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몸의 철학

한의학에서의 몸/도올 김용옥

 

한의학에서의 몸
도올 김용옥,『동의수세보원』강론 9회

 

몸에 대한 탐구는 철학사 보다 의학사의 중심과제다.
 
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존재"(Being)의 문제입니다.존재라는 말은 우리말로 순수하게 이야기 하면 "있기"가 됩니다.여기에 존재한다(있는다)는 것을 인간은 문제시 삼아 왔습니다.있는다는 것 자체의 의미를 부여할려고 인간들은 노력을 했죠.중세기 사람들은 있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있게 해주셔서 있는다고 생각했고,근세의 서양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있는다는 것이었습니다.그 생각이라는 것은 이성(Reason)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은 근세철학의 대표적인 책으로 이성의 문제가 들어가 있어요.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한 근세철학이 칸트에 와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면 근세철학은 이성을 중심으로 인류의 지혜가 모아진 사고의 체계라고 볼 수 있죠.많은 사상가들이 나는 이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것을 기술해 놓은 수백년의 역사를 서구의 사상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기존의 어떤 철학자와도 분류되기 어려운 내 철학이 분명히 있어요.그 기준을 몸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생각했습니다.칸트가 철학의 출발을 이성의 문제로부터 시작했다면 나는 나의 철학의 출발을 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관심은 "몸"입니다.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면 "나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나는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나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성이라는 것은 몸에 비하면 범위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좁습니다.이성이라는 것은 유형적인 것이 아니죠.우리가 간을 떼어서 보듯이 보이는 것이 아니잖아요.뇌를 잘라 놔도 안보이죠.이성이라는 것은 무형적인 일종의 능력(faculty)이에요.몸이라는 개념속에는 이성과 같이 추상적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형적일 수도 있고(만져질 수도 있고),추상적일 수도 있어요.우리가 몸에 대해서 어떠한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서 몸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나의 철학이 말하는 몸이라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라(존재 그자체가 아니라)우리가 몸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몸에 대한 탐구는 대체적으로 철학사에서 보다 의학사의 중심과제가 되어온 것은 사실이죠.

해부학은 몸의 형태학이다.

解剖學이란 말의 anatomy를 해석할 적에 tomy는 자른다는 의미의 剖에 해당하고 ana는 가른다는 의미의 解에 해당됩니다.이 해부학이란 말은 근세적인 의미죠.소위 칼로 잘라서 인체를 본 결과의 학문입니다.해부학이란 것은 근세적 서양의 감각주의의 신체관을 나타내는 말이에요.우리가 말하는 해부학이라는 것도 서양의 의학사에서 본다면 서양사람들이 몸에 대해서 그려온 이미지의 극히 최신판이죠.서양에도 몸에 대한 그림들이 이집트시대로부터 희랍시대,중세기를 거쳐서 꾸준히 있어 왔어요.요새 서양의 해부학이라는 것은 최근 100년 동안 집약적으로 발전된 인체에 대한 이해방식이에요.해부학에 대한 대표적 교과서인 『그레이 아나토미』와 같은 책에서 말해주고 있는 인체에 대한 세세한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경이롭죠.그런데 서양의 해부학을 공부하다 보면 해부학이 인체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이미지가 "The image"인줄 알게 되요."하나 밖에 없는 그 모습이다.그것이 몸의 진실이다."이렇게 단정짓게 되죠.예를 들면 신장은 해부학적으로 보면 2개가 완전히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콩팥이 아니라 콩콩이 되든지 팥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이것을 콩팥이라고 한 사람들은 이 2개에 대한 이미지가 달랐다는 이야기이죠.
 오늘날 우리의 해부학적 지식이라는 것은 인체에 대한 그림입니다.정확성과 실체성있는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황제내경을 분석해 보거나 옛사람들의 인체에 대한 생각을 분석해 보면 99%가 거짓말이에요.어떤 서양의사가 말하기를 동양의학,서양의학이라는 말은 근대의학과 전근대의학으로 바꾸어야 한다.동양의학이 얘기하는 정도는 서양의 중세기의학에도 있었다.서양에도 사혈,부황 등이 있었다.그 말의 의미는 동양의학이 그리는 인체의 이미지는 전근대적인데 반해서 서양의학이 그리는 이미지는 근대적이다,또는 서양의학은 과학적인데 대해 동양의학은 비과학적(형이상학적)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단지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인체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그 이미지들은 과연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만을 묻고자 합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의학적 지식을 사실로 아는데 의학에도 똑같은 문제가 개재됩니다.물론 의학적 지식은 사실로 확인되는 것이 동양보다 서양에 더 많을지 몰라요.모든 사실에 대해서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냐 하는 해석의 문제가 인체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임상병리 같은 것은 서양의학에서 중시하는 fact 들이지만 그  fact들은  fact 자체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GOT,GPT 같은 수치도 마찬가지에요.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같은 수치를 놓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일치하는 부분은 있겠지만 해석은 무궁무진한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인체해부학이 제공하고 있는 모든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는 해부학 철학이 없습니다.나는 해부학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해부라는 말은 방법에 관한 얘기로 사실은 몸의 형태학(Morphology of Mom)입니다.형태라는 것은 즉 이미지죠.이것을 러프하게 본 것을 해부학이라고 하고 아주 디테일하게 본 것을 조직학이라 합니다.해부학은 "The Image"가 아니고 서양사람들이 이렇게 보았다는 이미지이죠.

