량사멸이 있은 다음 어떤 박테리아의 플라스미드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이 효력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었다고 하자.이 소프트웨어는 범박테리아의 전체 네트워크를 통해 곧 광범위하게 유포될 것이다.그러면 모든 박테리아가 이 플라스미드의 특정 저항성기제를 다운받아 저항성을 갖게 된다.그때 쯤이면 이 새 항생제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이제 인간은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서 여기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이것은 항생제의 초기의 탁월한 효율이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하게 떨어지는지를 설명해 준다.

 

장내균총

 

이 항생제 내성문제로 지금 인류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우리들의 몸내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이다.이것은 몸을 생태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는 해결불가능한 문제이다.

 

 우리의 몸은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의 10배에 해당하는 박테리아나 기타 원생동물들(이것을 장내균총이라고 말한다)이 서식하고 있는 거대한 생태계이다.말하자면 인간은 이 모두를 실어나르고 있는 거대한 숙주이다.이 균총들은 우리의 몸을 영양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다.이 관점에 서면 과연 누가 내 몸의 주인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장내균총들은 일방적으로 몸을 착취하는 기생형에 지나지 않는가?그렇지 않다.오랜 진화의 과정속에서 이루어진 타협이 있다.그래서 서로 일정한 기여를 하는 상리공생의 관계에 있다.앞서 이야기 했듯이 소의 위속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는 셀룰로스를 분해시켜줌으로써 소와 같은 초식동물들이 순수히 초식으로만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이 공생관계의 형성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이 관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셀룰로스를 개발한 식물들은 자신을 먹이로 하는 적이 없어 큰 번성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그것은 당시 동물들의 가용가능한 자원이 아니었다.(가위개미들은 이 셀룰로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독자적으로 발견했다.그것은 곰팡이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들은 수집해놓은 잎위에 곰팡이포자를 심어 셀룰로스를 분해하게 하고 그 곰팡이를 먹이로 한다)그러나 동물과 박테리아간의 공생관계가 만들어지자 이 관계를 확립한 동물은 진화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경쟁자가 없는 거대한 자원을 확보한 것이다.여기서 초식성동물들이 진화했고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진화적 실험을 행함으로써 오늘날의 초식동물들을 만들어내었다.영양가가 적은 풀을 소화시켜내기 위해서는 거대한 말하자면 발효통이 필요하다.그래서 이 기법에 발맞추어 나타난 진화의 방향이 몸의 거대화 현상이다.초식동물의 진화의 역사에는 몸의 거대화로 향한 뚜렷한 추세가 있다.진화학 교과서에서 흔히 제시되는 말의 진화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이것은 다시 이것을 먹이로 하는 거대한 포식동물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고양이과 동물의 진화가 그것이다.

 

 이것은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사실 생명의 진화는 이러한 공생관계들로 점철되어 있다.최초의 진핵생물의 진화는 숙주세포와 이속으로 침투해 들어온 기생생물인 미토콘드리아와의 연합으로 시작되었다.이 미토콘드리아는 처음에는 숙주세포에게 치명적이었겠지만 얼마후 공생관계가 확립되었다.그 결과 미토콘드리아는 숙주세포에게 필요한 에너지(ATP)를 만들어내는 발전소가 되었고 그 대가로 숙주세포내에 영구히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얻게 되었다.숙주세포는 여기서 얻은 에너지발전의 효율성을 이용해 단세포단계에서 다세포단계로 진화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내었다.물론 크기의 변화와 더불어 단세포단계에서는 이용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신천지를 찾아내게 되었고 이 풍부한 자원을 이용한 다양한 실험들이 행해지면서 5억년전 캄브리아기의 생명의 대폭발이 가능했다.

 

우리의 몸은 15억년간의 생명의 전역사를 압축하고 있으며 장구한 세월동안 일어났던 생명체들의 합종과 연횡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대한 생태계이다.우리 몸속의 장내균총들에게서 우리의 몸은 바로 자신들이 일구어온 삶의 터전이자 자신들의 우주이다.이 장내균총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그 전반적 기능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아는바가 별로 없다.그러나 확실한 것은 일방적 착취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으로 볼 때 무엇인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가운데 한 역할이 장내균총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으로 해서 우리몸에 대해서 행하는 역할이 있다.우리몸의 외부 기생자들에 대한 방어는 우리의 면역계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그러나 충분히 인식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방어에는 장내균총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의학에서는 이것을 몸의 1차 방어계라고 한다.그것은 선점권이다.즉 몸속의 박테리아는 자신의 거주영역을 지키려 할 것이고 이것이 외래의 신참자의 침입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몸을 영양으로 이용할려고 하는 박테리아들인데 기득권을 갖고 있는 토박이든 신참자든 우리몸으로서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그러나 그렇지 않다.토박이 균총들은 우리몸과 장구한 기간의 진화를 통해서 숙주의 일방적인 공격,기생자의 일방적인 착취는 서로간에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말하자면 몸안의 균총들은 자신의 숙주에 대해서 상당한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숙주의 몰락은 곧 자신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신참자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일단 몸을 장악하면 가능한한 모든 수법을 동원해서 숙주를 착취할려고 할 것이다.거기서 번식한 다음 다른 숙주를 찾아 이동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우리의 병원성 질병들은 대부분 이 외래 침입자들이 일으키는 전쟁이다.이들의 침입을 막고 있는 1차방어계가 바로 우리 몸속의 박테리아들이다.이것만으로도 그것들은 숙주에게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겠다.