이제마는 인체를 대우주로 생각했다.

내가 오늘 말씀드리는 Body is Imaging이라는 말에서 Body(몸)의 특징은 생명입니다.우리가 돌멩이도 Body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몸은 주로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한 유기체를 말합니다.우리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우주라고 합니다.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몸에 대한 이미지는 키가 몇 cm이며 몸무게가 몇 kg이다 입니다.대개 60kg이면 60l 정도 되겠죠.그러니까 60l의 용적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덩어리가 우주에 놓여 있는데 이것을 많은 철학자들이 소우주(microcosmos) 라고 합니다.그래서 인간은 소우주다라는 말은 인체는 우주를 축소시켜 놓은 것이다 라는 의미가 있어요.몸에 대한 physical한 이미지는 60l의 공간을 점유한다는 생각 때문에 소우주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그리고 이 소우주는 60l의 space이지만 대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집약(concetration) 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이것은 틀렸어요.이제마는 이 60l짜리 인체와 이 우주를 다 포함해서 몸이라고 한 것입니다.이제마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우주의 집약태로서 작은 소우주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인체 그 자체를 대우주로 생각했어요.
 이런 우주에는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가 있습니다.은하계는 배열방식이 비행접시 모양으로 되어 있거든요.옆에서 보면 별들이 가득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은하수입니다.이 중에 하나가 태양계입니다.우리가 하늘을 쳐다볼 때 많이 보이는 것은 은하계의 옆이고 위를 보면 별들이 드문드문 보이겠죠.그러니까 은하수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Galaxies입니다.이 우주에는 그런 은하계가 수없이 있어요.안드로메다 성좌는 우리의 은하계에 가장 가깝게 있는 은하계입니다.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제마에게 있어서 우주라는 것은 다리에서 무릎까지의 거리가 안드로메다에서 우리의 태양계까지의 거리보다 멀겠죠.우리는 이제마를 이해하기 위해서 생물학적 사고를 천체물리학적 사고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마는 天璣와 人事로 나누고 있는데 이것은 인체에서 하늘을 보고 인간을 볼려고 하는 거예요.인체 자체 내에서 하늘적인 측면과 인간의 측면을 동시에 몸에서 볼려고 하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신체의 앞쪽에 이목비구(耳目鼻口)가 있죠.신체 뒤쪽에는 두견요둔(頭肩腰臀)이 있죠. 頭속에는 耳目鼻口가 다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그런데 이제마의 개념에는 두와 이목비구는 전혀 다른 거예요.이런 것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소우주의 상식을 가지고 이제마를 읽어서는 안된다는 문제예요.두는 이제마 나름대로 인식한 갤럭시라고 한다면 이목비구는 또 다른 갤럭시들이죠.그것이 상부의 locality에서 겹치고 있다고 해서 같은 우주는 아니예요.그리고 두속에 이목비구가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체관은 그들의 우주관과 일치합니다.

인류에게서 인체의 역사는 인간이 이 우주를 인식한 체계의 역사와 일치해요.이집트인들이 생각한 body는 이집트인들이 생각한 우주의 모습과 일치해요.예를 들면 나일강에 홍수와 가뭄이 있다면 인체에 홍수가 들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가뭄이 들 때는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는 인체의 이해방식이 나일강을 중심으로 생각한 그들의 우주관과 일치합니다.물론 희랍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중세기 의학은 사탄과 천사가 싸우고 있다면 그 모습 그대로 그리고 있습니다.해부학이 나오게 된 배경은 그 해부학을 가능하게 한 근세 경험주의가 있음으로 해서 가능해진 그림일 뿐입니다.그러니까 우리는 이 경험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식적 인식구조에서 말하고 있는 해부학이 더 진실한 것처럼 보일 뿐이예요.인체에 대한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그들이 우주에 대해서 그려온 cosmology한 우주와 항상 일치합니다.여러분들이 말하고 있는 해부학적 지식이라는 것은 서양사람들이 근세에 신봉하고 있는 cosmology한 우주와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파이프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펌프이다.

피를 血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blood라고 합니다.피 같은 것이야 말로 거기에 동서양이 있겠습니까? 옛날에 전쟁을 하다 보면 피가 콸콸 나왔을 것입니다.그리고 현관이 있고 그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다 알 것 아니예요.헤모글로빈이라는 근세언어가 나오기 전에는 피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이 같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혈관에 대한 지식은 동양에는 없고 서양에만 있다.동양에는 경락만 있고 피는 없었다.이것은 넌센스 아니겠어요.피라는 그자체의 substance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이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피에 대한 것은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피나 임상병리학 교수가 말하는 피나 똑같은 피일 수 밖에 없어요.그러나 피가 아니라 피에 대한 이미지가 다른 것 같아요.
 황제내경을 쓴 사람이라 할지라도 혈관속에 피가 흐른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내경에 혈관이라는 말은 없어도 血脈이라는 표현은 있습니다.서양사람들은 피의 흐름을 管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생각한 것 같아요.이 관이라는 이미지는 pipe예요.파이프의 특징은 close되어 있다는 거예요.몸에는 피가 다니는 파이프들이 수없이 있는데 말초로 갈수록 가늘어 집니다.그리고 파이프속을 계속 흘러야 하니까 펌프가 필요합니다.파이프 이미지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펌프예요.이 펌프가 곧 심장이죠.심장이라는 것은 피를 보내는 모터죠.그 모터 역할을 해주는 것이 심장의 근육들입니다.
 그런데 심장 모터 하나가 모든 파이프의 돌아다니는 피의 순환력을 결정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 유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예를 들면 신장의 보우만스낭에서 피가 들어왔다가 나갑니다.여기에 피를 쏟아 놓는데 꼭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왈칵 쏟아놓으면 사람들이 붙어서 분리하듯이 세뇨관이 쓸만한 것을 다시 빼냅니다.보우만스낭의 실타레의 가늘기는 피분자 하나가 지나갈 정도로 가는 관으로 이것을 죽 펴보면 엄청나게 길어져요.이런 곳을 지나다니는 모든 피의  순환력이 심장모터 하나로 해결된다는 것을 나는 믿기 어려워요.

도랑의 이미지와 파이프의 이미지가 다른 점

피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는 피자체가 아니라 피의 순환방식에 대한 이미지인데 동양의 경우 그 이미지가 파이프가 아닌 것 같아요.뭐 같으냐 하면 관개시스템으로 일종의 도랑 같은거예요.도랑의 이미지와 파이프의 이미지가 다른 점은 파이프는 동그랗고 꽉 막혀있죠.그런데 도랑은 위쪽이 트였죠.어떤 위치에너지를 가진 저수지에서 도랑을 통해서 물이 논으로 나갑니다.대개 파이프는 내벽의 조건이 비교적 균일하죠.그런데 도랑은 복잡해요.도랑이는 것은 엉성하여 땅의 조건이 모래밭이면 물이 빠져 버리고 진흙으로 된 도랑을 지나가면 물이 덜 빠지겠죠. 그리고 마른곳을 지나가면 물이 급속히 빠지고 아주 습한곳에서는 물이 오히려 들어오겠죠.그러니까 도랑의 이미지는 도랑이 다니는 조건과 복합적이예요.
 도랑이라는 이미지에서 가장 결정적인 함수는 도랑위에 하늘이 있다는 거예요.그러나 파이프에서는 하늘이 있든 없든 상관없죠.파이프는 닫힌 시스템이기에 파이프안을 흐르는 액체를 움직이게 하는 모터 파워가 가장 중요해요.그러나 도랑의 이미지에서는 도랑을 지배하고 있는 하늘의 조건이 중요합니다.아주 dry한 하늘일 수도 있고 아주 humid하고 구름이 낀 하늘일 수도 있어요.예를 들면 하늘의 조건이 가을 날씨처럼 맑을 때에는 물이 싹 흘러가겠지만 하늘이 humid하면 흐름이 둔화되고,아주 dry한 곳에서는 도랑의 물이 증발하겠지만 젖어 있을 때에는 물이 증가할 것입니다.