 

항생제와 몸안 생태계의 붕괴

 

 항생제가 몸안으로 투입되면 외래 침입자만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정확한 타켓을 향해 작동하는 우리의 면역계와는 달리 무차별 투하되는 폭격과 같다.외래 침입자도 죽이지만 몸안의 토박이 박테리아도 죽이게 된다.

 

항생물질들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박테리아세포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많은 경우 박테리아가 이미 갖고 있는 수송계를 이용해서 그렇게 한다.따라서 박테리아는 이러한 성장저해물질들에 수송계를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페니실린에 대한 최초의 저항성 메카니즘은 이 약물의 수송을 방해하는 플라스미드의 출현이었다.또 다른 방식으로는 항생물질이 들어오는대로 세포밖으로 배출시키는 것이다.이것은 테트라사이클린 저항성 박테리아가 개발한 방식이다.이것은 아주 효율적이어서 치사량의 100배나 되는 농도에서도 박테리아는 살아남을 수 있다.또 다른 방식은 항생물질의 독성을 화학적 변형을 통해서 중화시키는 것이다.이 방법은 스트렙토마이신과 같은 아미노배당체(amminoglycoside)와 같은 항생물질에 대한 대응방법으로 진화한 것이다.그외에 공격표적을 속인다든지 자신을 변형시켜 그 항생물질이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저항방식이 알려지고 있다.이러한 진화가 항생제의 개발이후 최근 몇십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

 

항생제에 대한 새로운 저항성 메카니즘은 플라스미드의 교환을 통해서 박테리아 전체로 신속하게 퍼져나가기 때문에 새로운 약물도 조만간 그 효력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게다가 이 교환이 계속되다가 보면 모든 병원성 박테리아들이 기존의 모든 항생제에 대한 저항 메카니즘을 플라스미드상에 내장하고 있는 사태가 생겨난다.이것이 요사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복합약물 저항성이다.항생제 가운데 어떤 것은 않듣고 어떤 것은 듣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일체의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는 것이다.

 조만간  우리의 상태는 항생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원점으로의 회귀가 아니다.우리가 야기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이 있다.항생제를 통해서 우리는 본의아니게 독성의 병원성 박테리아의 진화를 도와온 꼴이 되었다.다시말해서 항생제에 감수성이 있는-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양성의-박테리아들은 항생제에 의해서 전멸하고 저항성의  독성균들만이 항생제의 공격에서 살아남게 된다.만일 어쨌든 살아남을 수 만 있게 된다면 이 독성균들은 더 번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왜냐하면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는 양성균들이 우리의 체내에서 전멸한 결과 무주공산의 신천지가 바로 자신들의 독차지가 되기 때문이다.이 양성균들은 우리와 오랫동안 진화를 같이해온 장내균총들이 대부분이다.우리는 더욱 독성의 항생제를 개발할 것이고 이것은 더욱 독성의 박테리아를 선택시켜 주는 결과가 된다.결과적으로 우리스스로가 우리자신의 1차 방어계를 괴멸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아직 더 큰 문제가 남아있고 사실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그것은 우리의 몸과 장내균총간의 장구한 시간에 걸친 타협이 무너져버렸다는 것이다.항생제의 위기에 직면한 장내균총들은 침입박테리아들로부터 저항성 플라스미드를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독성을 획득해 가고 있다.우리에게 지금까지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왔던 장내의 대장균들이 독성의 병원균으로 변한 사례들이 보고 되고 있다.

 오늘날의 의료의 위기는 몸을 생태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과학기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실증적 사례이다.

 우리몸을 하나의 생태계로서 볼 때 그것은 다층적 실재들로 구성되어 서로 증폭시키기도 하고 또 서로 길항적으로 억제시키기도 하는 다양한 존재자들의 우주이다.이 우주에 순수한 "나"는 존재하지도 않고 또 존재할 수도 없다.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속에서 존재하고 의미를 가질 뿐이다.불교에서는 이것을 "모든 존재자의 緣起性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동양의 음양오행설의 "相生相剋의 원리"이기도 하다.a와 b가 상극관계에 있을 때 a가 살기위해서 b를 괴멸시키면 a의 번성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그것은 또 b와 상극관계에 있으면서 b를 견제하고 있던 c의 번성을 가져와 그것이 결국 a의 괴멸로 이끌수가 있다.다음 그림은 이것을 도식화한 것이다.(그림)

 몸을 생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서양의학의 몸의 기계적 사고방식은 질병은 근절시킬 대상으로 받아들여 왔다.감히 암의 정복 등 '정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암은 분명히 치명적 질병이지만 그것 또한 자연의 일부이다.생물체가 복잡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진화의 음영이다.그것은 근절되지 않으며 근절될 수도 없다.그것 역시 우리 존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병원성 세균들도 역시 자연의 異常現象이 아니고 자연의 엄연한 일부이다.그것은 다스림의 대상일 뿐 근절의 대상이 아니다.그것을 근절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결국 자신의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오늘날의 항생제로 인한 의료위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조용현,『몸의 과학,몸의 철학』('몸의 철학'강좌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