생명의 출발은 차별이다.

생명의 최소단위는 세포(cell)입니다.이 셀의 중요한 의미를 나는 세포막(membrane)에 둡니다.많은 사람들이 세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핵으로 보겠지만 나는 세포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세포막이라는 것의 존재 의미를 불교식으로 말하면 差別이에요.즉 막내와 막외의 차별이 있기 위해서 세포막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생리학에 처음 나오는 말이 세포내액,세포외액입니다.세포내액에는 K+가 더 많고 세포외액에는  Na+가 더 많아요.예를 들면 바다에 공을 놓았을 때 이 공속으로 들어오는 물과 밖의 물이 동일할 적에는 이것은 무생물이에요.그런데 자연상태에서 밖에 있는 액체와 안에 있는 액체가 다르게 유지된다면 이 공은 생명입니다.생명의 출발은 차별이 아니라 무차별입니다.그러니까 무생명과 생명을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이에요.노자에서 빌려다가 불교용어처럼 쓰는 말로 和(其)光同(其)塵이 있어요.이 同其塵의 상태는 티끌과 같이 차별이 없게 된다는 말인데 사실은 죽음의 세계로 무차별의 세계입니다.이것은 생명의 세계가 아니에요.
 세포안과 밖이 차별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차별하게 될려고 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적극적 성질이 있어야 되겠죠.이것을 능동수송(active transport)이라고 해요.많은 것을 더 많이 하고 적은 것 더 적게 할려고 하는 아주 무리한 짓을 하는게 생명입니다.이것을 resting mbrane potential 즉 막전위라고 하죠.이 resting이라는 말은 생명현상으로 차별의 상태입니다.모든 생명은 단세포로부터 시작됩니다.인체에서는 세포 하나하나가 독립되어 있어요.태초에 생명이 탄생하듯이 바다위에 떠있는 좁쌀알 같은 것이 인체조직이에요.그렇기 때문에 세포에서 Na+를 액티브하게 밖으로 내보내고 K+를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도 사실은 생명의 기원의 역사가 함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에서 sensation을 나타내는 말은 구멍이다.

서양사람들은 인체의 감각기능을 표현하는 말로 五官(five sense)을 씁니다.그리고 오관의 기능을 sensation이라고 해요.色聲香味觸과 眼耳鼻舌身이라는 말은 산스크리스트어의 번역이에요.중국고전에는 이런 말이 없어요.산스크리스트어가 인도유러피언 랭귀지이기 때문에 인도유러피언 랭귀지의 인체관속에 성립한 sensation에 대한 규정은 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으로 요약될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서양근세철학과 불교철학이 같아요.동양고전에서는 몸에 대한 이미지중에서 sensation을 나타내는 말은 "구멍"(  )이라는 말 밖에 없어요.노자의 52장에 "塞其兌 閉其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태나 문이라는 말은 전부 구멍이에요.그리고 장자에 많이 쓴 말은    이에요.상체를 나타낼 때 주로    이라고 했지 이제마처럼 耳目鼻口라는 말은 없습니다.

입에서 똥구멍 까지의 공간은 체외다.

인체는 상피세포로 싸놓은 고립체계라고 말할 수 있죠.이 우주의 특징은 36도C의 상온을 유지한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겠죠.밖이 추울 때는 인체가 떨리죠.떨리는 것은 온도를 높일려고 하는 것이에요.더우면 땀을 내서 식힙니다.입에서 똥구멍(anus) 까지를 G-I track이라고 합니다.이 G-I track도 상피세포(epithelium)예요.식도에서 위-십이지장-소장-대장-S결장-항문 까지의 공간은 체외예요.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면 씹은 다음 위장으로 가서 거기서 강염산인 펩신이 나오고 십이지장에 오면 바일 쥬스가 나와 유화를 시켜서 지방까지 소화합니다.그리고 대장에서 효율성을 위해 수분을 빨아내고 내보냅니다.이러한 ingestion.digestion을 거쳐서 배설(defecation)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body라는 공간체계에 들어와 있는 체외죠.

 코로 들어오는 것을 氣라 했고,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味라 했다.

이제마의 天機 쪽에 耳目鼻口가 있는데 耳目은 하늘이고 鼻口는 땅이 됩니다.머리를 중심으로 본 갤럭시 속에서도 上焦와 下焦의 구별이 가능합니다.왜냐하면 이목의 기능은 직접적으로 뇌세포를 통해서 두뇌와 결부되어 있는 구멍이예요.여러분들이 소리를 듣는 것은 고막을 통해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골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있어요.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다르죠.녹음해서 듣는다는 것은 골로 공명해서 들어가는 부분이 빠져 있다는 거예요.비구는 온전신의 circulation을 위한 구멍이에요.코로 들어오는 것은 하늘이고 입으로 들어오는 것은 땅이에요.그래서 코로 들어오는 것을 氣라했고,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味라 했어요.ingestion된 것은 전부 땅이죠.밥이든 생선이든 물이든 다 하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땅에서 나왔죠.그리고 땅의 무기물이 유기물로 된 생명들입니다.그리고 여러분들이 먹는 모든 것은 피입니다.예를들면 내가 물을 마시면 바로 피가 됩니다.그런데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땅이었죠.그러니까 피는 땅이죠.그리고 피는 도랑의 형태로 다닌다는 이미지입니다.동양의 언어가 서양의 지식과 하등의 마찰이 없습니다.

胃와 脾는 stomach과 pancreas의 문제가 아니다.
 
 G-I tract와 관련된 장기론에서 동양인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脾胃입니다."胃主降,脾主升"이라는 말에서 위나 비는 stomach와 pancreas의 문제가 아니예요.위가 되었든 비가 되었든 기본은 모두 G-I tract의 문제예요.  G-I tract을 가지고 있는 어느 function을 말하고 있는거예요.위장관은 식도로부터 항문까지 상피세포롤 되어 있는데 그 움직임의 방식을 연동운동(peristalsis)이라고 합니다.연동운동이라는  것은 장이 오므라들면 그 오므라든 링이 그대로 죽 가는거예요.그것이 연거푸 가니까 파동운동의 형태로 나타납니다.그 전달되는 방식이 양쪽으로 다일어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링의 운동이 입쪽으로는 금방 소실되는데 항문쪽으로는 지속이 되어 내려갑니다.우리가 먹은 것이 내려가는 이유는 이런 연동운동의 문제죠.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 나오는 현상을 吐한다고 합니다.예를 들면 술을 먹었을 때 토하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토하여야할 순간에 토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술이라는 것은 엄청난 독이고 이물질입니다.인체로 들어오면 다 피가 된다고 했는데 술을 먹으면 바로 피가 되죠.
 몸으로 들어온 것은 일단 간을 거친다고 했죠.간의 일차적 임무가 해독입니다.胃主降이라는 것은 G-I tract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힘이고 脾主升은 빨아들인 것을 몸전체로 퍼지게 하는 기운입니다.하강작용과는 반대로 빨아들인 것을 퍼지게 만들어 인체에 공급하는 작용을 일컬어서 脾主升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불이라는 것이 뭐냐?
 
종이을 태우는 것을 불이라고 하죠.불이라는 것은 일종의 산화예요.밖에서 종이가 탄다는 것은 격렬한 산화과정이죠.원자탄과 원자로가 어떻게 다릅니까?원자탄은 일시에 에너지를 터뜨려 엄청난 파괴력을 내는 것이고 원자로는 서서히 산화시켜 유용한 에너지로 쓰는 것이죠.인체도 체내에 들어온 영양물을 태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그러니까 땅을 태워서 우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까?
 간을 통과한 피는 심장(우심실)으로 가고 다시 폐로 가서 좌심실로 돌아옵니다.그리고 좌심실에서 전신 순환을 시킵니다.이 폐는 코와 연결되어 있죠.그러니까 입으로 들어온 땅은 폐에서 하늘과 만나는 것이죠.하늘과 땅이 섞여서 온 피가 전신을 순환합니다.그러니 코와 입은 이제마로 본다면 이목구비에서 下焦로 놓을만 하죠.이목비구 가운데 신묘한 정신작용을 담당하는 것은 耳目(보고 듣는것)입니다.

오줌과 똥은 어떻게 다른가?

똥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체내진입에 실패한 땅이죠.대개 인체의 효소가 녹일 수 없는 것이예요(셀룰로스 등).대장은 체외이기 때문에 많은 박테리아를 기생시켜서 마지막 산물까지 분해합니다.그래서 최후까지 분해시켜서 똥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죠.똥이라는 것은 체내진입을 못한 물질이예요.오줌이라는 것은 체내진입에 성공한 후 돌고 돌아서 나오는 땅이죠.그러니까 오줌은 곧 피예요.병리검사를 한다는 것은 곧 오줌을 검사하는거예요.그리고 오줌보다 더 직접적인 것은 혈관에서 뽑은 피입니다.

서양의학도와 한의학도의 인체에 대한 이미지

서양의학도가 가지고 있는 인체는 solidity개념이에요.조직학의 가장 큰 에러는 인체는 세포로 꽉찼다는 생각입니다.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체에 대한 이미지는 안이 꽉찬것입니다.그래서 꽉 차 있는곳을 통과할려고 가운데를 직통으로 뚫어 고속도로를 내었는데 이것을 서양에서는 신경이라고 합니다.나는 solidity개념은 서양의학이 인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중에서 가장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요.세포는 거대한 소금바다위에 하나둘씩 둥둥 떠있는 이미지이고 이 위에는 거대한 하늘이 있습니다.세포간질(interstitial)의 연구가 앞으로 서양조직학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너무 세포학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세포와 세포 사이의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실해요.
 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solidity이고 이 solidity는 노자의 말을 빌리면 有形의 세계입니다.그리고 하늘이라는 것은 solidity에 대해서 전혀 저항이 없는 공간이예요.empty space입니다.empty하다는 것은 단순히 비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기가 꽉차있다는 것이죠.이것은 무형의 세계입니다.예를 들면 탁자는 손에 걸리는데 이것은 solidity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죠.그러나 허공은 걸리지 않죠.이렇게 걸리는 solidity를 동양사람들은 血로 생각한 거예요.그리고 혈에 대해서 무형의 세계를 氣라고 불렀어요.
혈은 인체의 땅을 운영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운영의 영자를 따서 營이라고 하며 밖의 우주에 대해서  protect하는 하늘의 부분을 가리켜서 衡이라고 불렀어요.그러니까 營이라는 것은 營血이요 衡이라는 것은 衡氣입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99%는 에콜로지스트가 아니다.
 
모든 몸에 대한 이미지는 그 몸을 지배하고 있는 우주론적 인식체계와 일치한다고 했죠.그러니까 이제마를 지배하는 인체관은 천지코스몰로지의 모델이죠.그리고 천지는 기일원론으로 환원되는 것입니다.하늘은 불이고 땅은 물이예요.
 하늘과 땅을 볼적에 저 하늘과 땅만을 봤지 동시에 그것이 곧 나의 몸이란 생각을 안했어요.저기에 하늘이 있으면 내몸에 하늘이 그대로 있어요.저기 저 땅이 있으면  내 몸에 땅이 그대로 있어요.그러니까 심산유곡에서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것을 보면 그와 동시에 내 몸에도 그것과 같은 맑은 피가 흐르겠죠.구정물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그와 동시에 내 몸에도 그것과 똑같은 구정물이 내 피에 흐른다고 생각을 하셔야지요.공기가 오염되어 있을적에 단지 오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내몸에 하늘이 오염되어 있어요.
 두통은 하늘의 고장이에요.우리몸의 하늘에 이상기류가 있는 현상들이에요.알레르기비염으로 인해서 콧물이 나는 것은 虛火가 떠서 찬기운을 만나니까 비가 되어 내려오듯이 상초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에요.소위 천지론적인 이제마의 인체론을 깨닫게 되면 여러분들은 에콜로지스트가 안될 수가 없습니다.모든 의사들은 에콜로지스트가 아니면 의사 자격이 없어요.그런데 우리나라 의사들의 99%가 에콜로지스트가 아닙니다.그러한 좁은 의식을 가지고서는 인체라는 우주를 다스릴 수가 없어요.